[중앙 칼럼] 차드 우물과 초콜릿
정구현/사회부 차장
'차드'에 간다고 몇번이나 말해도 다들 되묻는다. 한인들에게 차드는 '없는 국가'다. 지도상에는 엄연히 존재하건만 금시초문이다. 도무지 내세울 것이 없는 나라니 당연할 밖에.
국가명부터 모순이다. 차드는 풍부하다는 뜻인데 극빈국인 나라 사정과는 정반대다.
취재차 일주일 남짓 방문한 그 나라에서 가난의 끝을 봤다. 일상처럼 흔한 가난은 가난의 정의조차 헛갈리게 할 정도였다.
수도 은자메나 외곽 느보퐁 다리 아래 강변은 여기저기 웅덩이 천지다. 진흙으로 빚은 벽돌은 가장들의 생계 수단이다.
30cm 정도하는 크기의 벽돌 가격은 장당 3센트다. 그 곤궁한 가격보다 더 슬픈 건 웅덩이 때문에 죽는 아이들이다. 우기 때 물을 길으러 강변에 나온 아이들이 흙탕물 고인 깊은 웅덩이를 건너다가 빠져서 익사한다는 것이다. 차드에서 가난과 식수난은 같은 이야기다.
목숨을 걸고 기른 물은 깨끗함과는 거리가 멀다. 차드에는 공중화장실이 거의 없다. 차드 사람들은 대변을 볼 때 물주전자를 하나씩 들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리고 한적한 곳에서 배설한 뒤 손을 씻는다.
동물의 분뇨와 함께 땅 밑으로 흐른 물은 암반층 위에 고인다. 차드의 재래식 우물에서 구할 수 있는 물은 대부분 이 암반층 위의 물이다.
빈곤과 갈증이 하나인 것처럼 가난과 죽음도 다르지 않았다.
고작 10센트 하는 소아마비 백신 2방울이 없어서 한 지역에는 아이 10명중 3명이 소아마비 후유증을 앓고 있다.
차드 호수 인근 한 마을에는 월 평균 4~5명이 말라리아로 죽었다고 했다. 약 3개월치가 고작 9달러다. 오염된 물 속에 알을 낳는 기네아충이라는 기생충은 또 다른 복병이다. 물과 함께 내장으로 들어간 알은 부화돼서 2~3m 크기로 다 자라면 장기를 뚫고 나온다. 아이들을 죽음으로 모는 원인중 하나다.
이 나라를 돕겠다고 구호단체들이 밀려들어왔지만 대부분 국민들은 혜택에서 멀다. 접근이 용이한 지역부터 시작하는 구호작업의 한계 때문이다.
본지가 찾은 까찌마을에서 기자는 50년만에 처음으로 찾아온 외지인이었다.
암담하고 가슴 친 현장을 절실하게 느낀 만큼 반드시 이들을 돕겠다는 욕망도 커졌다. 이번 취재는 중앙일보가 소망소사이어티와 굿네이버스와 함께 차드의 식수난을 해결하기 위해 시작한 '소망 우물'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가난을 해결해주진 못해도 깨끗한 물만이라도 줘야한다고 주먹을 쥐었다. 취재에 나름대로 공도 들였다.
그리고 일주일간의 취재를 마쳤다. 섭씨 45도의 땡볕 쨍쨍한 나라에 있었건만 가슴에는 온통 그늘만 담고 파리행 비행기에 올랐다.
좌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맬 때까지만 해도 차드의 아픔을 절대 잊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 결심은 불과 한시간만에 깨졌다.
기내식에 후식으로 초콜릿 케이크가 나왔다. 달디단 초콜릿 한 조각은 황홀했다. 경직된 몸이 혀끝에서 사르르 녹았다. 머리속은 하얗게 변했고 결심은 까맣게 잊혀졌다.
방금까지 마치 인류의 구원을 짊어진 양 불끈 쥔 주먹은 온데 간데 없었다. 혀 끝에서 시작된 내 간사함에 몸서리가 쳐졌다.
"우물이 생길 때까지 참고 기다리겠다"는 마을 촌장의 말이 생각나 또 미안해졌다.
잊을 수 있지만 잊어서는 안되는 것들이 있다. 우리가 한번 내리는 변기물은 차드의 한가족이 하루종일 쓰는 양보다 많다.
차드는 엄연히 존재한다. 우리가 잊지 않고 '소망'을 주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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