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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미친 짓이다?

[만남의 광장] 김정화 듀오 뉴욕지사장

이만교의 장편소설을 원작으로 쓰여진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신혼 초에 본 적이 있다. 결혼 10년차에 접어들어 한 번쯤 결혼이란 것을 돌아볼 여유가 있었을 때에 자극적인 제목과 영화 주인공이었던 엄정화와 감우성의 야릇한 포즈의 포스터에 매료되어 꼭 보고 싶었다.

나와 시댁과의 갈등으로 중간에서 힘들어하며 영화 제목만 보고도 앨러지 반응을 일으키며 영화관 앞에 가서까지도 꼭 보아야겠냐고 내켜 하지 않던 신랑을 반강제로 끌고 가서 보았다. 신랑 말 듣고 보지 말걸 그랬다. 결혼은 역시 미친 짓이었다.

원작과 영화에서는 ‘결혼’은 사회 통념적으로 두 사람이 맺는 사랑의 결실이라는 아름다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결혼이란 사회제도의 본질은 인간의 욕구충족을 위해 인간이 제도화한 매커니즘일 뿐 서로를 구속하기만 하는 미친 짓일 뿐임을 암시하고 있다. 결국 낭만적인 사랑이란 결혼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라는 말이다.

영원히 남의 편인 남편, 남의 자식인 남편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이 장밋빛으로 가득하리라는 여자들의 환상을 여지없이 깨주고 참 서럽게 할 때가 많다. 남편들이라고 왜 할 말이 없을까마는 본인이 여자인지라 오늘은 여자편에서 말하게 됨을 남편들은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거의 기인의 행색을 하고 진보적이고 전위적인 문학 작품으로 유명한 이외수님은 아내를 이렇게 울렸었다고 어느 토크쇼에서 말했다. 가난한 작가 시절 아내가 첫 아이를 임신했다. 초산이라 불안해 하는 아내에게 병원에 한 번 가라는 소리도 않고 해산 달이 다가와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안절부절 하고 있던 아내에게 이외수님은 “예수님도 마구간에서 태어나셨는데 우리도 집에서 아이를 낳으면 되지 뭐, 병원은 우리에게 사치야”라고 했다.

그래서 집에서 이외수님이 직접 아이를 받기는 했는데 탯줄을 어떻게 자를 수 없어 아내 친구인 간호조무사에게 부랴부랴 연락해서 첫 아이를 무사히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아내는 무심하고 무책임한 남편을 보며 결혼은 미친 짓이라고 한 번은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싶다. 그 때 이후 아내에겐 이외수가 아니라 '이웬수'가 되었다고 한다.

어느 지인의 실화이다. 가난한 유학시절 아내가 해산을 했는데 한국과 달리 산파할 사람도 없고 미국 병원에서는 비싼 입원실비로 인해 하루 만에 퇴원을 하고 집에서 자신이 손수 끓인 미역국에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쏟아 부어 밥을 말아 먹고 아이와 곤히 잠들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옆집에서 조그마한 불이 났는데 남의 편인 남편은 눈치도 없이 본능적으로 며칠 된 아이만을 포대기에 싸서 잽싸게 빠져 나갔었다고 한다. 지인의 아내가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생각만해도 천불이 난다고 했다. 여자들은 안다. 그 아내의 남편에 대한 서운함과 배신감을. 이런 남편들을 믿고 나의 모든 것을 바쳐야 하는 결혼 생활은 미친 짓임을. 제 정신으로는 결혼 생활을 영위할 수 없음을.

그렇지만 ‘미쳤다’는 단어는 나에겐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와 닿지는 않는다. 어릴 때 자랐던 꽃 좋고 물 좋던 동네에는 항상 머리에 꽃을 달고 다니던 소위 미친 여자가 있었다. 지금 기억해보면 옛날에는 미친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정말 찾아볼 수가 없다.

그 미친 여자를 나는 좋아했었다. 졸졸 따라다니며 함께 잘 놀았던 기억이 있다. 나도 같이 꽃도 꽂고 그 여자가 하는 걸 따라 하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사람들이 꽃 꽂은 나의 모습을 예쁘다고 했었다. 그 미친 여자는 한 번도 화를 낸 얼굴을 한 적이 없었다. 항상 즐겁고 행복했으며 내 친구들이 놀려도 마냥 웃는 얼굴로 우리를 즐겁게 해 주었었다. 부럽기까지 했다.

미칠 수 있다는 것이. 어릴 때의 그런 경험이 있었던지 나는 지금도 찡그린 사람을 보기가 거북하고 안타깝다. 많이 배울수록 많이 가질수록 찡그린 얼굴로 다닌다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다. 배운 것을 잊어 버릴까 봐, 가진 것을 잃어 버릴까 봐 그러는지도 모르겠다.

미친 것은 건강한 의미로도 다가온다. 미친 것은 행복한 것으로도 다가온다. 어딘가에 미쳐 빠지면 무아지경을 경험하게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결혼이 미친 짓이다’‘미친 짓은 건강하고 행복하다’ 고로 ‘결혼이란 건강하고 행복한 짓’이라는 결론을 내려도 되지 않을까? 다만 미쳐야만 행복한 결혼을 할 수 있는데 우리는 너무 이성적이고 계산적이어서 결혼은 미친 짓이라고 격하시키며 미치지 못하는 것을 미화시키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출근 길 가을 보슬비가 촉촉히 단풍에 내리는 이 아름다운 가을날. 나는 옛날에 살던 동네의 그 미친 여자와 이슬비를 받아 먹기 위해 턱이 빠지도록 입을 벌리며 뛰어다니던 추억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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