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각주구검의 교훈
이 문희 (신경심리학 박사)옛말에는 삶의 지혜가 담겨있다. 각주구검(刻舟求劍)이란 말도 그 하나이다. 그 말에 숨어있는 사연 또한 재미있다. 한 고관나리가 나룻배로 강을 건너는 중 가보에 속하는 칼을 그만 강에 빠뜨렸다. 선원들은 물론 나룻배에 함께 타고 있던 사람들이 어쩔 줄 몰라 당황하고 있을 때, 동행하던 선비가 얼른 그 나리가 서 있던 배 난간에 표를 그었다. 그 나리를 진정시키면서, 득의양양한 모습으로 이렇게 말했다. 자기가 보검 빠진 곳을 배전에 정확히 표해두었으니,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말 이었다.
앞뒤가 맞지 않는 궤변을 늘어놓는 사람이나, 현실과 동떨어진 이론만 앞세우는 사람을 속시원하게 꼬집어 주는 말이다. 어떤 경우에는 병적 신경증세나 두뇌이상으로 추리력을 잃게되기도 하지만, 학문을 연마한 이 선비와 두뇌질환을 연결하기에는 좀 가혹하고, 순간적 판단착오로 일단 용서해주자. 이렇게 자기도 이해 못할 엉뚱한 판단을 내리는 일은 늘 있기 때문이다.
정신고착증세라고 라벨을 붙이면 마치 불치병이나 된 듯, 얼른 피로, 스트레스, 감정폭발 등 부정적인 생활면모만 연상하게 된다. 그러나, 집념, 사랑 등 긍정적 면도 이성을 차단시키고 판단을 흐리기는 마찬가지이다. 전문서적을 펴 연구하지 않아도, 사랑에 눈이 멀었다든지, 일에 몰두하여 무슨 음식을 먹었는지 모른다는 예는 어디서나 본다.
집념이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에도 수용량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음에 한꺼번에 지닐 수 있는 품목은 겨우 일곱 개 안팎. 정확하게 말해서 5-9개이다. 놀랍게도 이용량은 성별, 연령, 지능, 교육, 문화권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다. 심지어 저능아나 정신병자도 예외가 아니다.
전화번호를 한 숫자씩 10품목으로는 도저히 외울 수 없지만, 국번, 지역번호, 끝번호로 나누어 3품목으로 줄이면 어린아이들도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또, 이 정량을 채우고 나면, 다른 일을 더 생각할 수 없다.
우리는 이 제한된 정량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쉴새없이 들어오는 정보를 취사선택한다. 예를 들어, 출근길에 보이는 모든 정보는 빠짐없이 두뇌에 잠시 저장된다. 정확하게 0.2초 동안이다. 그러나, 우리 마음은 이 수백만 화면을 수용할 능력이 없으므로, 0.2초 내로 주의를 주지 않은 화면은 기억에서 사라져 버리고, 원하는 화면만 저장하게 된다.
듣는 것도 마찬가지다. 시끄러운 파티에서 바로 옆 사람들의 대화는 기억에 남지 않지만, 한발 건너 있는 연인과 대화를 나눌 수도 있고, 어머니들은 심지어 건넛방에 있는 자기 아이의 울음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 그것은 아기가 어머니 마음정량의 한 품목을 계속 차지하고 있었으면서 약한 소리에까지 주의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 일화가 있다. 한번은 아침식사를 준비하던 가정부가 잠시 외출할 일이 생겼다. 아인슈타인 박사에게 스톱워치와 계란을 주면서, "이 물이 끓으면, 계란을 넣고 스톱워치 단추를 눌려주세요"라고 부탁하였다. 가정부가 돌아왔을 때 골똘한 생각에 잠긴 아인슈타인은 계란을 손에 들고 끊는 물에 잠긴 스톱워치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집념이 부른 정신고착이다.
사랑도 그렇다. 최근 한 독일 학회지에 이런 논문이 실렸다.
사랑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연인의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그 때 작동한 두뇌는 모두 주의력 집중과 기억력에 직접 관계되는 부위라는 것이다. 사랑의 힘이 판단력을 압도한 것이다.
삶의 만족도 조사를 보면, 어떤 일에 심취 - 문자 그대로 미쳐서, 마음의 정량을 최대한 쏟는 사람들이 인생을 더 보람되고 행복하게 본다고 한다. 직업, 가정, 취미, 사랑, 종교. 어느 한가지 일에 미쳐 보는 것은 삶의 만족을 부르는 일이다.
아마 그 선비도 자기 행동을 돌이켜보면서 우스꽝스러워 했겠지만, 그래도 행복감을 맛보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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