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건축물 들여다보기…건축학 개론 in LA
갑자기 한국 사람들이, '건축'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영화 '건축학개론'이 흥행돌풍을 일으키더니, TV예능프로에서는 '남자, 건축을 말하다'라는 프로젝트를 방송했다. 그러고 보니 여러서부터 막연하게나마 마음속에 품고 있던 '내 집 짓기'의 꿈을 실현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한국에 있는 누구 엄마, 누구 아빠가 은퇴 후 교외로 삶의 터전을 옮겨 자그마하고 예쁜 집을 짓고 행복하게 산다더라'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돌아보면 건축은 항상 우리 삶 속의 일부였다. 그러나 진지하게 호기심을 갖고 건축에 접근해 본 적은 드물다. 이번 기회에 '건축'이라는 시선으로 우리의 도시를, 우리의 삶을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 건축가 오세윤씨에게 LA 인근 주요 건축물에 관한 정보와 그 감상법을 들었다. 이름하여, '건축학개론 in LA'다.건축과 도시는 불가분의 관계다. 건축은 도시를 이루고 그 도시는 또 다시 건축에 영향을 미친다. LA의 건축은 그 도시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인 다양성 자유로움 풍요로움과 그 맥락을 같이한다. 풍요로운 햇살과 쾌적한 기후 그리고 넓은 대지는 건축가들에게 자유로운 사고와 유연성을 가져다 주었고 그로 인해 LA인근에서는 다른 그 어느 지역보다 실험적이고 자유로운 건축스타일이 실현되었다.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건축에서부터 고전적이며 근대적인 건축까지 LA에서 우리는 도시만큼 다양하고 자유로운 건축을 만날 수 있다.
◆솔크 연구소(Salk Institute)
20세기를 대표하는 거장 건축가 루이스 I. 칸이 1960년에 설계하고 1965년에 완공한 솔크 연구소는 UCSD 캠퍼스 근교에 자리하고 있다. 펜실베이니아에 기반을 두고 교육과 연구에 전념하던 루이스 칸은 50세가 넘어서 그의 연구와 교육의 성과들을 실현시켜 나가기 시작했는데 라호야에 위치한 솔크 연구소는 텍사스주 포트워스에 위치한 킴벨 미술관과 함께 그의 몇 안 되는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힌다. 단순하면서도 기하학적인 형태의 반복으로 대표되는 그의 건축은 형태상으론 단순하기 그지 없지만 기본적인 재료(콘크리트 벽돌)와 드라마틱한 태양빛의 역할로 정적이면서도 숭고한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솔크 연구소도 예외는 아니다. 아무런 기능없이 단순히 비워진 코트야드를 두고 대칭을 이루는 각 연구동 건물이 가져다 주는 반복적 단순함은 캘리포니아의 태양빛과 만나 숭고하면서도 극적인 공간을 연출한다. 생물학 연구소 시설이지만 코트야드에서 서서 가지게 되는 느낌은 흡사 종교시설에서 가지게 되는 느낌과도 비슷하다.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아무것도 없이 비워진 정원에서 건축의 위대함을 느끼게 된다. 시시각각 변하는 캘리포니아의 태양과 콘크리트가 만들어내는 그림자의 움직임들은 건축공간에서 빛이 가져다 주는 아름다움 또한 느끼게 해준다. 주중에는 코트야드를 일반인에게 개방하고 점심시간에는 무료 건축 가이드 투어도 있다.
▶10010 North Torrey Pines Rd. La Jolla CA 92037 www.salk.edu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 (Walt Disney Concert Hall)
LA를 대표하는 건축가 프랭크 O. 게리는 파격적이면서 실험적인 건축 스타일로 1980년대까지 철저하게 비주류였으나 1989년 프리츠커상 수상과 함께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그가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은 1997년 스페인의 자그마한 폐광도시 빌바오에 지어진 구겐하임 미술관 덕인데 폐광 후 재정적으로 큰 어려움에 있었던 빌바오는 이 미술관으로 인해 단숨에 문화도시로 탈바꿈하게 되었고 도시의 경제적 성장은 물론 수많은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었다. '빌바오 이펙트' 라고도 불리는 이러한 현상의 중심에는 프랭크 게리의 빌바오 구겐하임이 자라하고 있는데 재미있는 사실은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에 자리하고 있는 월트 디즈니 콘서트 홀이 이 빌바오 구겐하임의 모태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1988년 월트 디즈니의 부인 릴리안 디즈니의 후원으로 개최한 국제 현상 설계 공모전에서 당선된 이 계획안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디자인으로 주목을 받았으나 설계과정에서 엄청나게 불어나는 예산으로 인해서 보류되기에 이른다. 이에 프랭크 게리는 이러한 디자인 컨셉을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에 적용하여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고 이후 월트 디즈니 콘서트 홀은 다시 공사를 재개하여 2003년에 완공을 하게 된다. 혹시 월트 디즈니 콘서트 홀이 빌바오 구겐하임 보다 먼저 완공되었다면 'LA 이펙트'라는 말이 생겨나지 않았을까. 마치 장미꽃 같기도 하고 종이를 구겨서 던져놓은 것 같기도 한 파격적인 외관은 물론 내부 콘서트 홀의 음향에도 많은 신경을 썼고 콘서트 홀 내부공간이 그 안에서 공연을 하는 연주자에게 감흥을 일으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서 외관 못지않게 연주공간의 내부 디자인에도 외부 못지 않은 정성을 쏟았다고 알려진다. 외부정원과 연결되는 건물을 감싸고 있는 유선형의 판들 사이의 산책로는 또 다른 공간적 감흥을 가져다 준다.
