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혜영 기자의 味美…우리의 맛 '반지'
신선한 재료·전라도 풍미 만나
자연이 빚고 손맛까지 더했다
양지 육수·해산물 넣어
국물 자작한 삼삼한 김치
시간 지날수록 맛 깊어지는
칼칼·시원·담백한 봄 맛
꽃가루 흩날리는 봄이 되니 입안이 꺼끌꺼끌하다. 할머니가 손으로 쭉 찢어 올려준 김치 한 젓가락에 하얀 쌀밥이면 족할 듯 한데…. 허전한 어느 봄날 점심 반지라는 이름도 생소한 남도 김치를 만났다. 보기 좋게 다듬어진 굴.낙지.새우 등 해산물과 하루 전날 한소끔 끓여놓은 양지머리 육수 멀리서도 단내 풍기는 대추 배 사과가 향긋하다. 반지라는 말은 국물이 많은 동치미도 아니고 젓국과 고춧가루를 많이 넣지도 않은 중간 정도의 김치라는 뜻. 신선한 재료와 전라도의 풍미가 만났으니 맛은 보장된 셈이다.
서걱서걱 칼이 춤을 춘다. 껍질을 벗긴 뽀얀 무와 배는 가늘게 채를 썰고 생강과 마늘은 잘게 빻는다. 반으로 잘린 굴과 낙지가 푸근한 바닷 냄새를 풍기면 소금물에 절여진 배추가 심심한 풀 냄새를 불러온다. 곱게 개인 찹쌀 풀은 끓어오를 때까지 한 방향으로 계속 저어준다. 흐물거리지 않고 짓무르지 않게 조심조심 고춧가루.젓갈.과일 등이 섞인 양념을 배추에 발라주면 밤톨 같은 김치가 완성된다.
혹시나 김치에 공기 들어갈 새라 허겁지겁 둥그렇게 동여매는 모습이 갓난아이 쓰다듬는 엄마 손 같다. 한 순간도 눈과 손을 뗄 수 없는 작업. 옛 조상은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게 김장이라는 걸 알아 품앗이를 통해 정성을 지었나보다. 자르고 버무리고 휘젓고 채워 넣는 모습을 보니 '김치 쪼가리'란 말이 섭섭하다.
지난 밤 끓여낸 희뿌연 양지 육수를 항아리 속 김치 위에 붓는다. 국물 위로 김치가 떠오르지 않게 접시를 덮어 둔다. 5~7일 동안 익힌 반지는 진한 오렌지 빛을 띈다. 하얀 배추 속살까지 파고든 굴 향은 먹지 않고도 알 수 있을 만큼 시원하다. 물김치보단 육수의 양이 적고 보통 김치보단 짠맛이 덜하다. 큼직하게 썬 김치 한 조각을 입에 넣으니 놀라움이 배가 된다. 지금껏 이런 맛은 처음이다. 고기 맛도 나고 비릿한 바다 향도 나고 새콤하고 풋풋한 배추 본연의 맛도 살아있다. 어느 맛 하나 도드라지지 않고 한 데 어울려 심심한 듯 새콤한 맛을 이뤄낸다.
아삭아삭 씹히는 배추 줄기 한 토막이 고소하고 달착지근하다. 담백한 육수가 진품. 시간이 지날수록 맛과 향이 깊어져 칼칼하고 시원하다. 특이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아무리 먹어봐도 이 맛을 견줄만한 김치가 없다.
봄이 왔다. 반지는 봄 맛이 났다. 시원하고 담백한 알쏭달쏭한 맛.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알고 있던 정겹고 아득한 우리의 맛과 향이다.
☞반지? 절인 배추에 무 배 밤 잣 미나리 굴 낙지 등을 배춧잎 사이사이에 끼우고 큰 겉잎으로 소가 빠지지 않게 잘 싸서 항아리에 차곡차곡 담고 양지머리 삶아 식힌 물에 소금을 타서 삼삼한 간이 되게 한 국물을 부은 김치. 전라도 지방에서 많이 담가 먹는다.
김치클래스
▶일시: 4월 21일(토) 오후 2시~4시
▶장소: 한송뷔페(1925 W Olympic Blvd. LA)
▶후원: 풀무원
▶협찬: CJ 푸드
▶문의: (213) 368-2696
※ 참가비는 80달러. 1, 2회 참석자에게는 20달러 할인 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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