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수필 가작 김우영작 '업어주는 사람, 업히는 삶'
업어주는 사람, 업히는 삶시카고 쉐리단과 아가일 길이 만나는 곳, 이 두 길을 울타리 삼아 한인 노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높다란 시영 아파트가 서있다. 때는 아침나절, 아파트 앞엔 한인 노인들이 자신들을 실어 가는 교회 벤이나 가족들의 자동차를 기다리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나는 세리단 길가에 차를 세웠다. 그 때 한 백인 부부가 두 손을 잡고, 아빠는 어린 딸의 왼손을 꽉 잡고 아파트 앞을 걸어가고 있었다. 아빠의 오른 손에 잡힌 어린 딸은 걸음마를 연습하듯 뒤뚱거리며 걷고 있었다. 짧은 원피스에 선그라스를 낀 멋쟁이 엄마는 여전히 남편의 왼손을 잡고 걸어가면서도 연신 딸의 위태로운 걸음을 지켜보고 있었다.
걸리는 게 더 이상 무리라고 생각했던지, 아빠는 가던 길을 멈추고 옆 가슴에 차고있던 아이를 안는 기구, 그래 띠가 아니라, 기구라고 말해야 할만큼 학생들이 메고 다니는 책가방처럼 멜빵까지 달아 편리하게 잘 고안된 현대식 띠를 매만져서 아이의 얼굴도 아버지처럼 앞을 보게끔 하고, 아빠는 딸의 두 손을 양쪽 손에 나눠 쥐고 앞뒤로 흔들면서 부지런히 가던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엄마는 여전히 아기 아빠의 팔을 잡고 마냥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무척 행복해 보였다. 그런데 맞은 편에서 다가온 한 히스패닉 계 엄마는 똑같은 띠로 아이를 안았지만, 양손에 세 개의 비닐 봉지를 들었고, 아이의 얼굴은 엄마의 젖가슴 사이에 묻히도록 안았다. 그 아이는 엄마의 앞품에 안기긴 했지만, 엄마의 가슴에 얼굴이 파묻혀 앞을 볼 수 없는 점이 앞서 말한 아빠 품에 안긴 아이와 달랐다.
한인들은 아이를 잠깐 안을 때를 제외하곤 맨손으로 깍지를 끼워 아이를 업든지, 단단한 광목 띠로 묶어서 업든지 널따란 등에 업고 다녔다. 하지만 업는다는 말보다는 등에 짐을 짊어지듯 들쳐업는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 엄마가 아이를 들쳐업는 경우엔 우선 우는 아이의 궁둥이를 몇 차례 두들겨 패주고 난 다음 신세차령이라도 한 마디 보태서 들쳐업었다. 엄마가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거나 혹은 연신 눈물을 흘리면서 죽이나 보리밥이라도 지을 때나 혹은 밭에 나가 김을 맬 때나 냇가에서 빨래를 할 때나 한결같이 아이는 엄마의 등에 업혀 고통과 슬픔과 눈물을 한 몸처럼 나누는 것 같았다. 아마도 엄마는 아이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꽉 졸라맬 테지만, 사실 아이를 들쳐업는 튼튼한 광목 띠가 엄마의 허기진 배를 졸라매고 힘을 짜내는 허리띠로 얼마나 유용했는지 모를 일이다.
엄마가 보리 한 됫박이라도 구해와 절구질을 할 때나 혹은 냇가에서 빨래하는 엄마의 등에 업힌 아이는 엄마와 함께 허리 굽혀 펴기를 계속해야만 했다. 아이가 엄마의 등에 업히는 건 아이에게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사실 아이가 일하는 엄마 등에 업혀있는 건 힘들고 귀찮은 일이었지만, 아이가 엄마 등에 업히는 건 엄마의 바쁜 일손을 덜어주는 아이의 엄마 봐주기의 일환이기도 했다.
등에 업힌 아이는 엄마의 얼굴도 볼 수 없을뿐더러 단지 엄마의 등에서 진한 땀 냄새를 맡으며 엄마의 널따란 등만 바라보거나 엄마의 등에 얼굴을 묻고 선 채로 매달려 잠자는 꼴이었다. 엄마의 궁둥이에 매달려있는 두 다리가 저리고 아파 와도 아이는 우는 일 외에 달리 자신을 표현할 길이 없었다. 등에 업혀있는 아이는 엄마의 얼굴도 보고싶고 또 엄마의 앞쪽을 내다보고 싶지만 커다란 엄마의 등에 가려서 어찌 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아이는 엄마의 한 많은 눈물을 볼 수 없었던 게 다행이었는지 모르지만, 그러기에 아이는 자신의 아픔이나 불만을 울음으로 드러낼 뿐, 엄마의 등에 업혀있으면서도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한 편 엄마는 얼마간은 우는 아이를 달래다가 아이의 궁둥이를 사정없이 때릴 때도 많았다. 옆에 시부모님이라도 있으면 아이를 마음대로 때릴 수도 없는 일. 이 때 아이의 궁둥이가 꼬집히는 건 아이만이 아는 아픔이었다. 그러나 아픔에 아픔을 더해주는 것, 곧 엄마의 아픔이 아기의 궁둥이로 전달되면서 엄마의 한이 엄마의 등에서 아이의 궁둥이로 전달돼 온 것은 아닐는지?