▶111 South Grand Ave. Los Angeles CA 90012 www.laphil.com
◆천사들의 모후 대성당 (Cathedral of Our Lady of the Angels)
디즈니 콘서트 홀에서 3블럭 남짓 떨어진 곳에는 스페인 출신의 또 다른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라파엘 모네오가 디자인 한 천사들의 모후 대성당이 있다. LA 대교구의 주교좌 성당이기도 한 이 성당은 여타 우리가 생각하는 성당 건물과는 달리 현대적인 디자인의 성당 건물이다. 물론 이웃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디즈니 홀에 비하면 보수적인 형태임에는 분명하지만 이 건물 역시 교회건축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형태를 지니고 있다. 특히나 외부공간은 그 내부공간을 상상하기 어려운 형태를 하고 있으며 자칫 차가워 보일 수 있는 콘크리트는 캘리포니아의 햇살과 잘 어울리는 따뜻한 느낌의 황갈색 콘크리트로 그 거부감을 덜어냈다. 주변과의 관계를 우선시 하는 라파엘 모네오의 건축철학이 반영된 외부 마감이다. 육중한 청동문을 지나서 내부로 들어가면 단층으로 되어있는 엄청난 높이에 압도당하게 된다. '이 건물이 이렇게 높았나' 싶을 정도로 높은 층고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닫혀져 있지 않고 열려있는 중앙의 대성전은 빛을 투과하는 대리석으로부터 오는 자연광으로 인해 신비스러운 느낌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며, 성스럽기까지 한 공간의 느낌을 가져다 준다. 30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에도 불구하고, 공간의 비례감으로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말로서 설명 하기 힘든 종교건축 특유의 엄숙함과 숭고함을 느낄 수 있지만, 현대적이고 권위적이지 않은 외부 디자인은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는 종교건축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기에 충분하다. ▶ 555 W. Temple St., Los Angeles, California 90012, www.olacathedral.org
◆가주 교통국 7지구 본사 (Caltrans District 7 Headquarters)
프랭크 게리와 함께 로스앤젤레스를 대표하는 건축가인 톰 메인 역시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디자인으로 주류 건축의 흐름에서는 벗어나 있었다. 그 역시 2005년 프리츠커상 수상을 계기로 활발한 활동을 해오고 있으며, 다운타운에 위치한 가주 교통국 7지구 본사 사옥도 2004년 완공 후 이듬해에 그가 프리츠커 상을 받으면서 유명세를 탄 건물이다. 공상 과학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외관을 가지고 있는 이 건물은 평범한 오피스의 기능을 하고 있는 내부공간보다는 역시나 그 독특한 외관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데, 종이 접기를 하듯이 올라가는 듯한 외관은 지붕이 벽이 되는 독특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건물을 구성하고 있는 이 알루미늄 스크린 월은 햇빛이 비치는 양에 따라서 열리고 닫히게 되어 있으며, 밤이되면 건물이 열리면서 다운타운의 야경을 밝혀준다. 주출입구 쪽에 일반인에게 오픈되어있는 광장의 청색과 적색 줄무늬 네온사인은 캘리포니아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의 불빛을 형상화 한 것이라고 한다. ▶100 South Main St., Los Angeles, CA 90012
◆게티 센터 (Getty Center)
남가주의 빼놓을 수 없는 관광코스인 게티센터는 건축적으로도 가볼 만한 가치가 충분한 곳이다. 백색의 건축가라고도 불리우는 리처드 마이어는 모더니즘에 기반을 두고 그 언어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오고 있는 건축가인데, 다분히 고전적이기도 한 그의 건축에서는 LA의 기본적인 건축풍토와는 또 다른 규칙과 정형성을 찾을 수 있다. 게티센터는 그가 설계한 최대 규모의 프로젝트인데, 1984년부터 1997년 까지 무려 13년에 걸쳐 진행한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게티 센터를 이루고 있는 모든 건물은 철저하게 박스형태를 띄고 있다. 각각의 박스가 조화를 이루면서 나타내는 공간감은 고대 로마나 그리스의 성 혹은 신전과도 매우 닮아있으며 산 위에 자리잡은 장소성으로 인해서 그 느낌이 더 강해진다. 한가지 특이한 사실은 언제나 백색을 추구하는 마이어의 건축임에도 불구하고 백색이 많이 사용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그의 작품은 흰색의 알루미늄 패널이나 페인트칠된 콘크리트로 마감을 하는데 비해 이 곳 게티센터에서는 대부분 대리석을 사용했다. 병원처럼 차가운 느낌을 준다는 비평을 받아 온 그의 건축에서 대리석의 사용은 그것이 건축가의 선택이건 건축주의 선택이건 간에 흰색이 가져오는 차가움을 상쇄시켜주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게티센터의 주된 마감재로 사용된 대리석은 100% 이탈리아에서 수입한 것이다. 건축에 있어 건축주의 경제적 능력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새삼 느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 1200 Getty Center Dr., LA, CA 90049, www.getty.edu
