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는다는 것은 '화' 다스리는 일이죠
LA 한국마켓 내 '월척 붕어빵' 최영빈 사장
인생에서 굽는 의미를 묻기 위해 붕어빵을 파는 최영빈(57) 사장을 만났다. 그는 "뭐든 굽는 것은 화(火)를 다룰 줄 아는 것"이라고 말했다. 붕어빵 하나를 굽는데도 인내가 필요하다고 했다.
사람도 알맞게 익는 시간 필요
고된 이민 10년만에 첫 가게
단맛 보고파 달콤한 붕어반죽
애환 빚어 정직 틀에 구운 꿈
크고 푸짐한 붕어 팔고 싶어
큰 붕어틀 찾아 직접 일본행
#애환을 반죽하다
최 사장의 붕어빵 반죽에는 이민의 애환이 녹아있다. 1996년 마흔에 가족들과 미국에 왔다. 낯선 땅에서 맨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늦도록 일했고 쉬지 않았다. 최씨는 마켓에서 물건을 나르는 '스탁맨'을 했고 아내는 식당에서 일했다. 밤에는 부부가 함께 빌딩 청소도 했다.
일은 고되고 험했다. "밤에 청소를 하다가 아내가 엘리베이터에 손가락이 끼어서 크게 다쳤어요. 수술받는데 얼마나 미안하고 안됐던지…"
수영장 청소업체를 넘겨받았다. 청소사업도 프리미엄이 붙었다. 주택 한 채당 청소비의 10배였다. 땡볕에 시원한 수영장 앞에서 땀으로 목욕해야 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고생 끝에 지난 2007년 첫 가게를 열었다. 한국 통닭집이다. 아내의 첫 직장이었던 인연으로 인수받았다.
"남들은 손바닥 만한 가게라고 할지 몰라도 우리 부부한테는 이민 10년 만에 마련한 터전이에요. 아마 가장 기쁜 때가 아니었나 싶어요."
개업 전날 붕어빵 틀을 몇 번이고 쓰다듬었다. 그동안 짠맛만 실컷 봤으니 이제는 단맛을 보고 싶었다. 달콤한 붕어빵 반죽을 시작했다.
#정직한 틀을 만들다
그의 붕어빵은 두 손으로 잡아야 할 만큼 크고 통통하다. '월척 붕어빵'엔 최 사장의 성실함이 담겨있다.
가게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붕어빵 기계를 바꿔야 했다. 틀이 갈라져 제대로 구워지지 않았다. 새 기계를 찾아 여기저기 수소문했지만 만족스럽지 못했다. 붕어틀의 크기가 하나같이 작았기 때문이다. 크고 푸짐한 붕어를 팔고 싶었다.
"밀가루 값이 단단한 무쇠틀까지 바꾼다는 사실을 아세요? 몇 년 전에 밀가루 값이 폭등하면서 붕어빵 틀이 작아졌다고 하더라고요. 크게 만들면 이윤이 줄어드니까요. 다들 작게 만드는 추세라서 큰 붕어틀을 찾기 어려웠죠."
해답은 일본에 있었다. 도쿄 관광길에 짬을 내서 도미빵기계 제작업체를 찾았다. 혼자 지하철을 타고 물어물어 찾아간 곳에서 월척 붕어빵 틀을 찾았다. 알루미늄재질이라 무쇠틀보다 가볍고 단단했다. 80kg짜리 기계 제작비와 운반비로 4300달러를 줘야했다. 그래도 아깝지 않았다.
"붕어빵은 넉넉해야해요. 가게 주인 입장에서는 무리가 되겠지만 손님 입장에서는 행복하잖아요."
정직한 준비는 정직한 결과를 낳았다. 새 틀은 히트를 쳤다.
#꿈을 굽다
최 사장은 붕어빵 6개를 5달러에 판다. 뭐가 남겠나 싶겠지만 붕어빵 매출이 전체의 30% 이상으로 효자 노릇을 한다.
붕어빵을 매일 몇개 굽는지 최 사장은 잘 모른다. 한달 매상을 기준으로 거꾸로 역산 해보니 하루 550개 꼴이다.
팥소도 가게 자랑이다. 만들어진 깡통 팥이 아니라 직접 쑨다. 하루 6시간 푹 끓인 뒤 굳혀 다음날 쓴다. 정성이 들어간 붕어빵의 인기는 꾸준하다.
"타주에서 와서 100~200달러 어치씩 냉동포장해달라는 손님들도 많아요. 아시아계 손님들은 '진짜 생선이냐'고 먹어보기도 하고요."
붕어빵에는 '복된 소식'도 담는다. 최 사장 부부가 출석하는 교회 목사님 설교 CD를 계산대 앞에 두고 손님들이 가져가도록 한다. 손님들 입장에서 장사하다보니 아직 사정은 어렵다. 재료비도 오르고 세금도 올랐다. 특히 올해부터 보건허가세(Health permit tax)가 2배 올랐다. 매달 1000달러를 내야 한다. 갚아야 할 융자금도 남았다. 그래도 미래를 기다린다.
"붕어빵 한 개 굽는 데 5분이 걸려요. 붕어빵도 알맞게 익는 시간이 있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뭐든 다 때가 있죠."
최 사장은 불황을 넘기고 형편이 좀 나아지면 오렌지카운티 쪽에 2호점을 꼭 내고 싶다고 했다.
붕어빵은 역설의 상징이다. 민생 정책에 민생이 없고 직원 복지에 직원이 빠진 세상이다. 하지만 그의 붕어빵 속에는 분명 붕어가 퍼덕이고 있다. 애환을 빚어 정직의 틀에 올려 인내로 구운 월척의 꿈이다.
정구현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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