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북한을 가다-4, 돈바람이 분다] "정치는 노동당이, 경제는 장마당이 지배한다"
배급제 와해되면서 주민들 돈벌이 나서
전국 200여 곳 형성…북한 경제 새바람
인센티브·매출 경쟁 등 자본주의 흐름도
부익부 빈익빈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불가피하다. 사회주의는 이런 자본주의 병폐를 없애고 모든 국민들이 골고루 잘 사는 사회를 지향하겠다고 만들어진 사회 이념이다. 사회주의에서는 체제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해 자본주의의 빈부격차 도시 슬럼화 자살 등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키며 반자본의의 학습을 시킨다. 북한이라고 예외는 없다.
사회주의 이상사회를 내건 북한이지만 '돈의 위력'은 여기서도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지하경제의 상징인 장마당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각종 기업소에서도 매출 신장과 인센티브 시스템이 가동되면서 자본주의적 경쟁 구도가 생겨나고 있다. 다양한 루트로 유입되는 물건들은 주민들의 소비욕을 자극하고 이를 위해 개인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돈벌이에 나서고 있다.
의식주 기본은 배급으로 충당하고 받은 생활비로 관급 매장에서 물건을 사야 했던 예전의 북한식 배급제는 현재 평양 외에는 거의 작동을 하지 않고 있다.
이번 방문 기간동안 장마당을 볼 기회는 없었다. 요청을 했으나 일정 상 여의치 않다며 양해를 구했다. 서방에서 온 사람들에겐 '북한의 급속한 자본주의화'로 해석될 것이 분명한 장마당을 쉽게 보여주긴 어려웠을 것이란 짐작이 갔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사람들이 돈 벌고 싶어하는 욕구가 곳곳에 스며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선물 가게 등에서는 점원들이 상품을 적극 세일하는 모습이 일반적이다. "매출에 따라 생활비 차이가 난다"고 했다. 대동강변 등에는 군데군데 몰래 물건을 파는 모습도 보였다.
호텔 근처에서 서성거리다가 산삼이라며 파는 여성 어린 아이들도 있었다. 각종 매장을 운영하는 기업소는 매출 실적에 따라 인센티브제를 적용하기 때문에 손님을 많이 끌어들이기 위해 보이지 않는 경쟁도 있다고 했다. 냉면으로 유명한 옥류관과 호텔 간의 '냉면 경쟁'도 치열하다고 한다.
평양의 주요 호텔들은 외국인 관광객을 더 많이 유치하기 위해 각종 루트로 여행사나 담당 공무원들에게 로비를 하기도 한단다.
"장마당에 가면 없는 물건들이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사고 싶은 것이 많은데 우리 생활비로는 맘껏 사지 못합니다. 요새는 장사하는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어서 부자도 많다고 합니다. 우리처럼 생활비 받는 사람들은 돈을 벌고 싶어도 별 방도가 없습니다."(20대 후반 여성)
사고 먹고 싶은 건 많고 월급은 정해져 있어 항상 빠듯한 형편임을 느끼는 게 그들이나 우리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은 숙소 주변에서 두 여성이 길 모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언성을 높이며 옥신각신 하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살펴 보니 한 쪽은 물건을 건네고 한쪽은 돈을 받는 거래를 하는 것이었는데 물건 값을 놓고 티격태격한 것이다. 과자 종류인 것 같았다. 두 여성은 한참 실랑이를 하다가 거래를 끝내고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함께 걸어갔다.
북한에서는 공식적으로 개인 비즈니스는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암묵적으로 허용된 장마당의 규모가 커지고 보편화되면서 이에 영향받은 개인 비즈니스가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장마당은 북한이 극심한 식량난으로 배급이 끊어져 아사자가 속출하던 1990년대 중반부터 자생적으로 태동했다. 배고픈 주민들이 집에 있는 물건을 내다 팔아 식량을 구입하는 식의 장터가 곳곳에서 형성됐는데 당국으로서도 생존이 걸린 자생적 거래행위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런 형태가 커져 지금은 전국 200여곳에 장마당이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 북한에서는 '정치는 노동당이 경제는 장마당이 지배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커졌으며 중국.한국.러시아산 물건들이 보따리상 등을 통해 대거 유입되고 있다. 배급제가 채우지 못하는 부분을 자생적인 장마당이 대신하게 된 셈이다.
북측 관계자들에게 장마당에 대해 여러 차례 물어보았으나 대답을 흐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반자본주의 사회에 들어선 장마당이 앞으로 북한의 개방을 앞당길 것이란 예측도 나오고 있다. 북한 당국으로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고민스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평양 시내에 최근 몇 년 사이 상점들이 크게 늘어난 것도 '장마당 효과'로 보는 이들도 있다. 장마당에서 돈을 번 이들의 구매력이 커지고 수요가 늘어나면서 상점들도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돈은 인체의 혈액에 비유된다. 돌고 돌면서 생명을 불어넣듯이 북한에 불기 시작한 '돈바람'이 북한 사회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는 것은 아닐까.
평양=이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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