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요르단-7 화 페트라 그리고 광야에서
이영묵 여행기
남아 있는 로마시대 원형 극장의 수용인원이 8000명 규모인 것으로 보아 2만명 이상이 살던 도시로 추정된다. 또 이집트에서 페르시아를 드나들던 대상들이 지나던 교역의 중요 거점 도시였다는 설명도 수긍이 간다. 고고학자들은 전염병이나 지진 등의 이유로 물 공급이 끊겨 살 수 없었던 사람들이 떠나면서 폐허가 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리는 영화 인디애나 존스 마지막 십자군에서 주인공 해리슨 포드가 말을 타고 지났던 높은 바위틈의 꼬부랑 길을 마차를 타고 갔다. 십 리도 안되는 길이었지만 더운 날씨에 지칠 것 같아 30달러나 주고 탄 마차다. 그러나 포장이 안 된 도로를 달리는 마차는 낭만적이기는커녕 담요를 깔았는데도 불편해 후회가 됐다.
드디어 영화와 여러 사진, 책에서 봤던 건물 앞에 섰다. 과연 경이로웠다. 부서지기 쉬운 이 사암 덩어리를, 어떻게 한 번의 작은 실수도 없이 이렇게 뛰어난 조각물로 완성할 수 있었는지 믿어지지 않았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니 그 조각들 하나하나가 이집트, 그리스 신화의 종교적 의미를 띄고 있었다. 과거 세계의 여러 문화가 이곳으로 유입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시 그들의 장례 의식은 바위에 굴을 파고 굴 속을 가족 묘지로 썼다고 한다. 시야에 들어오는 수많은 굴과 그 나름대로의 조각들이 나의 눈길을 잡았다.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것은 조그마한 돗자리 같은 것 위에 돌로 된 목걸이 등의 장신구 몇 개를 놓고 ‘원 딸라’라고 호객하던 대여섯 살 돼 보이는 소녀들의 모습이다. 분명 이 페트라 안에는 집이 없을 터이니 이 상품들을 십 리 이상 들고 왔을 것이다. 다 팔아야 몇 푼이나 되겠느냐마는 그 어린나이에 생존을 위해 힘들게 일해야 한다는 게 가련하게 느껴졌다.
기원전 약 170년경 에세의 후손이 살던 곳을 정복해서 세운 왕국이 라바트 왕국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모세가 40년 동안 떠돌던 광야로 나섰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그들은 약속의 땅 가나안을 가는 데 있어 조상인 야곱의 쌍둥이 형의 거처를 피해 가야 했기에 그렇게 오랜 기간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그 시작이 소위 세일 산들이다. 이 높은 산중 하나인 호로산에서 본 것이 모세의 형 아론의 장지였다. 아니 그곳을 기념하여 세워진 교회를 보았다고 해야 정확할 것 같다.
먼저 본 것은 그냥 황량한 땅이다. 그러나 그곳이 소돔과 고모라의 역사적인 땅이란다. 차를 타고 들어가니 왼쪽 둔덕에 20,000(2만)이라는 아라비아 숫자가 보인다. 이곳이 2만년이나 된 옛 사람 생활터인데 이제는 도굴로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는다고 한다.
또 소돔 사과라고 강한 독성의 사과 이외에는 풀 한 포기도 자라지 못하는 저주의 땅이라 했으나 베드윈 족들이 현대 문명과 결합을 했는지 지하수를 퍼 채소들을 재배하고 있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보였다.
이어 롯의 후손인 모합의 수도이자 ‘대왕의 길’에 위치해서 십자군이 군사 요충지로 성을 쌓았던 카락성(옛 이름 길 하랏셋)을 둘러보았다. 이슬람군의 영웅 술탄 살라딘이 자기의 딸을 능멸했다고 이곳 십자군을 공격했던 것이 십자군 패배의 시발점이다.
그 이후 예루살렘은 이슬람군의 점령이 인정되지만 기독교인의 성지 순례가 보장되는 협정으로 십자군의 시대가 끝나는 계기가 된다.
다시 푸른 들이 보인다. 베들레헴 부근에서 흉년이 나자 이곳으로 이주했다가 남편과 자식을 모두 잃어버린 나오미와 루시 이야기의 현장이란다. 그리고 나오미가 또 다른 며느리와 헤어졌다는 아르논 계곡, 아르곤 강, 아르곤 댐을 지나 세례 요한의 주검으로 명한 마케루스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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