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을 마시며] 문제의식은 삶의 질을 높인다
신민수/벤츠 세일즈 디렉터
한편 사람들은 살면서 끊임없이 찾아오는 문제들로 인해 골머리를 앓는다. 주로 해결점을 찾아보겠다고 교회를 찾는다. 교회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고, 비폭력 무저항인 예수님의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전환한다. 내면의 성숙을 (거듭남을) 강조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가지고 오는 문제들이란 차원이 좀 다른, 결혼 문제 재정문제 자녀문제 직장 문제 체류 신분의 문제 등 극히 현실적인 것들이다. 소그룹 모임을 열심히 나가 토론을 해보고 기도도 해보지만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신앙의 열도 금방 식어버린다. 사실 이것은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는 방식이라 볼 수 없고 또 문제의식이 있는 사람들의 행동이라 보기 어렵다.
문제의식을 제대로 가진 사람들은 좀 더 넓은 방향으로 자신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본다. 무엇이 근본적인 문제인가? 바로 그 점을 깊이 인지한다. 얼마 전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이란 영화를 보았다. ‘김복남’이라는 여자의 기구한 일생을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한 섬에 고립되어 세상과 접촉이 단절된 상태로 살아가면서 성적 학대와 노동 착취에 시달린다. 남편의 학대도 부족해 정신 장애가 있는 시남동생과도 원치 않는 성관계를 요구받는다. 게다가 몇 남지 않는 동네 할머니들까지 유일한 남성인 그들을 추켜 주면서 그녀에게 ‘서방을 떠받들라’는 요구를 서슴지 않는다. 급기야는 그녀가 낳은 어린 딸도 그들에게 성적 노리개가 된 사실을 깨닫고 울분을 느낀다. 그녀의 딸이 사고로 죽게 되자, 그녀는 7명 남짓한 모든 동네 사람들을 살인하게 되는 비극을 저지르게 된다.
그런데 ‘김복남 살인사건’의 주인공은 김복남이 아니라 김복남 친구로 등장하는 도심지의 친구이다. 배우고 똑똑한 서울 사는 친구가 자기를 구원해 줄줄 알았던 김복남은, 친구가 자신의 고통을 철저히 외면하자 이제는 의지할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김복남과 그 동네 사람들의 처참한 비극을 목격하고 죽음의 문턱까지 다가간 도심지 친구의 심경에 문제의식이 생긴다. 좀 더 배웠다 하는 사람들의 일종의 책임감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면서 전혀 상관없는 남들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서울로 돌아온 친구는 자신의 증언을 필요로 하는 자리에 찾아가서 약한 자의 손을 들어 담대히 증언을 한다. 문제의식은 자신의 삶을 바꿀 뿐 아니라 남들의 삶조차도 바꾸는 힘이 있다.
이와 같은 극단적 상황은 아닐 지라도, 자신이 몸담고 있는 작은 환경 속에 작은 변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문제를 직시하는 문제의식이 있어야 한다. ‘이 정도쯤은 살다보면 어떻게 되겠지’ 하는 태도로는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다. 하루하루를 끊임없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변화하는 노력 없이는, 이 세상의 가장 작은 것뿐만 아니라 본인 스스로도 바꿀 수 없다는 불편한 진리를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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