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최미나·허정무의 월드컵 일기] 남편 옷 다림질하려다 그만뒀어요…손질하면 빨리 돌아올 것
16강 가면 소원 없겠다 했는데
8강 보내달라고 기도하고 있어요
남편에게 전화가 왔기에 "고생했어요. 이제 마음이 좀 편해졌으면 해요"라고 했더니 "나보다 더 걱정했을 텐데 고생했어. 아직 경기가 남았는데 마음이 편하면 안 되지"라고 말한다. 그래도 내심 기분이 좋은지 수화기를 타고 울리는 목소리가 밝다. 아르헨티나전이 끝나고 나이지리아전이 시작될 때까지 내 마음은 지옥 같았다. 밖에서 들리는 소리들이 너무 무서워 귀를 닫고 싶었다. 마음이 너무 어지러워 나이지리아전 당일에는 잔디 깎는 기계를 들고 용인에 있는 엄마 산소에 갔다. 가서 엄마한테 이 얘기 저 얘기 털어놓으면 마음이 진정될 것 같았다.
땀을 뻘뻘 흘리며 엄마 산소 그리고 옆에 있는 오빠 산소 벌초를 하고 나니 1시간 반이 훌쩍 지났다. 기도를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니 오후 5시 시간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마음고생은 두 딸도 마찬가지였다. 집을 나설 때마다 나에게 "엄마 인터넷 절대 켜지 마세요" 당부를 했다. 아빠에 대한 안 좋은 코멘트들에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나이지리아전에서 한 골을 허용했을 때 '이제 끝인가' 싶어 좌절했는데 이정수 선수가 그리스전과 비슷한 골을 터뜨리면서 승부가 원점으로 돌아갔다. 정말 놀랍다. 수비수가 어찌나 공격 가담을 잘 하는지 우루과이전에서 또 골을 넣고 월드컵 득점왕에 오르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김남일 선수가 백태클로 패널티킥을 내준 뒤에는 내내 김남일 선수를 응원했다. 의기소침해지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들었는데 다행히 경험 많은 선수답게 잘 이겨내는 모습이었다.
사실 전날 꿈 때문에 나이지리아전에는 기대가 좀 있었다. 꿈 속에 우리 집에 기자들이 대거 찾아와 음식을 나눠먹는 광경이 펼쳐졌다.
음식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던 나는 친구 집에 달려가 '탕수육 같은 거 음식 좀 줘'라고 부탁을 하다가 잠이 깼다. 좋은 징조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우루과이와의 16강전은 포트엘리자베스에서 열린다고 한다. 그리스와 경기가 열렸던 그곳. 좋은 기억이 서린 곳이니 또 한번 쾌거를 이룰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24일) 들려온 소식 중에는 그곳 사정 때문에 한국도 우루과이도 그라운드 적응 훈련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우리는 이미 그곳에서 경기한 경험이 있으니 이건 우리한테 좋은 징조가 아닐까.
남편은 '5경기를 치르고 오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그 소원 제발 이루고 7월에 왔으면 좋겠다.
기회가 왔을 때 꼭 한을 풀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남편 오기 전에 빨아둬야 할 이불 다려둬야 할 양복도 그대로 다 놔두고 있다.
빨래를 하거나 옷을 다리면 왠지 남편이 빨리 올 것만 같아서다. 나이지리아전이 새벽 3시 반에 열렸음에도 많은 시민이 거리에 나와 열띤 응원을 펼쳤다. '16강에 가면 비키니를 입고 방송을 하겠다'던 최화정씨 '아들 옷을 입고 나오겠다'고 했던 박경림씨는 약속을 지키면서 환하게 웃었다. 쑥스러운 일을 그렇게 즐겁게 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나게 바랐던 일이 이뤄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 염원을 위해 남편과 선수들이 조금만 더 힘을 내줬으면 좋겠다. 여기서 만족하지 말고 우루과이전에서 새 기적을 쓰겠다는 마음으로 뛰어줬으면 한다.
정리=온누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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