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론] 절망은 희망 반대말 아니다
조동호/퀸즈칼리지 교수·사회학
군사력과 경제력에서 선두를 달린 것은 물론이지만 소득 하위층의 가계소득 증가 속도가 상위층의 증가 속도보다 높았고 비 개신교도, 유색인종, 여성 같은 과거의 소외계층에 대한 사회적 기회가 확대되었다. 1970년대에 미국으로 쏟아져 들어온 한국인 이민자들은 때를 잘 만난 셈이다.
오늘의 미국은 어떤가? 군사력은 물론 세계 최강이고, 경제력도 중국과 유럽연합의 추격을 받고 있지만 아직은 선두를 지키고 있다. 최근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도 미국 경제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오늘의 미국은 어느 선진국보다도 더 불평등하다. 극심한 빈부격차의 전설처럼 된 과거의 아르헨티나 수준이다. 1979년부터 2007년까지 정상의 1%가 챙겨간 몫이 미국 전체소득의 88%에 이른다.
정상 0.1%의 연평균 소득은 인플레를 감안하고도 1974년 100만 달러에서 2007년에 710만 달러로 7배 넘게 증가했다. 상위 0.01%는 같은 시기에 400만 달러에서 3500만 달러로 거의 9배 증가했다. 반면 중산층의 가계소득은 맞벌이와 장시간 노동의 '저녁 없는 삶'을 대가로 겨우 같은 수준을 유지했다.
기회의 나라에 대한 믿음 속에는, 지금 나는 고생해도 나의 아이들은 잘살 것이라는 희망이 있다. 세대간 경제 유동성(Intergenerational Economic Mobility)이 상승하던 1950년부터 1980년까지 그 소원은 헛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1980년 이후 세대간 유동성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소득이 하위 20%에 속한 가정의 아이들은 42%가 같은 계층에 머물고 상위 20%로 진입하는 경우는 겨우 6%이다. 반면 상위 20%의 아이들은 42%가 같은 계층에 머문다.
미국인들은 세습 재산과 특권이 찌든 유럽을 '낡은 세상(the Old World)'이라고 비웃고, 누구나 평등하게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고 열심히 일하면 끝내 성공할 수 있는 '새 세상(the New World)'을 자랑해왔다.
아메리카의 꿈은, 물론 어떤 사람들에게는 아메리카의 악몽이기도 했지만 일종의 유토피아 기회이었고 때로는 세계를 매혹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퓨리서치센터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미국의 경제적 계층 유동성은 영국을 제외한 어느 선진국보다 낮다. 독일의 경제 유동성은 미국의 1.5배, 캐나다는 거의 2.5배, 덴마크는 3배 높다.
그런데 통계수치상의 극심한 빈부격차는 '우리 모두'의 경험으로 되지 못하고 있다. 오늘의 거지 나사로는 자색 비단옷을 입은 부자의 집문 앞에서 구걸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수퍼리치(최고부자)의 생활영역은 기타 여러분들의 생활영역으로부터 거의 완벽하게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분리되어 있다. 싯달타 왕자가 궁궐 바깥 나들이 때 고해 속 허덕이는 중생을 볼 일도 없다.
모든 게 자기 할 탓이라는 사고방식 속에는 '사회문제'는 없다. 사회문제는 그저 몇몇 탈선한 개인들의 문제로 환원된다. 절정기 미국의 개인주의는 공동체에 대한 책임 속에서만 의미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요즘의 개인주의에는 공동체(commonwealth) 의식이 빠졌다. 나라걱정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현실이 이처럼 우울한 데 아메리카의 꿈은 희한하게도 고공행진이다. CBS 뉴스와 뉴욕타임스는 1983년부터 해온 여론조사에서 '귀하는 이 나라에서 가난뱅이로 출발, 열심히 일해서 부자가 되는 일이 아직도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묻는다.
'그렇다'고 대답한 사람의 비율이 1983년에 57%였는데 2007년에는 81%로 뛰었다. 대불황의 시기인 2009년에도 72%가 아메리카의 꿈을 긍정했다.
불굴의 희망인가 집단 환각인가? 미국 특유의 낙관론은 절망의 불구덩이 속에서 피닉스처럼 솟아오르는 참된 희망을 마취시키고 있는 게 아닌가?
희망의 신학자 몰트만이 보았듯이, 확실한 절망이야말로 희망의 확실한 표지라면, 세월이 어려워질수록 번성하는 성공 종교는 희망조차 상실한 영혼 없는 세계의 풍경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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