오늘 길에서 본 백인 아빠나 히스패닉 계 엄마처럼 아이를 가슴팍에 붙들어매고 다녔더라면, 특히 백인 아빠처럼 아이가 앞을 바라볼 수 있도록 가슴팍에 붙들어매되 아이의 얼굴을 앞으로 향하게 했더라면, 아이의 손과 발을 보다 자유스러웠을 것이고, 또한 아버지 앞에서 아버지가 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보면서 자랄 수가 있었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더해진다. 거기에 아버지가 아이를 업어주며 키웠더라면 광목 띠로 졸라매지 않고 또 다른 방법을 강구했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이곳 미국에서 아버지들이 목말을 태우듯 등산 용 백 같은데 아이를 높이 올려 태우고 다니는 걸 보면서 지금이라도 한국의 아버지들이 아이를 목마를 태워서라도 아버지나 엄마보다 더 높이, 더 멀리 볼 수 있도록 키워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한국의 아이들은 엄마의 등뒤에서 엄마의 땀 냄새를 맡고 자라서일까, 엄마나 아빠의 근심이나 눈물이나 아픔을 직접 인지하지 못하는 약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근심이나 슬픔이나 가정의 아픔도 오직 엄마나 아빠의 몫일 뿐, 아이는 가정에서 부모의 고통과 번민을 알지 못하고 때때로 꼬집힌 자기 궁둥이만 아픈 줄 알고 부모 세대와는 동떨어진 삶을 살다가 장성한 후에 부모의 아픔이나 비극을 보면서 전혀 뜻밖의 일로 충격을 받을 뿐만 아니라, 부모의 잘못을 탓하고 그들을 원망하며 삐뚤어진 길을 나가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등뒤에서 보아온 부모와 직접 눈앞에서 보는 부모가 다르게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고, 등뒤에서 간접적으로 보아온 세상과 직접 부딪치는 사물은 전혀 다를 수 있지 않겠는가? 어쩌면 부모 등에 업혀서 부모가 이룩한 것을 평안히 누리면서도 감사는커녕 오히려 부모에게 무거운 짐이나 지워주는 요즈음 청장년들의 파렴치한 행위도 등뒤에서 업혀 살던 어린 시절이 몸에 밴 때문은 아닌지 생각해보고 있는 중이다. 자녀가 부모의 성공을 먹고 살아왔다면 그들의 실패도 함께 부둥켜안고 살아가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이건만, 장성해서 독립된 가정을 가졌어도 엄마의 등에 업혀 지낸 어린 시절을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부모에게 짐만 지우고 살아가는 자녀들이 얼마나 많은가? 자신들이 고통을 받는 것은 부모의 실패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자신들이 성공하면 부모가 알지 못하는 등뒤에서 혼자 이룩한 것처럼 그 열매를 누리면서도 자신의 모든 비극을 부모 탓으로 돌리며 부모를 비난하는 그런 성향을 띠는 자녀들도 적지 않다.
한국의 어머니들은 아이를 등에 없듯이 가정의 모든 비극을 홀로 안고 살아온 세월이 많았다. 그 때 어머니들의 소망은 등에 들쳐업은 자식들에게 있었다. 등에 아이를 들쳐업은 어머니의 모습에서 한 가정의 소망을 볼 수 있었던 것은 등에 업힌 아이 때문이 아니라, 아이에게 소망을 두고 온갖 난관을 극복하던 어머니 때문이었다.
그런데 나는 아이를 업고 가던 한 어머니에게서 온갖 비극의 극치를 본 적이 있다. 6.25동란이 발발해서 무조건 남쪽으로 피난길을 걷고 있을 때, 충청도 어느 국도 상에서 미군 전투기에서 쏘아댄 총탄에 한 다리가 절단된 아들을 등에 업고, 피범벅이 된 다리는 오른 쪽 옆구리에 끼고 한없이 울면서 우리의 피난길과는 정반대 쪽으로 올라가던 한 어머니를 잊을 수가 없다. 그
어머니는 단지 아이를 들쳐업은 것이 아니라, 온갖 비극을 등에 업고 살아왔던 우리 어머니들의 상징적인 모습으로 내 뇌리에 새겨져 있다.
아무튼 업는다, 업힌다는 말엔 도움을 서로 주고받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개 엄마나 할머니와 어린아이와의 관계이지만, 당연히 강자와 약자의 관계이기도 하다. 업힌 자는 자신이 업힌 등을 든든한 빽으로 생각하면서도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지 못하는 약점이 있다. 더구나 자신이 스스로 강자인 척 업어준 자의 힘을 이용해 오만을 부리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이것은 업힌 자가 업어준 자를 이용하는 경우이다. 한 편 약자를 등에 업고 그 약자를 이용해 불로소득으로 부를 누리는 자들도 부지기수이다. 앵벌이를 이용한 거지 왕초들이나 고아나 과부와 같은 약자를 내세워 자신의 사욕을 채우는 허울좋은 사회사업가들도 이 부류에 속한다. 자신이 빨리 가기 위해 혹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 업히기 싫어하는 아이를 강제로 들쳐업고 가는 사람도 더 나을 게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아이의 의지나 호기심을 강제로 중단시켜버린다는 것조차 생각해 보지 않는다. 이것은 업어준 자가 업힌 자를 이용하거나 학대하는 경우이다.
아파트 앞에 담소를 나누던 한인 연장자들이 자신들을 업고 갈 노인 센터 버스에 올라타고, 또 교회 버스에도 올라타고, 또 그들 중의 몇몇 노인들은 자신들이 업어 키웠던 자녀들의 자동차에 업혀 어디론지 떠나간다. 그 연장자들은 자식들에게 업히거나 교회나 혹은 사회에 업히거나 그들은 이제 업혀서 살아가야 할 약자들임에 틀림이 없다. 그들에겐 그들을 업어주는 자에 대한 감사가 있을 뿐, 그들을 이용할 악의도 능력도 없다. 다만 그들을 업어준다는 자들 가운데 자신들의 이익만을 챙기려는 어떠한 사심도 없기를 바랄 뿐이다.
김우영 (일리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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