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실패학'인가? '실패에서 배우는 기업 경영'-10] 실패 기업의 오판 <끝>
'좋은' 차 만드는 닛산보다 '팔릴' 차 만든 도요타가 성공
쓸데없는 위험 대비 과잉 투자하거나
새것 집착해 전통을 무시하다가 고배
실패의 교훈을 조직에 새겨둬야
한때 '기술의 닛산'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자동차 생산기술에 있어 닛산이 세계 최고라는 평가가 담긴 표현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닛산은 이러한 찬사가 유효했던 당시에 최고의 자동차 회사가 아니었으며 르노의 도움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지금은 더더욱 그렇다. 자동차의 선택 기준 중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기술에서 최고점을 받은 닛산이 최고 회사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첨단기술이 제품의 성능을 결정하고 그 성능이 소비자의 선택을 좌우해야 할 것 같은 현대사회에서 남다른 기술력으로 무장하고도 부진을 보이는 기업이 적지 않다. 심지어 기술적으로 완벽에 가까운 제품을 출시한 뒤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치고도 성공은커녕 실패에 이르는 사례 역시 드물지 않다. 탁월한 경쟁 역량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고배를 마시는 기업들은 몇 가지 공통된 속성이 있다.
기술이 좋다고 팔리는 것 아니다
자동차 업계에서 회자되는 경구 가운데 이런 말이 있다. '닛산은 좋은 차를 만들고 도요타는 팔릴 차를 만든다'. 여기서 닛산은 기술적 최적화에 초점을 맞춰 최고 성능의 차를 만드는 회사다. 반면 도요타는 기술 수준은 상대적으로 처지더라도(단 고객이 그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수준에서) 시장에서 팔리는 차를 만든다. 닛산이 자랑하는 최고 성능은 소비자들이 잘 인식하지 못하거나 필요로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기술지향적 제품에 대한 집착은 대개 최고경영자가 엔지니어 출신인 경우에 많이 발견되는 실수다. 기술적 우위 요소를 확보하는 데 집중하는 과정에서 시장의 요구는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 경영자 또는 회사의 목표에 부합하는 완성도를 가진 제품이 만들어질 수는 있지만 이것이 반드시 고객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장의 수요와 괴리된 제품이 나올 수도 있다.
1990년 출시된 소니의 MD 역시 당시 대세였던 CD를 기술적으로 능가하는 최고의 제품이었다. 완벽한 음질과 재생 능력 풍부한 데이터 저장 능력 등 CD와 비교가 안 될 기능을 갖췄지만 호응을 얻지 못하고 결국 MP3에 왕좌를 내주고 말았다. 실패의 근본 원인은 고객의 수요에 걸맞은 시장 지향적 제품을 내놓지 못한 데 있었다.
'무해 냉매' 개발 다우케미컬 실패한 이유
세계적인 화학회사인 다우케미컬은 1990년대에 새로운 냉동기 냉매(Dowtherm 209)를 선보였다. 냉매가 외부로 새어 나와도 인체에 해가 없도록 만들어진 이 제품은 냉매 유출에 따른 위험이라는 기존의 한계를 극복함으로써 선풍적인 인기를 끌 것이라는 사내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기대는 출시와 함께 산산이 부서졌다.
실제 기존의 냉동기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냉매가 유출될 가능성은 대단히 희박했다. 더구나 신제품의 가격은 기존 제품의 두 배에 달했다. 결과적으로 회사는 현실에서 존재하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막대한 연구비를 투자한 셈이다. 힘들여 제품 개발에 성공했지만 냉매가 새나올 것이라고 믿지 않았던 고객들은 새로운 발명품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껍질 벗긴 땅콩 내놨지만 고객 외면
아무리 새것이 좋다고 해도 지켜야 할 전통이 있다. 고객이 원하는 가치를 담고 있는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음료시장의 대표적 라이벌인 코카콜라와 펩시는 한때 고정관념을 깬 새로운 발상으로 기존의 판을 뒤집으려 한 적이 있다. 그러나 공 들여 출시한 이들의 야심작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이유는 고객의 인식 속에 자리 잡은 전통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부동의 최고 브랜드로 군림해 온 코카콜라의 아성을 무너뜨리기 위한 펩시의 노력은 집요했다. 코카콜라로 대표되는 콜라 맛에 익숙한 기존 시장 확대를 포기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신세대를 공략해 1위로 올라서겠다는 것이 전략의 핵심이었다. 이 같은 구상을 토대로 펩시는 1970년대 시작한 펩시 챌린지(눈을 가리고 펩시와 코카콜라를 맛보게 한 뒤 선호도를 테스트하는 이벤트)를 확대하고 마이클 잭슨을 이용한 공격적 마케팅을 펼쳤다.
펩시의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코카콜라는 85년 '뉴코크'를 출시했다. 콜라 특유의 톡 쏘는 맛을 줄이고 단맛을 늘린 뉴코크는 디자인에 대한 평가가 고무적이었을 뿐 아니라 사전 시음 결과도 좋았다. 그러나 고객의 반응은 냉담했다. 출시 3개월 만에 뉴코크는 사라졌으며 다시 원조 코카콜라가 판매대에 올랐다. 새로운 콜라가 맛은 좋았을지 모르나 오랜 세월 코카콜라에 담겨 있던 전통적인 이미지가 고객에게는 새로운 맛보다 더 중요했던 것이다.
93년 '수퍼보울' 광고로 유명한 펩시의 '크리스털 펩시' 역시 마찬가지 운명을 맞았다. 투명한 빛깔의 콜라는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센세이션에 불과했다. 콜라는 적갈색이라는 전통과 고정 관념에 익숙함을 넘어 친근감을 느끼고 있던 대다수 소비자에게 펩시의 신제품은 정통을 벗어난 이단아일 뿐 더 이상 콜라가 아니었다.
미국 메이저리그 중계를 보면 선수나 관중이 껍질이 있는 땅콩을 먹는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사실 땅콩 껍질을 벗기는 것은 수고스럽기도 하고 주위가 껍질로 지저분해진다는 불편함이 있다. 일찍이 이 문제를 간파한 한 회사가 껍질을 제거한 땅콩 판매에 나섰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매출은 급감했고 고객의 원성은 커졌다. 결국 판매 4개월 만에 껍질을 벗긴 땅콩은 자취를 감췄다. 야구장에서 고객이 원한 것은 땅콩 껍질의 유무가 아니었다. 150년이 넘는 프로야구 역사와 함께한 문화를 바꾸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1달러 동전은 1달러 지폐 대체 못 해
얼마 전 미국에서는 1달러 지폐를 대체하려는 취지에서 1달러짜리 동전이 선보였다. 그 이면에는 이를 통해 연간 5000만 달러를 절감하려는 관계 당국의 계산이 있었다. 그러나 동전으로 얻을 수 있는 혜택에도 국민의 반응은 냉담했다. 주된 이유는 이 동전이 25센트 동전처럼 보인다는 점이었다. 고객의 입장에서는 새 동전에서 과거의 1달러 지폐보다 좋은 점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모든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공을 누리기는 어렵다. 실패 사례를 모두 공부하고 자기 것으로 한다고 해도 언젠가는 실패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실패를 통해 배우는 것이고 실패 과정을 조직에 내재화하는 것이다. 미래의 지속적 성장을 원하는 기업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 실패가 아니다. 그보다는 현실에 안주하려는 안이함이 더 무섭다.
기업을 갉아먹는 진정한 적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무사안일이며 때 이른 포기다.
조기훈 상무 딜로이트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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