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 100주년 맞아 3D로 돌아온 타이타닉…첨단기술 입힌 영화 '새로운 감동'
참사 추모하는 각종 행사 잇따라
그 후로 100년이 지났다. 빅토리안 시대 후반을 장식한 타이타닉호는 빙산에 힘 없이 무너져버렸고 이내 근대가 도래했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손가락 하나로 모든 정보를 알아낼 수 있는 ‘정보화 시대’가 됐다. 그러나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하지 않던가. 현재 우리 시대가 직면한 빙산은 무엇일까. 영화·전시 등을 통해 100년 전 타이타닉 사건을 되짚어 보며 생각 산책에 나서보자.
◆3D로 재탄생=1997년 개봉 당시 제작비가 2억 달러에 이르러 ‘가장 비싼 영화’로 손꼽혔던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타이타닉’. 무려 18억 달러 이상의 흥행 수익을 올리며 12년 동안 유일한 ‘억 단위’ 수익을 기록한 영화로 남았다. 그 해 아카데미상에서도 14개 부문 후보로 올라 작품상과 감독상을 비롯한 11개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사람들은 세 번, 네 번이고 극장으로 달려갔고 영화가 주는 감동에 젖었다.
그 영화가 오늘 극장을 다시 찾는다. 15년 만에 대형 스크린으로 돌아온 영화는 ‘3D’라는 새로운 옷을 입었다. 그러나 3D라는 신기술이 주는 의미보다는 ‘타이타닉을 다시 영화관에서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더 크다.
“탐사를 위해 영화를 만든다”라고 말하는 캐머런 감독은 지난 달 26일에도 1인승 잠수정을 타고 타이타닉을 만났다. 서태평양 마리아나 해구 챌린저 해연(1만990미터)을 탐사했다. 이 곳은 가장 깊은 해저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도 매년 4월 14일이면 타이타닉과 빙하가 충돌한 시각인 오후 11시40분에 희생자들을 위해 애도의 잔을 든다고 한다. 캐머런 감독은 “더욱 깊어진 사랑과 상실의 감정을 담고 싶었다”고 재개봉 이유를 밝혔다.
◆전시·공연 등으로 만나다=타이타닉 참사를 한 눈에 보기에 전시만큼 편한 방법이 또 있을까. 오는 6월부터 뉴욕역사박물관(New York Historical Society, 160 Central Park West, 212-873-3400)은 어린이들을 위한 특별 전시를 연다. 전시에는 생존자가 직접 참사 현장을 기록한 글을 비롯해 각종 사진 등이 공개된다.
얼마 전 리노베이션을 마친 사우스스트릿시포트뮤지엄(South Street Seaport Museum, 12 Fulton St, 212-748-8786)도 오는 10일부터 ‘타이타닉 특별전’을 시작한다. 선박 갑판 설계도와 1953년 작 타이타닉 영화 등이 있다.
12일 오후 8시30분 링컨센터 데이빗루벤스타인아트리움(61 W 62nd St, 212-875-5350)에서는 ‘타이타닉 이야기(Titanic Tales)’라는 뮤지컬을 공연한다. 세계 초연인 이번 공연은 생존자들의 증언을 기초로 대본을 짰고, 참사 당시 연주자들이 연주했던 음악 등을 이용한다. 14·15일에는 타이타닉 역사 워킹 투어(212-465-3331)가 열린다. 생존자들이 뉴욕에 도착해 첫 발을 내디뎠던 피어54 등을 방문한다.
◆타이타닉을 기념하며=뉴욕시에도 타이타닉 참사를 기념하는 등대와 공원이 있다는 사실. 사우스스트릿시포트 근처 워터스트릿과 풀턴스트릿 사이에는 '타이타닉 메모리얼' 등대가 있다. 60피트(18미터) 높이의 이 등대는 타이타닉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1913년 사우스스트릿에 세워졌다 1968년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
타이타닉 참사로 세상을 떠난 아이다와 이시도르 스트라우스 부부를 위해 만들어진 스트라우스파크도 있다. 메이시백화점 공동 창립자인 이시도르는 연방 하원의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침몰의 순간, 부인 아이다는 구조선에 탑승할 기회가 주어졌지만 그는 “남편과 함께 50년을 살았는데 이제 떠나고 싶지 않다”며 거절했다. 부부는 갑판 위 의자에 앉아 함께 최후를 맞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 타이타닉에도 이 부부가 등장하지만, 갑판 위가 아니라 침대에 함께 누워있는 모습으로 나온다.
‘V’자 모양을 하고 있는 공원은 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애브뉴, 106스트릿이 만나는 교차점에 있다. 이 곳에서 한 블록 떨어진 '2747 브로드웨이'는 부부가 살던 집이었다.
또 91스트릿과 5애브뉴에 있는 영국인 저널리스트 ‘윌리엄 T 스테드 메모리얼’을 비롯해 현재는 ‘첼시 피어스’로 바뀐 타이타닉 도착 예정 항구 ‘화이트 스타 라인’, 생존자들이 머물렀던 제인스트릿과 웨스트스트릿 사이 ‘시먼스 인스티튜트’ 등이 있다.
이 밖에도 8일 동안 바다 위에서 타이타닉 참사를 기념하는 ‘타이타닉 기념 크루즈(Titanic Anniversary Cruise, 866-800-0719)’도 있다. 10일 뉴욕 피어88를 출발해 타이타닉이 빙산과 충돌한 자리까지 간다.
타이타닉 다룬 첫 영화는?
타이타닉을 다룬 첫 영화는 어땠을까. 놀랍게도 참사 직후 1달 여 만에 탄생했다. 게다가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뉴저지 포트리 출신의 타이타닉 생존자였다.
에클레어 스튜디오가 제작한 이 영화의 제목은 ‘Saved from the Titanic’. 당시 엄청난 화제를 몰고 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이유는 실제 타이타닉 생존자 도로시 깁슨이 연기했다는 점 때문이다.
깁슨은 1889년 뉴저지 호보큰에서 태어났다. 1900년대 초반 가수와 댄서로 활동하다 화가 해리슨 피셔의 눈에 띄어 그의 전속 그림 모델이 된다. 책과 잡지 등 표지에 등장하면서 ‘해리슨 피셔의 여자’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깁슨은 1911년 영화계로 눈을 돌린다. 곧 그는 파리에 본사를 둔 에클레어 스튜디오에 취직했고 포트리 린우드애브뉴에 있던 스튜디오(지금은 컨스티튜션파크)에서 주로 촬영했다.
이탈리아에서 휴가를 보내고 뉴욕으로 돌아오는 길에 깁슨은 타이타닉에 승선했다. 타이타닉이 충돌하던 당시 깁슨은 친구들과 라운지에서 놀고 있었다. 다행히도 깁슨은 첫 번째 구명보트를 타고 탈출한 뒤 구조선을 타고 뉴욕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프로듀서는 뉴욕 항구에서부터 그를 맞이했고, 곧바로 영화 작업에 들어갔다. 시나리오는 깁슨이 직접 썼다. 영화에서 깁슨은 사고 당시 입고 있었던 하얀색 실크드레스와 카디건, 폴로 코드 등을 그대로 입고 등장했다.
아쉽게도 1914년 화재로 영화 필름이 타 버려 깁슨의 연기를 확인할 방법은 없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무성영화 시대 최고의 영화 중 하나였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깁슨은 이 영화를 촬영한 직후 은퇴했다. 이후 2차 세계 대전 때 이중 스파이로 체포되기도 하는 등 기구한 삶을 살다 46년 프랑스에서 사망했다.
이주사랑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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