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오릭스 버팔로스로 이적한 이승엽 선수와 지난 해 7관왕의 위업을 달성한 롯데의 이대호 선수 등 각 팀의 간판타자들이 한결같이 올해는 홈런을 30개 이상 치겠다고 장담을 하고 나섰다.
역대 30개 이상의 홈런을 친 선수들을 살펴보면 한국인 선수로는 장종훈, 이승엽, 이종범, 양준혁 등 17명에 달한다. 요즈음에는 한 시즌 30개 이상 홈런을 치는 선수가 많아졌지만 1988년 이만수가 가지고 있던 한 시즌 27개 홈런 기록을 갈아 치우면서 한국프로야구 30 홈런의 시발점을 만든 선수는 바로 ‘오리 궁둥이’ 김성한이다. 그는 1958년생이다.
청소년 국가대표 출신인 형 김재한의 영향으로 자연스레 축구를 먼저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끓는 물에 화상을 입는 사고로 축구선수의 꿈을 접고 군산중앙초등학교 4학년 때 운동실력을 인정받아 야구부에 발탁된다.
하지만 집안 사정이 어려워 군산중 2학년 때 약 6개월간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고 야구를 그만둘 위기에 처했으나 은사인 이준원 선생님의 도움으로 야구를 계속 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를 거쳐 동국대에 진학할 때까지 그는 단 한번도 대표 팀에 뽑혀 본적도 없는 그저 그런 선수였으나 배성서 감독의 지도 아래 피나는 훈련을 하면서 투수와 타자를 병행하고 때로는 3루수와 1루수를 번갈아 맡으면서 올 라운드(All Round) 플레이어로 후배인 한대화 선수와 함께 동국대 전성기를 이끌어 간다. 이 때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오리궁둥이 타법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게 된다.
동국대 시절 팔꿈치 부상을 당해, 파괴력은 있는데 빠른 공에 스윙이 늦게 나가는 바람에 빠른 공을 쳐 내는데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고안해 낸 타격 자세가 배트를 뉘여서 들고 있다가 타격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타격 폼 또한 문제가 뒤따랐다. 파워가 약하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생각해 낸 타격 자세가 궁둥이를 뒤로 뺀 상태에서 타고난 손목 힘을 이용해서 장타를 만들어 내는 오리 궁둥이 타법이었고 그 특이한 폼으로 오리 궁둥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각고의 노력 끝에 졸업할 무렵에는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는다. 그리하여 졸업과 동시에 새로 출발하게 된 연고 팀 해태타이거즈 원년 멤버로 프로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해태는 등록선수가 부족해 14명밖에 되지 않아 자연히 선수들이 무리하게 출장을 할 수 밖에 없는 참담한 상황이었다. 부상을 당해도 억지로라도 출장을 해야 하는 처지였다.
포지션도 찬밥 더운밥 가릴 형편이 아니었다. 김성한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루는 선발투수로 하루는 3루수, 다른 하루는 1루수나 외야수 그야말로 전천후(全天候) 선수였다. 실업야구에서도 이런 일은 없었는데 말이다.
이러한 악조건에서도 그의 성적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투수로서 10승5패, 타자로서 타율 3.05 타점 69개로 1위, 홈런 13개, 도루 10개가 김성한의 원년 기록이다.
그가 세운 10-10-10이라는 기록은 지금까지도 깨어지지 않은 대기록이다. 그는 야구 선수로서는 좋은 체격 조건이 아니었지만 자신의 약점을 지혜롭게 극복하면서 피나는 노력으로 어느 때 어느 위치라 해도 마다 않고 제 몫을 충분히 해내면서 많은 후배들에게 귀감을 보였던 진짜 야구인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