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마당] 아버지의 여자들
이수임(화가·브루클린)
아버지와 아줌마 그리고 갓 결혼한 우리 부부, 이렇게 넷은 함께 여행을 떠났다. 속리산을 거쳐, 안동을 지나, 경주 불국사 그리고 백암온천까지 갔다. 돌아가신 엄마에게는 미안했지만 홀로 계신 아버지에게도 효도해야 하니 어쩌겠는가. 아버지가 하자시는대로 따랐다.
한국에 나갈 때마다 아줌마는 나에게 잘했다. 아버지와도 15년 넘게 잘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잠적했다. 아버지가 남산을 오르다가 다리를 다쳐 누웠기 때문이다. 누워 있는 아버지가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한듯 했다. 그러나, 워낙 건강하신 아버지는 곧 완쾌되었다. 아줌마를 잊지 못해하는 아버지가 안스러웠다. 나는 한국에 나가 그녀의 거처를 수소문했다. 그녀를 알고 있다는 충청도의 한 식당을 아버지와 함께 찾아가기까지 했다. 온종일 기다렸지만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인사해라, 아버지 걸프렌드다.” 세련되고 참한 분을 나에게 소개했다. 아버지는 그 동안 일본인 아줌마, 미국에서 살다 나간 아줌마도 사귀었다. 아마 내가 모르는 나보다 어린 아줌마도 있었을 것이다. 홀로 계신 아버지가 외롭지 않게 즐거운 여생을 보내실 수 있다면 난 누구든 다 좋았다.
몇 년이 흘렀다. 어느 날 밤중에 누가 문을 두들기고 있었다. 내다보니 아버지를 버리고 떠난 아줌마였다. 그녀는 엄청 뚱뚱한 모습으로 문 앞에 떡 하니 서 있었다. 아버지는 집 안으로 들어오려는 그녀를 제지하더니 ‘맥도날드에 가서 기다리라’고 했다. 부지런히 집안에 있는 돈을 다 챙겨서 맥도날드로 나갔다. 아줌마는 ‘잘못했다’고 빌며 ‘다시 돌아오겠다’며 눈물짓더란다.
“한번 떠난 인연은 다시 이어질 수는 없다. 어디에서든 잘 살아라”라며 챙겨간 돈을 주니 서럽게 울면서 가더란다. 그녀는 뉴욕에 있는 나에게도 한밤중에 국제전화로 ‘아버지의 마음을 돌려 달라’며 하소연하기도 했다.
“아버지! 왜 아줌마들과 사귀기만 하고 결혼은 안 하세요. 결혼하세요!” “오십 넘은 여인네들 크고 작은 지병들이 있어! 내가 좀 편하기를 바라고 호적에 올렸다간 되레 그들 병 시중 들게 된다.” 이어서 아버지는 말했다. “내 생에 결혼은 한 번으로 충분하다. 그것이 네 엄마에 대한 최소한의 나의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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