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OC] [Book] "암컷은 야망 좇는 기회주의자"…모성 신화에 도발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들을 때마다 가슴 뭉클해지는 노래 ‘어머니 은혜’는 희생과 돌봄의 위대한 상징인 모성(母性)에 바쳐진 찬사다. 이 책의 저자는 그 모성을 둘러싼 오랜 신화가 생물학적 진실과는 차이가 많다는, 조금은 당혹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금까지 당신이 알고 있던 어머니는 잊어라. 세상 모든 엄마·암컷의 진짜 역사가 이것이다”는 식인데, 임신 출산을 맡는 어머니·암컷에게 자녀 사랑과 양육이란 본능이 아니다.

침대에서 섹스할 때 수동적이며, 정숙한 여성상이란 것도 가짜 신화이거나 가부장제 사회가 심어준 이데올로기 내지 음모에 불과하다. 저자는 이를 입증하기 위해 인간역사에서 흔했던 영아(갓난아이)살해·유기 같은 사례와 진화생물학의 각종 ‘무자비한 진실’까지 반복해 들이댄다. 과학의 최전선에서 거둬들인 금싸라기 정보들은 누구도 비껴갈 수 없는 대목이다.

이 책은 ‘진화론의 성자’ 다윈을 때리며 시작한다. 진화론 자체야 더 없이 훌륭했으나, 19세기 사람 다윈 자체가 케케묵은 빅토리아 시대의 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래서 “여성은 남성에 비해 떨어지며 추상적 사고가 떨어진다”는 발언까지 했다. 이 비(非)과학적 주장에 대못을 박아둔 게 심리학자 프로이트다. “남녀의 성 구분이란 곧 운명이다”는 선언 말이다.

저자가 다윈을 때린다고 했지만, 그건 그를 되살려내는 노력이다. 진화론의 핵심은 자연선택과 함께 성 선택(sexual selection)이다. 짝짓기 상대를 결정하는 열쇠는 결국 암컷이 쥐고 있다는 얘기다. 자연계의 거의 모든 수컷은 화려한 외모와 노래·춤 솜씨를 자랑하는데, 그래야 암컷의 선택을 받기에 좋기 때문이다. 성 선택 이론은 19세기의 ‘불편한 진실’이라서 쉬쉬해오다가 20세기 후반에야 페미니즘과 만나면서 꽃을 피운다. 그 하나인 다윈주의 페미니즘 신간 『어머니의 탄생』은 잘못 꿴 첫 단추 때문에 으르렁거렸던 진화생물학과 페미니즘의 화해 무드를 대표한다.

‘자기희생적인 어머니, 수동적인 여성’의 신화와 달리 뚜껑을 열어본 여성·암컷의 진실은 실로 만만치 않다. 동화 『샬럿의 거미줄』에 등장하는 어미 거미처럼 새끼가 자기 몸을 파먹게 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현실의 어머니·여성은 오히려 유연한 기회주의자다. 지금 바로 번식할까, 나중에 천천히 할까를 저울질한다. 한정된 먹이를 자식에게 동등 분배할지, 한 녀석에게만 몰아줄지도 매번 선택해야 한다. 때로는 아주 무자비해진다.

물에서 사는 설치류 ‘코이푸’. 놀랍게도 이 녀석들은 암컷 새끼를 임신했을 경우만을 골라서 자연유산을 습관적으로 한다. 임신 14주 정도가 됐을 때 어미 코이푸의 배 크기를 보고 암수 여부를 귀신처럼 자체 감별을 해내고, 암컷을 뱄을 때 자연발생적으로 유산시킨다. 번식 실패일까? 어미의 ‘맞춤 제작’이자 경영전략으로 봐야 한다. 인간사회도 그랬다. 극단적 사례이지만 강한 녀석을 고르려고 고대 그리스· 게르만·켈트 족 어미들은 종종 갓난애를 찬 물에 담가 “키울 가치가 없는 아기들을 죽게”(719쪽)했다.

저자는 기독교의 세례란 것도 이 끔찍한 ‘찬물 테스트’에서 나온 풍습임을 암시하는데, 이 대목은 논란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 이 책이 전하려는 포인트는 여성은 야망을 쫓고 이윤추구에 정신없는 CEO와도 닮았다는 점이다. 침팬지학자 제인 구달이 귀여워한 어미 침팬지 ‘플로’가 그러했듯이 어머니는 맹목적 양육자이기보다 기업가 내지 제왕이다. 영아 살해를 위협하는 다른 수컷으로부터 자식을 지켜내야 하고, 경쟁상대 암컷을 누르려면 모성이란 곧 야망을 뜻하기도 한다.

어머니·여성·암컷은 생계와 양육을 동시에 수행하며 그 사이에서 정치적 목표를 향해 곡예를 벌여야하는 능동적인 전략가라는 게 이 책의 주장인데, 사실 그렇게 신선하지는 않다. 구문(舊聞)인지도 모른다. 원저 출간(1999년)에 비해 조금 늦은 번역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지난 10년 새 서점가에 등장했던 진화생물학의 정보로 무장했다.

아쉬운 것은 매끄럽지 못한 번역문이 몰입을 방해한다. 일테면 “나쁜 버릇을 가진 노부인”이란 표현이 자주 나오는데, 문맥으로 보건대 “심술궂은 노부인”이라고 해야 옳았을 것이다. 우리말에 서툴러서 나오는 어설픈 표현인데, 그게 의외로 잦다. 꽈배기 문장도 흔하다. “인간 종에서 어머니의 원조가 자동적이고 보편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견해가 시위의 대상이 될 수 있게 된…”(64쪽) 대체 이게 뭔가? “원조”란 “도움”으로, “시위의 대상이 될 수 있게”는 “의심받게 된”으로 각각 고쳐야 했다.

조우석(문화평론가)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