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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人] 7080 공연기획 20여년…에이콤 이광진 대표

"딴따라? 예술인?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LA한인타운에서 약간 서쪽으로 벗어난 윌셔 이벨극장은 LA 한인들의 문화 공간이다. 비싸지 않은 대관료에 1270석 규모로 아기자기한 소규모 공연에는 딱이다.

여기서 이광진(55ㆍ에이콤대표)씨를 만났다. 22년간 LA에서 이벤트·공연을 한 기획자다. 지금까지 70여건의 문화행사를 들고 150여회 무대에 올렸다. 그 중에서도 40, 50대의 감성을 자극하는 7080콘서트를 가장 많이 올렸다. 그가 올린 공연의 70%이상이 윌셔이벨극장에서 열렸다.

오늘 ‘사람in’은 마음의 고향이 윌셔이벨극장이고 ‘미안함과 뿌듯함’을 동시에 안고 산다는 7080 전도사를 만났다.

"추억의 노래들 너무 좋아, 한인사회 함께 공감하고파…그룹 룰라 공연 기억 남아"
"한국서 가수·연극 기획, 중년층 향수 위로하는 품격높은 공연 준비할터"


인터뷰 좀 하자며 전화를 했다. "아 오랜만입니다 천 기자. 근데…인터뷰… 할 내용이 있나요? 제가?"라며 쑥스러워 한다.

청산유수다. 공연이나 이벤트는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장사'라는 이야기와 그래도 영혼에 온기를 불어넣는 작업이라는 말로 시작했다.

그동안 도움 받은 것도 많지 않았냐고 먼저 물었다. "그걸 말로 다하겠습니까. 공연예술을 사랑하는분도 계시고 그냥 저와 친분때문에 도움주신분 등 뭐 이루 셀 수 없습니다. 그리고 중앙일보를 비롯한 미디어들에게도 고마운 만큼 미안함도 많습니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소주나 한잔 하면서 하죠."

-원래 한국에서도 이 분야 일을 하셨나요?

"젊은 시절에 이대 앞 '맥심' 서대문에서 전유성씨가 운영하던 '도날드' 그리고 광교의 '태평양' 같은 카페에서 친구와 듀엣으로 노래를 한 4년 했었죠. 그런데 제대로 한 건 연극이었습니다. 극단 '춘추'에서 2년 정도 기획 일을 하다가 이민왔습니다."

부모 속깨나 썩였을 것 같았다. "말도 마십시오. 저희 아버님이 목사(이찬영ㆍ86세)셨죠. 책도 한 60권 내신 원로목사신데 말씀 안드려도 아시겠죠. 아주 난리난리였습니다."

1982년 이민. 미주동아일보 광고국ㆍ사업국에서 일하다 1988년 공연기획사 에이콤을 설립했다. 그때 당시 LA한인커뮤니티 공연문화를 물어봤다.

"척박했죠. 많은 분들이 한국을 그리워했습니다. 한국을 싫어하는 분이 계셔도 한국 노래는 좋아들 하셨죠. 당시는 주로 교포 위문공연이란 이름으로 연예인들이 왔습니다. 제가 지금은 7080콘서트를 주로 열지만 제 첫 이벤트는 88년에 국립극단을 초청한 연극이었습니다. '피고지고피고지고'를 탐 브래들리 극장에 올렸죠."

그 후로도 연극과 악극 마당놀이 등을 올렸는데 95년 해바라기 디너쇼를 하면서 7080콘서트에 눈을 뜨게 된다.

"95년에 해바라기 강인원 이동원 임지훈 이런 친구들과 콘서트를 올렸는데…리허설을 듣고 있는데 제가 노래에 쑥 빠져들면서 기분이 묘해 지는 겁니다. 솔직히 그 후로 매년 7080가수들을 초청하는데 한인들도 좋아하시지만 제가 너무 좋은 거예요. 제 마음에 '그리움'이 가득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순간 더 중요한 걸 느꼈어요. 내가 공감할 수 있는 같은 세대를 위해 공연을 좀 더 많이 해야겠다 그런 각오같은 거 말이죠."

아이돌 그룹 중심의 요즘 공연에 대해 "제 영역은 아닌듯 하다"고 한다. 앞으로도 매년 또 다른 7080가수들을 초청해서 한인들의 그리움을 해소하는데 일역을 담당하겠단다.

