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창현의 시가 있는 벤치 196] 귤
귤-정 병 근
박스 속에 귤들이 담겨 있다
꼭지가 잘린 채,
골똘한 생각에 잠긴 귤들
무수한 숨구멍으로 골수를 감싼 귤들
씨 없는 수박처럼 착한 놈들
껍질을 벗길 때,
노란 물이 툭툭 튀기도 한다
물은 손톱에도 조금 묻어서
흔적을 남기려고 안간힘을 쓴다
껍질을 다 벗겨내도
말똥말똥 살아있는
원숭이 골 같은 놈들
다닥다닥 붙어 있는
내시內侍의 방을
오랜만에 껍질 부드러운 귤 만났다. 4개에 1불, 역시 껍질이 얇은 건 안살도 부드럽고 물도 많고 달다. 다음 주에 또 갔더니 어느 결에 올랐다. 3개에 1불. 무엇이든 자꾸자꾸 오른다. 어떤 건 년 전에 비해 배나 오른 식품도 있다. 플로리다도 한파로 얼음달린 귤나무들, 올핸 오륀지 값 좀 비싸질 것 같다.
어쨌든 찬란하다 금빛, 속 열면. 누가 이렇게 만들 수 있으랴! 이 생각 먼저다. 이 섬세함, 내밀한 직조. 석류, 복숭아, 사과, 수박, 배, 감, 밤… 같은 땅 같은 흙 속에서 하얀, 노란, 빨간 꽃들은 또 누구의 웃음, 눈물, 피의 화생化生인가. 신 아니면 누가 이 물음 대답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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