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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시내 칼럼] 영어로 쓴 김치요리법

 싱싱하게 잘 익은 김치를 한 쪽 손으로 집어 먹으면 금방 쨍! 하고 정신이 들며 세상 살 맛이 난다는 김치 예찬론자가 있는가 하면 김치 없는 세상은 고무줄 빠진 팬티요 단팥 (앙꼬) 없는 찹쌀떡이라고 하는 김치 사수(死守)파가 있다. 냄새도 싫다며 김치 그릇을 식탁에서 밀어놓던 아이들이 대학교에 가서 한 해 기숙사 음식을 먹다가 집에 오면 코를 김치 보시기에 대고 킁킁거리며 맡다가 아~ 하고 행복한 비명을 지른다. 외국인들을 초대한 파티에서도 김치는 식탁 한 가운데 버젓이 나오고 깡통에 든 것이 아니라 현지에서 만드는 신선한 김치가 미국 식품점에 등장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런데 김치 인기가 날로 높아지면서 한가지 곤난한 일이 생겼다. 직장 동료나 이웃 사촌이 ‘김치 요리법 (recipe)’를 달라고 하는 것이다. 김치는 요리책 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대충 짐작으로 경험에 의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특별한 요리법이 없노라고 하면 그들은 자기 할머니도 그랬다면서 고개를 끄덕이지만 아쉬운 표정이 역력하다. 김치에 들은 고추가루는 지방이 몸에 축적되는 것을 감소시켜주는 효능이 있다고 김치 자랑을 한바탕 했던 뒤라 미안해서, “영어로 된 것이 있는지 한번 찾아봐줄게요” 하며 그 자리를 모면하는 수 밖에 없다.

 결혼한 딸이나 며느리를 본 친구에게서 들은 얘기다. “김치 어떻게 담가요?” 하고 그들이 물어보면 기특하고 대견한 마음에 신이 나서 설명을 한다. 그들은 얼마 동안 열심히 듣다가는, “그러지 말고 써서 줘요. 소금은 몇 숫갈, 고추는 몇 컵, 새우젓은 몇 온스, 이렇게요” 하고 요구한다. 답답하다. 우리네 요리가 어디 정확하게 양을 재어서 하는 것인가. 어깨 넘어로 보고 먹어보면서 간을 맞추고 저절로 손끝에 익힌 것이지. 그래도 한번 직접 해보려는 그들의 의도가 신통해서 짧은 영어로 적다가 보면 혼동이 온다. 매번 똑같은 양의 배추를 쓰는 것도 아니고 새우젓 대신 멸치젓을 넣기도 하고 미나리나 갓이 싱싱하면 그것도 넣고, 김치를 담을 때마다 들어가는 재료와 양이 달라지는데 무엇을 기준으로 ‘김치 요리법’를 만들지 난감하다. “이래서 나랑 같이 김치 담자고 했잖아? 그 때는 내 말 듣지 않구서” 하는 원망이 무심결에 나오고 즐겁던 분위기가 깨져버린다.

 며칠 전 근처에 있는 큰 책방에 갔었다. 요리책만 따로 진열해 놓은 책장에는 이태리, 프랑스, 중국 요리책은 셀 수도 없이 많고 일본이나 타이 요리책도 줄잡아 열 권은 되었다. 한국 요리책은 네 권 뿐이었다. 작은 책방에는 그나마도 없었다.

 영국에서 최초로 출판되었다는 한국 요리책, 「Flavours of Korea」에는 팔십이 넘은 저자의 할머니가 물려준 요리법과 옛날 이야기들이 실려있다. 「Korean Cuisine」의 저자는 중국 사람인지 영어와 한문으로 쓰여 있어서 신기하다. 「Dok Suni」는 ‘또순이’라는 한글 제목이 함께 나왔는데 "엄마의 장보기"라는 난에 깨소금, 두부, 김, 같은 재료에 대한 설명과 저자가 손수 쓴 한글 요리 이름이 큼직한 글씨로 나와 있어서 친근감을 준다. 최근에 나온 「Growing Up in a Korean Kitchen」은 저자의 가문에 대대로 구전(口傳)되어 내려오던 요리법 외에도 전통적인 한국 가정에서 자라난 어린 시절의 회고담, 이제는 어휘조차 사라져가는 장독대, 아궁지, 대청 마루, 부뚜막, 등 한국 가옥에 대한 설명, 남녀 구별이 엄격했던 유교 가정의 풍습, 등 한국 문화를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다.

 연말이다. 선물을 하자니 마땅한 것이 없고 하지 말자니 섭섭한 가깝고 귀한 사람에게 한국 요리책은 어떨가. 친한 친구 자녀의 결혼식 때 부조금만 내는 것이 어쩐지 미흡한 경우, 한국 요리책 한 권은 기념도 되고 유용하게 쓸 수도 있는 선물이 아닐가. 그리고 보니 남에게만 줄 것이 아니라 나도 한 권 사 가지면 ‘김치 요리법’을 적어달라는 미국 친구의 청을 흔쾌히 들어줄 수 있을 터이다. 비만과 연관된 병으로 인해 한 해에 30만 명이나 되는 사람이 목숨을 잃는다는 미국에서 신선한 채소와 곡식, 기름기 없는 고기와 생선을 재료로 쓰는 한국 음식은 단연코 건강식으로 부상될 것이고 따라서 ‘김치 요리법’을 원하는 미국인들도 점점 늘어날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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