-7080콘서트는 매니아 관객이 꾸준한 편인것 같은데 그 때문인가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일거구요.(웃음) 일단 제가 준비하기도 편하고 듣기도 편하고 그렇습니다. 유익종이란 친구가 '이 밤~ 한마디 말없이~ 슬픔을 잊고져~' 이렇게 부르기 시작하면 저도 멍해집니다."

-공연.이벤트 하다 망가지는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그렇죠… 저도 70여건 중에 두번 정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많은 분들한테 민폐로 다가가는데… 여러모로 속 터졌던 게 2001년으로 기억됩니다. 그때 한인커뮤니티 최초로 스테이플스 센터를 대관했습니다. 물론 제가 한 건 아닙니다. 잘 아는 다른 기획회사인데 공연이 너무 크다면서 도와달라고 해서 붙었다가 그 친구가 사라지는 바람에 아주 곤욕을 치렀습니다. 물론 제 잘못도 있죠. 그때 생각하면 아직도 죄송하고 속이 상합니다. 그렇지만 단 한번도 공연을 취소한 적은 없었습니다. 다행이죠."

-잘 된 공연도 많았죠?

"다섯박자가 다 맞아 떨어진 게 있었습니다. 96년인데 한국 가요 시장은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로 급 반전된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인기 절정이었던 댄스그룹 룰라가 표절시비가 붙어서 미국으로 와 있었어요. 그때 또 백혈병에 걸린 성덕 바우만 군의 이야기가 사람들 가슴을 울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재기를 원하는 룰라에게 성덕바우만돕기 사랑의 콘서트를 제안했는데 이게 성공했습니다. 할리우드 파크에 관객이 1만5000명 왔고 골수 확인을 위해 500명이 검사를 자청했습니다. 수익금 중 2만달러를 아시아골수기증협회에 기부했죠. 룰라의 공연 사실이 한국에도 알려지면서 룰라는 재기에 성공합니다. 관객 기획자 공연자 스폰서 수혜자까지 다섯박자가 모두 들어맞았어요. 뿌듯했습니다."

-도대체 공연기획하는 분들의 부인들은 어떤 분들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 아내는… 참 좋은 사람입니다. 공연기획자는 수입이 일정치 않습니다. 망하면 1년 내내 수입이 없을 수도 있구요. 그런데 제 아내는 제가 하는 일을 반대한 적이 없었어요. 언제나 딱 그 자리에 항상 있어 줬고 지금도 그 자리에 있습니다. (부인 이야기를 하면서 눈시울이 붉어진다) 두고두고 오래오래 갚아야죠."

-앞에서 남고 뒤에서 밑지는 일을 왜 하시는 겁니까.

"요즘 공연은 앞에서도 밑지고 뒤에선 더 밑집니다.(웃음)…LA에도 저 같은 인간이 몇명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아니 그냥 제가 이 일이 좋습니다."

-앞으로도 7080 콘서트는 계속 하실 거죠?

"물론입니다. 제가 듣고 싶어서라도 해야죠. 그런데… 저는 마지막 공연은 꼭 연극을 올리고 싶습니다. 첫 시작이 연극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LA에서는 연극은 안된다 이런 통념이 있는데 지난번 강부자씨가 출연한 '친정어머니와 2박3일'은 흥행연극의 롤 모델입니다. 유료관객만 4000명이 넘었습니다. LA에 잠재 문화 수요층이 많다는 거죠. 이 사람들을 불러낼 퀄리티가 필요합니다."

-본인이 딴따라라고 생각하세요 예술인라고 생각하세요?

"하하하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LA공연관계로 만난 가수 연예인들이 수백명은 됩니다. 그 중에서 재미있는 만남과 이야기를 내년봄쯤 책으로 엮으려고 하는데 그 제목으로 생각한 것이 '딴따라와 예술인' 입니다. 우리한테는 이 두 이름이 참 숙제죠."

그래도 본인은 예술인으로 살고 싶단다. 공연기획한 지 20년이 지나고 나니 '이제 공연기획이 뭔지 좀 알겠다'고 한다. 관객 출연자 스폰서 기획자 모두의 위닝게임을 위해 그는 오늘도 헛헛한 광대표 웃음을 날린다.

만난 사람=천문권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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