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박물관 산책-97] 그레이시 맨션(Gracie Mansion)…시 역사 담고 있는 시장 공관
상인 그레이시가 전원주택으로 지어…독립전쟁 때 워싱턴 장군 지휘사령부
현재의 그레이시 맨션은 그 동안 여러 번 고쳤지만 지금의 자리에 비슷한 모습으로 세워진 때는 1799년이다. 당시 유럽과의 무역으로 큰 돈을 모은 상인 아치발드 그레이시가 전원주택으로 지은 것이다.
만들기 전에도 이곳에는 ‘벨뷰 맨션’이라는 이름의 큰 집이 서 있었는데 제이콥 워튼이라는 부호가 현재보다는 규모가 절반 정도인 집을 짓고 살았다.
주위에 있는 농노와 사냥꾼 등이 살던 집들과 비교해 워낙 잘 지어진 집이었기 때문에 독립전쟁 당시 인근의 할렘 등지에서 애국군이 영국군과 전투를 벌일 때 사령관인 조지 워싱턴 장군이 야전 지휘 사령부로 사용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뒤 그레이시가 집을 새로 지을 때만 하더라도 당시로서는 뉴욕시의 다운타운인 월스트릿 근처에서 5마일이나 떨어져 있었고 중간에 개천과 골짜기 등이 많아 이스트리버를 통해 배로 왕래할 정도였다. 그레이시는 이 집을 ‘그레이시 맨션’이라고 부르면서 당시로서는 뉴욕시 인근의 유명 인사들을 초청해 자주 잔치를 벌였다.
그레이시 맨션은 그레이시가 재정적으로 몰락한 뒤 여기 저기 소유권이 옮겨 다니다 1896년 뉴욕시가 매입했고, 뉴욕시 공원국은 그레이시 맨션 근처에 화장실을 만드는 등 공사를 통해 11에이커 넓이의 칼슈츠파크를 조성했다.
그러나 많은 역사학자들이 그레이시 맨션의 보존을 주장하자 뉴욕시는 이를 뉴욕시 박물관(현재는 센트럴파크 인근의 뮤지엄마일로 이전) 건물로 잠시 사용하다 1942년부터 뉴욕시장 공관으로 만들었다.
그레이시 맨션은 건축학적으로 페더럴 양식의 2층 목조 건물이다. 18세기 후반 만들어진 큰 주택이기 때문에 맨해튼은 물론 뉴욕시 전체에서도 매우 중요한 사적지로 평가되고 있다. 1층 외부에는 기둥이 여러 개 있는 포치가 있고, 창문이 위 아래로 길게 나 있고, 1층에는 베란다가 돌려져 있다.
현관 문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대칭 구조를 이루고 있다. 비록 현재의 대저택에는 못 미치지만 지금부터 200년 이상 전에 나무와 바위로 둘러 싸인 오지 같은 곳에 세워진 주택으로는 대단히 호화로운 전원 주택이었다.
그레이시 맨션은 블룸버그 시장이 입주를 하지 않고 비워두면서 뉴욕시의 역사를 알려주는 장소로 일반인들에게 공개 됐다. 건물은 물론 안에 뉴욕시와 뉴욕시장들의 역사 흔적을 설명해 주는 귀중한 유물과 자료들이 많다.
이 중에 특기할 것은 1980년대 초반 대대적인 증축공사를 할 때 발견된 독립전쟁 당시에 영국군이 사용하던 포탄이다. 당시 영국군은 맨해튼 전투를 벌일 때 육군(독일 헤시안 용병 포함)을 맨해튼 남쪽에서 북쪽으로 진격 시키면서 해군의 함정을 이스트리버 북쪽으로 이동시켜 해안에 있는 주요 시설을 맹렬하게 포격했다.
이 때 그레이시 맨션은 영국 해군이 쏜 함포 사격을 받았다. 이 포탄은 당시 폭발하지 않고 땅에 박혀 있다 200년 정도가 지난 뒤 발견된 것이다.
이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그레이시 맨션을 뉴욕시와 뉴욕시장들의 역사를 드러내는 ‘뉴욕시의 거울’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박종원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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