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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셔플레이스] 쿰바야, 아메리카

‘쿰바야, 주님, 쿰바야’(Kumbaya, my Lord, Kumbaya). 아마 이슬람권을 빼고는 전세계 어린이들이 즐겨 부르는 캠프송이 아닐까 싶다. 기독교 신자건, 불교 신자건, 누구나 어렸을적 몇번은 불렀음직한 노래다.

확실한건 아니지만 1900년대 초 사우스 캐럴라이나와 조지아주에 살고 있던 흑인들이 애창했던 영가라는 게 정설이다. 어느 선교사가 이 노래를 아프리카 어린이들에게 들려준 게 인기를 끌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곡이다.

멜로디와 리듬, ‘쿰바야’란 말까지도 아프리카인들의 정서에 꼭 들어맞았던 모양이다. 아프리카에서 히트한 노래가 본고장에 다시 들어와 뿌리를 내렸다고나 할까.

1950년대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야외에서 캠프를 치고는 함께 ‘쿰바야…’하며 장단을 맞췄다.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쿰바야’는 미국인들의 가슴에도 와 닿았던 것 같다.

‘쿰바야’는 아프리카 토속어와 미국의 영어가 혼합된, 이른바 ‘크리올’(creole) 말이다. 흑인 영어의 초기 형태다. 아프리카인들이 노예로 끌려와 살면서 자신의 언어와 문화를 지키려 안간힘을 쓴 것이 ‘크리올’로 나타난 게 아닌가 싶다.

어쨌거나 ‘쿰바야’를 우리 말로 옮기면 ‘(주님 또는 성령이여) 어서 오소서’가 된다. 기독교 신앙과 아프리카인의 정서가 접목돼 있는 말이다. 노래는 마치 우리의 ‘타령’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노래의 2절은 더욱 울적하다. ‘쿰바야, 내 울음소리를 들으소서, 쿰바야.’
옛 흑인들은 ‘쿰바야’를 부르며 이 땅에서의 어려움을 견디어 낸 것이다. 어찌보면 신세 한탄이 아니라 언젠가는 이겨내리라는 승리의 노래가 아닐까.

‘쿰바야’를 히브리어로는 어떻게 부르는지 모르겠지만 유대인들도 4,000년전엔 깃발을 흔들며 ‘어서 오소서’를 외쳤다. 모세의 지휘로 홍해를 건너 가나안 땅에 첫 발을 딪자마자 아말렉이란 부족에게 기습공격을 당했다. 용케 이집트는 탈출했지만 종살이를 하던 터에 전투를 치른 경험이 있을리 없었다. 오랜 행군으로 기진맥진한 사이 배후에서 적이 나타난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민간인 신분이었을테니 요즘으로 치면 테러 공격을 당한 셈. 아말렉의 무차별 공격으로 숱한 사상자가 나왔을게다.

이 싸움은 이스라엘이 공동체로서는 처음 치르는 전투였지만 경험이 없어 무척 당황했다. 상대는 게릴라전에 능숙한 전사들. 숫자로는 이스라엘이 월등히 많았으나 아말렉의 전술에 말려들어 궤멸직전이었다. 이때 모세의 손에 들려있었던 게 깃발, 성경엔 ‘네시’로 나와 있다. ‘네시’를 흔들며 ‘어서 오소서’를 외치자 이스라엘은 하나로 뭉쳐 아멜렉이란 테러집단을 응징할 수 있었다.

모세가 야훼의 말을 인용해 한 말은 ‘아말렉을 없애 기억도 못하게 하리라.’ 악의 무리는 반드시 뿌리를 뽑아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다부진 결의를 내보였다. 그리고는 이 깃발을 전투가 벌어졌던 장소에 꼽아 제단을 쌓았다.

미국에서 요즘처럼 깃발이 홍수를 이루고 있는 건 2차대전이후 처음이 아닌가 싶다. TV 화면도 온통 성조기로 꽉 차 있는듯한 느낌이다. 여기에 간간히 테러 폭파장면을 내 보내고 있어 오히려 언론이 정부와 국민에 전쟁을 부추기고 있는듯한 인상마저 준다.

공연히 이민자에게 눈총이 갈까 뭣해 성조기를 사려해도 이미 동난 곳이 적지 않다.

맹목적인 애국심일까, 아니면 악의 집단을 응징하자는 결의일까. ‘쿰바야, 아메리카, 쿰바야.’ 보복이 아닌, 정의를 곧추 세우는 성조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쿰바야, 아메리카.’

박용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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