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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바람이 불어오는 곳

오랜만에 집안의 모든 창들을 열어본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말간 하늘이 들어온다. 푸르고도 맑은 투명한 하늘이 끝도 없이 이어져 온다. 그리고 바람이 불어온다. 충분히 보드랍고 따뜻해진 봄바람이다, 사철 햇빛이 뜨거운 캘리포니아에도 아주 조금씩 바람이 바뀌는 것을 느낀다.

남쪽 캘리포니아는 1월에서 2월 사이에 많은 비가 내린다. 그리고 이 비는 1년 동안 기다려 온 모든 만물을 축여주고 적시어 준다. 또한 그 물은 아주 조금씩 땅의 틈새로 흘러들어 깊고 어두운 곳에 엎드려 뿌리들에게로 간다.

땅은 겨우내 감추어 두었던 뿌리들을 위해 그 몸을 열고 조금씩 봄의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그리고 가파르고 메말라 있던 대지는 서서히 그 몸의 빛깔을 물들여 간다.

그렇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대지는 온 몸을 열고 겨우내 받아 두었던 씨앗의 눈들을 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피어나는 것들은 제 빛깔과 향기를 되찾으며 봄의 들판으로 나아오는 것이다. 이미 땅을 딛고 서 있는 사철 푸른 나무들에게도 계절을 지나온 잎들 사이사이로 연하고도 부드러운 움을 틔우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바람의 움직임이다. 어느새 바람은 차갑고 건조했던 겨울의 옷을 벗어버리고 자유롭고 부드러운 기운으로 몸을 감싸기 시작한 것이다.

봄바람, 나른하고 거품을 풀어놓은 것 같은 노곤한 기운 속에 나무들은 서서히 연하고 부드러운 초록의 물결로 피어나는 것이다.

봄이 온 것이다. 바람은 온 세상 곳곳의 풀과 나뭇잎들을 흔들며 소리없이 불어온다. 겨우내 빗질 한번 못한 유칼립터스나 후추나무에게 그리고 빈 몸으로 서 있던 자작나무나 단풍나무를 깨우며 바람은 땅 위의 모든 만물을 부풀리며 풀어헤친다.

햇살 좋은 들판이나 언덕으로 어느새 유채의 노란 물결이 송화가루를 뿌려 놓은 듯 안개처럼 번져있다, 무심히 바라보던 산이나 언덕바지, 마을과 마을이 이어지는 길, 길을 따라 둘러쳐진 담장 위에도 꽃, 꽃의 화관을 얹고 있다. 모든 것에 변화가 오기 시작한 것이다. 바람을 따라, 바람의 움직임을 따라, 바람의 속 피부 관절 마디마디의 흐름을 따라, 그리고 바람의 힘, 그 힘에 따라....

이맘때쯤이면 한국에서도 아직은 찬 기운이 남아있는 바람을 맞으며 산수유 나무나 목련, 라일락, 옥매, 수수꽃다리, 그리고 개나리, 진달래 등 수많은 봄의 꽃들도 꽃망울을 열고 있을 것이다. 봄볕이 잘 드는 들판이나 둑을 따라 꽃다지가 온몸에 짧은 털을 가득 달고 봄의 바람을 맞으며 살랑거릴 것이다. 양지바른 언덕이나 밭 두렁으로는 쑥과 냉이가 지금쯤 지천으로 피어날 것이다.

피어날 것이다. 온몸을 열고, 몸 속에 감추어진 봄의 씨앗을 열고, 세상 밖으로 밀고 나오는 작고 여린 생명의 힘을 뚫고, 부풀어 흐느적거리는 봄의 바람 곳으로 모든 피어나는 것들은 걸어 나오는 것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창문을 열어본다, 그리고 눈을 감아본다. 바람이 마음 속으로 불어온다. 과실처럼 튼실하고 풍요로움을 지닌 바람, 그들 다시 그리움 되어 날아가는 바람.
바람이 불어오는 그 곳으로.

임린(미주문인협회 회원)

<작가 약력>
▶경기 김포 출생
▶미주크리스천문학 시부문 가작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 수필부문 당선
▶미주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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