◆프라다 에픽 센터 (PRADA Epic Center)
세계적인 명품 패션 브랜드 프라다는 주요 도시의 매장의 디자인을 유명한 건축가와 함께 하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뉴욕과 엘에이는 네덜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렘 콜하스가 맡아서 디자인했다. 자유롭고 기능적인 건축을 추구하는 그의 건축은 파격적인 아이디어와 형태로서 기존의 건축과는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콜하스는 한국에서도, 서울대 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등을 디자인 했다. 베벌리힐스 로데오 거리에 자리하고 있는 프라다 에픽 센터는 뉴욕 소호의 프라다 매장과의 연속된 작업이다. 1층 출입구에서 바로 2층으로 연결되는 계단은 언덕을 형상화한 것이다. 또한 이 계단은 알루미늄으로 이루어진 건물을 지지하는 구조적인 역할도 하고 있어 외부에서 1층 부분은 열려 있고 2층은 떠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일반적인 패션 매장과는 다른 독특한 동선 구조와 곳곳에 특이한 요소들도 눈에 띈다. 특히 프라다 스폰지라고 이름붙인 녹색의 내부 벽은 프라다의 브랜드 특성과 조화를 이루며 독특한 느낌을 준다. ▶ 343 North Rodeo Drive Beverly Hills, CA 90210
☞ 프리츠커상 (Pritzker Prize)
호텔 체인으로 널리 알려진 하이엇 재단에서 해마다 건축예술을 통해 인류와 환경에 기여한 생존한 건축가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린다. 1979년부터 해마다 전세계 건축가를 대상으로 10만달러의 상금과 메달을 수여한다. 2012년에는 중국 출신의 건축가 왕 슈가 수상했다. 한국 출신 수상자는 아직 없다.
건축 감상 '재미'
주변 환경과 어떻게 조화 이루는 지
배경 지식 미리 알면 '독특한 감동'
외관만 빙 둘러본다고 건축물 감상이 끝났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건축물을 보다 자세히 알고 가까이 느끼기 위해서는 올바른 감상팁이 필수다. 건축가 오세윤씨가 제안하는 제대로 된 건축물 감상을 위한 필수팁들을 모아봤다.
▶주변 환경: 건축은 단순히 사람이 사는 '집'이기도 하지만 도시를 이루는 하나의 요소가 되기도 한다. 주변환경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아니면 그 건물 스스로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고 있는지 또 건물이 주변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도 생각하면서 건물을 본다면 새로운 관점과 이해 방식으로 건축물을 대할 수 있다.
▶ 내부 공간: 건축의 본질은 사람이 사는 집을 만드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따라서 내부 공간이 어떻게 우리에게 감흥을 주는지 느껴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겉만 보지 말고 꼭 내부에 들어가 보자. 예기치 않았던 감동을 내부에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건물의 주된 용도를 염두해 두고 공간의 실용성과 편리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게 중요하다.
▶ 마감재료: 많은 사람들이 놓치기 쉬운 부분이지만 마감재료는 건물의 성격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공사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기도 하다. 알루미늄 패널과 벽돌이 주는 느낌은 그것이 같은 형태의 건물에 적용되었다고 해도 극과 극의 느낌을 가져다 준다. 일부 건축가들은 지역적인 특성을 반영하는 장치로서 외부 마감재료를 이용하기도 하니 이를 통해서 건축가의 세심함을 느껴보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다.
▶ 건축가 & 배경지식: 건축도 트렌드가 있고 건축가마다 추구하는 스타일이 있다. 특정 건축가의 작품을 계속해서 보다보면 그 사람이 추구하는 작업의 일관성을 발견 할 수 있고 어떻게 성장했는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건축 양식에 관한 지식이 있다면 같은 용도의 건물이 건축가와 건축양식에 따라서 어떻게 다르게 지어졌는지 비교할 수 도 있을 것이다. 대다수의 유명 건축물들은 설계부터 완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에피소드가 존재한다. 미리 이러한 배경지식이 알고 간다면 훨씬 더 재미있게 건축물을 감상할 수 있다.
도움말 : DRDS 건축설계사무소 건축가 오세윤 (seyoono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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