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 '비운의 복서' 김득구 아들 비하인드 스토리
"맨시니 가족도 과거 사슬 풀어야죠"
"이젠 마음 편하게 사세요"
올해로 사망 30주기 맞아
맨시니 전기·다큐 등 나와
"뭔가 이제서야 제 인생이 이어지는 것 같아요. 생각의 끈으로. 아버지의 마지막 경기 30년 전에 엄마 뱃속에 있던 나를 위해 열심히 싸웠구나. 아버지가 어머니를 정말 사랑하셨구나 … . 가슴 깊이 느꼈어요."
#. 30년 전
'비운의 복서'와 '불운의 복서'가 링에서 마주섰다.
1982년 11월 13일. 라스베이거스 시저스 호텔 특설링에서 한국의 복싱스타 김득구는 14회 혈전 끝에 미국의 복싱영웅 레이 맨시니의 연타를 허용한 뒤 의식을 잃었다. 나흘 뒤 그는 임신한 아내를 뒤로 하고 23세의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떴다.
김득구가 비운의 주인공이었다면 맨시니는 불운한 스타였다. 김득구를 죽게 했다는 죄책감과 충격을 이기지 못한 그는 전성기에 링을 떠났다.
#. 29년 후
2011년 6월 23일. 맨시니(51)는 샌타모니카 집 앞에서 안절부절했다. '링에 섰을 때도 이렇게 떨린 적이 없었는데….' 곧 흰색 캐딜락 에스컬레이드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심장이 터져버릴 것만 같은 순간. 파란 스포츠 자켓과 카키 바지를 입은 젊은 청년이 차에서 내렸다.
고 김득구 선수의 아들 김지완(29)씨였다. 그의 어머니 이영미씨와 함께였다.
맨시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자네를 만나고 싶었네. 자네 역시 나를 만나고 싶었다고 들었네. 그런데 막상 만나니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 지완씨는 "어머니부터 소개해 드릴게요"라고 답했다.
검은색 카디건과 블라우스를 입은 영미씨가 맨시니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맨시니는 복받치는 감정에 눈물을 훔쳤다. "제가 비로소 편히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완 씨가 말했다. "그래요. 이제 아저씨도 편하게 사실 때가 됐어요."
#. 30년 후
김득구 사망 30주기인 올해 김득구와 맨시니의 이야기가 재조명을 받고 있다. 베스트셀러 작가 마크 크리걸이 지난 18일 '좋은 아들:레이 맨시니의 인생( The Good Son:Life of Ray Mancini)'을 출간했다.
크리걸의 책을 토대로 한 다큐멘터리(제시 제임스 밀러 감독)도 만들어졌다. 이 다큐멘터리는 20일 워싱턴 DC에서 언론 시사회를 통해 소개됐다.
책과 다큐멘터리의 클라이막스는 맨시니와 지완씨의 극적인 만남이다. 크리걸은 21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영미씨와 지완씨는 그동안 언론 접촉을 극구 꺼렸지만 맨시니가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꿈을 위해 싸웠던 복서였다는 사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책 테마가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인터뷰를 허락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맨시니와 지완씨의 만남은 전적으로 지완씨의 요청으로 이뤄졌다고 말했다.
현재 지완씨는 서울에서 치과의사로 활동 중이다.
#. 1년 전
지난해 6월 지완씨는 맨시니를 만나기로 결심한 뒤 생애 처음으로 아버지와 맨시니의 경기 동영상을 봤다. 그런데 경기를 본 뒤 심경의 변화가 일어났다.
링에 처절하게 쓰러지고 들것에 실려가는 아버지를 보니 맨시니를 향한 증오심이 끓어올랐던 것이다. 하지만 지완씨는 결국 LA행 비행기에 올랐다.
샌타모니카의 한 레스토랑에서 만찬을 나누던 중 맨시니는 김득구 유족을 향해 와인 잔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난 그 사건 이후 평생을 죄책감 속에 파묻혀 살았습니다. 복싱에 대한 열정도 다 사라졌죠."
지완씨는 "건강을 위해서라도 빨리 그만두길 잘했어요"란 농담을 한 뒤 어려운 고백을 했다. "저도 사실 경기를 본 뒤 당신을 향해 증오심이 생겼었죠. 하지만 차분해진 상태에서 다시 믿음이 생겼죠.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 당신 잘못이 아니라는 믿음이요."
영미씨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제가 아기를 가지고 있었잖아요. 저한테는 하늘이 무너져 내렸던 거였어요. 어떻게 혼자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걱정됐죠. 하지만 이렇게 만나니 우리 가족과 맨시니 가족이 칠흑같은 과거에서 비로소 해방된 것 같아요."
#. 다시 30년 후
제임스 밀러 감독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김득구 사망 30주기인 11월 17일에 맨시니가 지완씨 이영미씨와 재회한다"고 밝혔다.
그의 다큐멘터리는 오는 27일 한국에서 시사회를 갖고 11월에 극장에서 개봉될 예정이다.
원용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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