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에세이] '공포의 축(軸) - 편도체(扁桃體)' 이후
필자는 약 6년 전에 이 칼럼을 통해 ‘공포의 축-편도체’란 글을 발표한 바 있다. 우리는 두뇌라고 하면 대체로 대뇌를 연상한다. 두뇌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뇌는 동물이 진화하면서 포유동물에 이르러 발달된 새로운 두뇌인 것이다.하등 동물에서도 두뇌가 있기는 하지만 포유류의 두뇌와는 다르다. 냄새를 감지하는 후각신경계, 기억을 축적하는 해마(Hippocampus, 海馬), 그리고 공포를 관장하는 편도체(Amygdala) 등으로 구성된 오래된 두뇌가 있다. 두뇌 깊은 곳에 양측에 한 쌍식 있는데 대뇌 피질 주변부에 위치한다고 해서 변연계(邊緣系, limbic system)라고 칭한다. 인간을 포함한 포유동물도 하등 동물들로부터 진화해 왔기 때문에 두뇌 하부에는 원초적인 조직인 번연계가 자리 잡고 있다.
쥐를 이용한 반복된 실험에서 공포를 관장하는 중추는 아몬드 정도의 크기인 편도체로 알려졌다. 뉴욕 대학의 신경학자 조섭 르두 박사는 편도체야 말로 ‘공포란 바퀴의 축’이라고 표현했다. 이 곳은 마치 항공 관제센터나 마찬가지로 동물에서 공포가 발생할 때 감정을 통괄하는 중추 역할을 한다.
동물이 공포를 느끼면 편도체는 위험신호가 대뇌에 전달되어 인지되기도 전에 이미 자동적으로 전신에 스트레스 호르몬을 방출하게 하고 이에 따라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근육이 굳어지며 땀샘을 자극하여 온몸에 진땀이 나오게 된다. 한편 위장의 활동은 정지됨으로써 위험에 대처하는데 불필요한 신체 기능에 에너지 사용을 중단시키는 것이다.
이 편도체를 해부학적으로 제거하는 경우, 실험동물들은 공포를 모른다. 쥐가 고양이에게 달려들기도 하고 사슴이 사자나 호랑이 앞에서 여유롭게 놀고 있기도 한다. 편도체 파괴나 제거는 동물 실험에서나 가능하지 인체 실험에서는 시행할 수 없다. 실험 대상인에게 치명적인 손상을 남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0년 10월 16일자 과학학술지인 ‘커런트 바이올로지’에는 전혀 공포를 모르는 한 여인의 사례가 발표되었다.
그녀는 세 자녀를 둔 44세의 평범한 주부였는데 뱀이나 거미를 보아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괴기 공포영화를 보면 사람들은 손에 땀을 쥐고 비명도 지르지만 그녀는 그저 무덤덤했을 따름이다. 또 다른 사람들의 얼굴에 나타난 공포의 표정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증세를 보였다.
그녀는 20년에 걸쳐 편도체가 서서히 파괴되는 아주 희귀한 유전병을 갖고 있었다. 두뇌를 촬영해 보니까 편도체에 해당하는 부위가 모두 없어져서 두 개의 완벽한 블랙홀 같은 모습이었다고 한다.
젊었을 때에는 맹견이나 뱀을 보았을 때 무서워한 기억은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편도체가 완전히 파괴되기 이전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제 그녀는 뱀이 무섭다고 말을 하면서도 실제로는 뱀을 손으로 만지면서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15년 전 늦은 밤 칼을 들고 있는 마약범에게 겁도 없이 다가가 목을 찔릴 뻔한 적도 있었다. 우리들의 상식으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전혀 두려움을 모르는 여인이었다.
그녀의 행위를 보면 편도체나 해마 같은 하등 두뇌 구조가 모든 동물의 생존에 필수 불가결한 기능을 하고 있다는 동물 실험을 뒷받침 한다.
정유석 (정신과 전문의)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