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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기업(10) 킴스특수신발] 32년을 굳건히…한인 최초 특수신발업체

맞춤형 신발로 뉴욕 한인사회 ‘발 건강 지킴이’ 역할 자부심
김기환 대표 장인정신이 이어온 장수업체…딸에게 기술 전수

플러싱에 있는 킴스특수신발은 당뇨나 각종 발질환으로 고생하는 이들에게 맞춤형 신발을 제작해 주는 곳이다. 또 기능성·건강 신발을 함께 판매하며 뉴욕·뉴저지 지역의 ‘발 건강 지킴이’ 역할을 하고 있다.

1980년 문을 연 이 업체가 32년이 흐른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김기환(63) 대표의 장인정신이 밑바탕이 됐다. 한인 최초의 특수신발업체라는 자부심으로 내실 성장을 기한 킴스특수신발은 이제 3대가 찾아오는 곳이다.



◆구두수선집으로 시작=킴스특수신발은 플러싱 키세나블러바드에서 구두수선집으로 출발했다. 비교적 적은 자본으로 도전해 볼 수 있는 사업이라고 생각해 3년간 김 대표가 로드아일랜드 자동차 부품공장에 다니며 모은 돈을 털어 그리스인이 운영하던 1500스퀘어피트 규모의 구두수선집을 인수했다.

이전 주인에게 밤·낮으로 기술을 배우며 아메리칸 드림을 꿈꿨다. 하지만 앓고 있던 발 질환이 발목을 잡았다.

김 대표는 “자동차 부품공장에서 계속 서서 작업을 했다. 그러다 보니 발이 퉁퉁 붓고, 통증이 심하게 와 여러 병원을 다녔지만 차도가 없었다”며 “그러던 중 고객으로 왔던 발전문의를 알게 돼 치료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 곳에서 의사로부터 특수신발제작 라이선스(OST: Orthopedic Shoes Technician)를 취득해 보지 않겠냐는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신발을 수선하며 익힌 기술에 전문적인 지식을 더하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 1990년 라이선스를 취득했다. 그는 “당시 한인으로 OST를 갖고 있는 사람은 내가 유일했다”며 “한인들에게 특수신발에 대한 개념이 알려지지 않았던 때라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한인들 사이에서 생소했던 ‘맞춤신발’이나 ‘특수신발’의 개념이 점차 보편화되면서 초반 90% 이상이 타인종이었던 고객층이 한인으로까지 빠르게 확대됐다. 김 대표는 “2000년대 들면서 기존의 타인종 고객과 더불어 한인 신규 고객이 꾸준히 증가했다”며 “지금은 특수·맞춤신발고객의 절반 정도가 한인”이라고 설명했다.

◆기술이 곧 브랜드=킴스특수신발은 매장 직원이 많지 않다. 김 대표와 아내 김미경씨가 전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냥 신발이 아닌 김 대표가 손봐주는 혹은 만들어주는 신발을 찾는 고객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많은 고객들로부터 뉴저지에 2호점을 내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몸이 2개가 아니라 직접 가서 고객을 만나고 발에 맞는 신발을 찾아줄 수 없다며 플러싱 매장을 지키고 있다.

발 건강에 문제가 있어 발전문의로부터 처방전을 받아 매장을 찾는 환자들에게 특수신발을 제작해 주지만 걷는데 불편함을 느끼는 일반 고객에게도 판매한다.

먼저 고객의 발에 맞는 신발을 만들기 위해 석고본을 뜬다. 사람마다 발 모양이 다르고 왼쪽과 오른쪽 발 모양도 짝짝이라 발에 맞는 신발을 제작하는 데 석고본이 기초 작업이다. 이렇게 만든 석고본을 가지고 발에 꼭 맞는 깔창을 만든다. 본을 뜨는 작업에서 신발이 완성되기 까지 걸리는 시간은 짧게는 2주에서 한 달 정도다.

김 대표는 “발에서 오는 통증은 무릎이나 허리 통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그런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신발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며 “때문에 한 켤레 만들 때마다 꼼꼼하고 정밀하게 작업해야 성에 찬다”고 말했다.

특수신발은 신발 깔창의 아치 지지대부터 발바닥 쿠션, 굽의 높이, 발가락부터 발등까지 이어지는 신발 높이, 신발끈까지 사소한 디자인 하나까지 발 모양에 따라 결정된다. 그야말로 ‘나를 위한 신발’이 탄생된다.

최근에는 특수신발이 어린이 체형교정용으로도 많이 팔린다. 걸음걸이나 발 모양에 따라 체형이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증상이 심해지기 전에 신발로 바로잡는다. 김 대표는 “부모들의 인식이 많이 변하면서 지금은 아이들 신발이 특수신발 판매의 30%를 차지할 정도”라며 “노년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특수신발 시장은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컴포트 신발의 대중화=특수신발을 전문적으로 하기 전, 넓은 구두수선집을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하다 생각한 것이 ‘신발 판매’였다. 당시 불편한 발과 신발이 주는 고통을 알았던 김 대표는 일반 패션신발 대신 기능성을 갖춘 컴포트 신발에 집중했다. 그렇게 딜러십을 획득한 것이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효도신발의 대명사 ‘사스’(SAS)다.

1982년 사스와 함께 건강신발의 원조격인 PW마이너 등을 함께 판매하면서 컴포트 신발 전문점으로 이름을 알리게 됐다. 이 가운데 사스는 당시 유태인들이 많이 찾는 신발이었지만 한인들에게는 유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신발을 구입한 몇몇 한인들에게 입 소문을 타면서 인기를 끌게 됐다. 또 한인들이 한국에서 관광 온 친척들까지 사스를 구입하라고 데리고 오면서 킴스특수신발은 한인 관광객들의 필수코스가 됐다.

이후 꾸준하게 판매하는 컴포트 신발 종류를 늘려 현재는 30여 개의 브랜드를 판매한다. 김 대표는 “단순히 신발만 파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발 모양에 맞게 굽이나 발 볼 등을 조절해 주고 있어 멀리서도 고객들이 찾아온다”며 “발 건강을 지켜주는 컴포트 신발 대중화에 기여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재 김 대표는 딸에게 신발 기술을 전수해주고 있다. 특수신발은 미국에서 대물림하는 업종으로 꼽힐 만큼 기술이나 전통을 중요하게 여긴다. 현재 딸 캐런씨는 롱아일랜드에서 업소 ‘컴포트슈즈’를 운영하며 신발 공부를 하고 있다. 김 대표는 “단골 고객들이 내가 은퇴한 후에도 매장을 찾을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동그라미 기자
[email protected]

◆킴스특수신발은…▶1980년 플러싱 키세나블러바드 선상에 구두수선집으로 출발 ▶1982년 컴포트 신발 대표 브랜드 사스 딜러십 획득 ▶1990년 김기환 대표, 특수신발제작 라이선스(OST) 취득 ▶2000년 플러싱 노던블러바드로 이전 ▶발 본 뜨는 용도로 사용하는 연간 석고 소비량=약 7800파운드 ▶사스 브랜드 연간 판매량=6000켤레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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