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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북한을 가다-8. 열차로 압록강 건너다] "통일 되면 만납시다" 여성 역무원과 아쉬운 작별

북녘땅 가로지르며 옛 추억 되살아
시골스런 풍경 좋지만 민둥산 많아
압록강 넘자 단둥.신의주 모습 대비

평양에서 열차를 타고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출국하는 코스는 뜻밖의 수확이었다. 우리 일행 9명 모두 열차를 타고 싶다고 북측 관계자에게 요청을 해논 상태였지만 자리가 없어 출국 며칠 전까지 확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국제열차는 일주일에 두 번밖에 없는데다 그것도 객차가 몇 량 되지 않아 좌석을 잡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었다.

시골 풍경을 고스란히 볼 수 있는데다 창밖 동영상을 촬영하기에도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 간절히 원했다. 다행히 좌석이 확보되었다는 통보를 받을 수 있었다. 안내원에게 "열차 타고 가면서 동영상 촬영할 수 있나"고 물었더니 "글쎄" 하며 고개를 갸우뚱 했다. 시설 좋은 평양에 비해 낙후된 시골 도시와 농촌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노출되는데 사진 촬영을 허용할까 싶었다. 결과적으론 아무도 제지하는 사람이 없었다.

국제열차 칸은 문이 없는 방처럼 나눠져 있었고 한 방에는 마주 보고 3층 침대 형식으로 되어 있었다. 한 방에 6명씩 들어가는 구조였다. 둘러보았더니 유럽 여행객도 보이고 중국 관광객들이 많았다. 돌아간다는 북한 유학생 외교관들도 있었다.

기차가 평양을 벗어나자 정겨운 시골 풍경이 펼쳐졌다. 막 추수를 끝낸 들녘이 넓게 퍼져 있다. 멀리는 산기슭에 촌가가 보이고 추수 뒷마무리를 하는 농부들도 보인다.

군데군데 내 어린 시절 미꾸라지를 잡던 개울과 똑같이 생긴 개천이 흐르고 자그마한 다리도 정겹다. 기차를 향해 손을 흔드는 아이들도 보인다.

북녘의 평양과 시골의 모습은 극명하게 대비됐다. 도시와 시골이 빠르게 닮아가는 한국의 지방과는 달리 시골은 시골이었다. 남한 농촌에는 으악스런 콘크리트 덩어리 아파트가 들어서 시골 경관을 해치고 있는 것과 대비돼 마음에 들었다. 다만 연료 탓인지 민둥산이 많아 안타까웠다.

농가는 많이 낡아보였지만 야트막한 산구릉과 시골스럽게 잘 어울렸다. 중국으로 돌아가는 중이라는 북한 유학생에게 물었다. "지금까지 쭉 보니 시골에 아파트 같은 게 잘 안보인다." 이 학생은 "시골은 시골다워야지요. 우리 조국에서는 농촌에 아파트 같은 거 짓지 못하게 합니다." 이런 말을 내놨다. 실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말주변은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국의 반쪽을 관통하고 있다는 생각에 일행 모두는 무척 상기된 표정이 역력했다. 이북이 고향인 한 명은 농촌 풍경을 보며 "야 참~ 좋다"를 연발했다. 나이가 지긋한 이들은 어린 시절 고향 정취를 떠올리며 추억에 잠기는 듯했다.

오전 10시 10분에 평양을 출발한 열차는 오후 3시 반 신의주에 도착하기까지 대여섯 개 역에 정차했다. 역 주변으로 보이는 소도시 풍경과 열차를 타고 내리는 북녘 동포들의 차림새에서 우리들도 익히 경험했던 지난 날의 '가난'이 묻어났다. 40 50층 아파트가 속속 들어서며 발전하는 평양과는 대조적이었다. 남한도 그랬듯 개발의 도시 집중화가 북한에서도 뚜렷했다.

맞은 편 좌석은 세련된 차림의 중년 여성이 앉았다. 우리들이 감흥에 젖어 맥주를 마시며 떠들어대는 모습을 빙긋이 웃으며 지켜보더니 "선생님들 너무 흥이 좋으십니다"고 했다. 중동 쪽에서 일하는 북한 사업가의 부인인데 고향을 방문하고 돌아가는 중이라 했다.

다섯 시간 정도 걸려 신의주에 도착했다. 압록강만 건너면 중국 단둥이다. 신의주에서는 출국 세관검사를 하느라 2시간 정도 정차했다.

멋진 정복 차림의 여성 검사원이 다가와 "잠깐 짐 검사 하겠습니다"고 했다. 내 트렁크를 들여다보던 그녀가 책을 꺼내더니 묻는다. "이게 무슨 책입니까" "아 내가 읽으려고 가져왔던 한의학 관련 책이오." "아 그렇습니까." 책 속의 내용을 유심히 살핀다. "왜 그렇게 자세히 봐요? 그런 데 관심 있어요?" "제가 고려의학에 관심이 많단 말입니다." "그래요 그럼 그거 가져요. 난 또 사면 되니까." 여검사원은 반색하며 "정말입니까. 그럼 수표를 해주셔야죠." 북에서는 '사인'을 '수표'라 부른다. 통일 되면 미국에 꼭 놀러오라며 주소도 적어 주었다.

"그쪽도 나한테 수표해줘야지요." 나의 제안에 이 여성은 이름과 전화번호를 내 수첩에 적어 주었다. "다음에 또 오시면 연락하십시오." 우리 일행은 나와 이 여성의 짧은 교제(?)를 흥미롭게 지켜봤다.

압록강을 건너자 고층빌딩 숲을 이룬 중국 단둥에 도착했다. 강 건너자 너무도 다른 모습 애잔했다. 단둥의 현대시설에 편안함을 느낄 겨를도 잠시 말이 안 통해 진땀을 빼야 했다. 편리한 시설이지만 말 안통하는 중국 가난하지만 말 통했던 북녘땅 기분이 묘했다.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 '수표'를 해줬던 북녘 여성에게 굿바이 전화를 돌렸다. 전화국 녹음 음성이 들린다. "지금 찾는 그런 번호는 없습네다. 다시 알아봐 주십시오." 국제전화가 안되는 것인지 가짜 전화번호였는지 아직 모른다.

평양=이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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