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북한을 가다-3, 젊은이들의 초상] "성격차이요? 고거 이혼 잘 안됩니다"
결혼식 피로연장 춤과 노래로 흥겨워하객들 차량 숫자 '멋진 결혼식' 잣대
"우리 인민들 밤 늦게까지 술 안마셔"
평양 시내 한 건물에서 음악과 노래소리가 흘러나왔다. 호기심이 발동했다. 뭘까. 노래소리가 나오는 2층으로 올라갔다. 결혼식 피로연이었다. 앞쪽에는 군복을 입은 신랑과 한복을 곱게 입은 신부가 앉아 있었고 옆으론 부모들이 자리 했다. 한창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었다.
무대에는 도우미로 보이는 유니폼 입은 여성이 흥겹게 몸을 흔들며 노래 하고 있었다.
하객들이 우르르 무대로 몰려 나왔다. 대체로 엉성한 막춤이었지만 표정은 한껏 분위기에 젖어 있었다.
아래 위 몸에 착 달라붙는 검정색 옷을 입은 여성이 남자들의 요구에 못이기는 척 하며 무대로 올랐다. 유연한 몸놀림에 환성이 터졌다. 음악은 신나는 트로트풍이었고 쉽게 따라부를 수 있을 것 같은 리듬이었다. 함께 구경하던 룸메이트는 "이 사람들 잘 노네"를 연발했다. 하객들은 얼추 100여명은 되는 듯했다. 남자들은 군인 복장이 많았다. 북한에서 직접 바라보는 피로연 장면을 놓칠 수 없었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이방인임이 탄로나지 않을까. 특히 하객도 아닌 사람임을 알게 되면 문제가 커지지 않을까 불안했다. 옆에 있는 하객 테이블에서 나를 힐끗 쳐다보는 이도 있었다. 적극적으로 나서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재미동포인데 너무 재미있어서 구경하고 있습니다." "아 그러십니까. 여기 앉으시죠" 합석을 권했다. 술 한잔씩 해 기분 좋은 얼굴이었다. 분위기를 파악한 다음에는 사진과 동영상도 찍었다. 아무도 신경쓰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북조선에선 연애 결혼도 많이 합니까" "그럼요 요즘은 중매결혼 점점 없어집니다. 연애결혼이 70~80%는 될겝니다." "웨딩 사진도 찍습니까" "결혼식 끝나면 두 지도자 동상이 있는 만수대 언덕에 가서 기념사진을 찍습네다." "오늘 하객을 보니 100여명은 될 것 같은데 여기도 하객들 많이 오도록 애씁니까." "그거 다 비슷하지 않갓습네까. 하객들 많이 오면 그 사람 위상이 높아진단 말입네다. 차가 많아 와야 합니다." 하객들을 많이 데려오기 위해 트럭이 동원되기도 하고 결혼식장에 얼마나 많은 차량이 주차되었냐에 따라 '멋있는 결혼식'이 좌우된다는 말도 했다. 하객의 규모 그것도 몰려든 차량의 대수로 위상을 보여준다는 말에 속으로 "거기나 여기나 똑 같군" 하는 생각을 했다.
피로연을 마친 신부는 화사한 노랑색 드레스로 갈아입고 신랑과 함께 밖으로 나와 하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신랑에게 다가가 "재미동포인데 피로연 너무 재미있게 봤다. 기념 사진 하나 찍자"고 요청했다. 신랑은 선뜻 좋다고 했지만 신부가 부끄럽다며 손사레를 치는 바람에 함께 찍지는 못했다.
대동강변에서 만난 한 부부와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서방세계에서는 이혼이 점점 많아져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데 북조선은 어떻습니까." "우리 조국에서는 이혼 잘 안합니다. 아니 잘 안됩니다. 습관적으로 폭력을 쓰거나 그러면 법원에서 허락할 수 있지만 성격차이 같은 걸로 이혼은 잘 안됩니다. 거저 그냥 참고 살아야지죠.(웃음)" "부부싸움도 자주 합니까." "고거 사람 사는 데는 마찬가지 아닙니까."
하루는 저녁 식사 후 9시 쯤 됐을 때 안내원에게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술집에 가서 어울려 한 잔하고 싶으니 안내해달라고 했다.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짓는다.
"이 시간에 말입네까. 저기 거리 한번 보십시오. 캄캄하지 않습니까. 다 문 닫았습니다. 우리 인민들은 밤늦게까지 술 안마십니다." "아니 술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 있을 텐데 그러지 말고 가르쳐 달라"고 했다. 안내원은 "다음 날 일해야 하기 때문에 밤늦게 술마시는 사람 거의 없다"고 했다. 잘 믿어지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실망한 끝에 밤 10시쯤 룸메이트와 함께 신시가지인 창전거리로 나섰다. '해맞이 식당'이라는 간판이 들어왔다. 올라갔더니 영업 중이었다. 우리 식으로 치면 카페였다. 고급스러웠다. 김정은 제1국방위원장이 앉았다는 자리도 있었다. 서너곳에 청춘남녀가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 연인들이 소곤소곤 사랑을 나누는 서울의 한 조용한 카페과 구분하기 힘들었다.
서울의 질펀한 밤문화를 떠올리며 술과 함께 이야기꽃이 만발하는 어느 서민 술집의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었던 기자는 적잖이 실망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창전거리의 트레이드 마크 같은 고층 아파트가 화려하다. 관광객이라면 누구라도 카메라 앵글에 담게끔 신경을 써서 조명 장치를 해놓은 것 같았다.
평양=이원영 기자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