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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에세이] 시인 만델스탐의 죽음

스탈린에 대한 풍자시를 발표한 지 6개월 후인 1934년 만델스탐은 비밀경찰에 의해 체포되었다. 스탈린은 만델스탐에게 개인적인 관심이 있었던지 파스테르나크에게 전화를 걸어 만델스탐이 자기에 관한 시를 남들 앞에서 낭독하는 현장에 있었던가 물었다. 파스테르나크는 시는 그저 풍자시일 뿐 별 의미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런 때문인지 만델스탐은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받았다. 시베리아가 아닌 북부 우랄 지역에 있는 체르딘으로 부인과 함께 추방당한 것이었다. 거기서 만델스탐이 자살을 기도한 후 감형을 받아 대도시만 아니면 아무 곳이나 선택할 수 있었다. 그와 부인은 보로네즈를 선택해서 1937년까지 거기서 살았다. 여기서 그는 독재자를 미화시키는 ‘스탈린 찬가’같은 시를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38년 시인은 “반혁명분자”라는 명목으로 재차 구속되어 5년 간 강제노동수용소로 가도록 판정을 받았다. 수용소로 가기 위해 잠시 머무는 캠프에서 그는 너무나 쇠약해서 홀로 설 수도 없었다. 그는 1938년 12월 27일 시베리아 블라디보스토크 근처에 있는 수용소에서 사망했다. 시신은 일반 공동묘지에 묻혔다.

20세기 초 소비에트 혁명이 성공한 이후 이 체제에 순응해 평안한 일생을 누린 문인도 많다. 그러나 이 시기를 대표하는 시인들은 대부분이 고통스럽게 생을 마쳤다. 프쉬킨 이후 최고의 시인인 블록은 굶어죽었다지만 숨쉬기 힘든 환경에서 질식당한 죽음이었다. “아크메이즘”의 주도자였던 구밀레브는 처형당했다. 예세닌과 마야코브스키는 자살했다. 만델스탐은 시베리아 강제노동수용소에서 사망했으며 마리나 츠베타에바는 극심한 경지에 몰려 자살했다. 아마 정신병원 신세까지 진 파스테르나크만이 강요된 죽음을 피했을 뿐이다.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우울증으로 자살한 예세닌만 제외한다면 다른 시인들은 개인의 창조성을 말살한 무자비한 공산주의 독재 체제에 의해 적응을 못하고 목숨을 걸고 항의하거나 그 결과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이다.

그런 현상은 바로 우리 눈앞에서도 전개되었다. 월북화가 김용준(金瑢俊)은 미술 평론가면서 뛰어난 수필가이기도 했다. 그는 한 때 서울 미대 학장도 지냈는데 한국전쟁시 월북한 다음 문인화를 옹호하다가 핍박을 받았다.

그는 북에서 평양 미술대학 조선화 강좌장(주임교수 격)까지 지냈다. 그러나 그는 64세가 되던 1967년 김일성 사진이 실린 신문을 쓰레기통에 내다 버린 후 처벌이 두려워서 자살했다. 당시 평양에서는 쓰레기 분리수거를 할 때 김일성 사진이 실린 신문은 그냥 버려도 안되고 접어도 안되었다. 김일성의 얼굴은 반드시 오려내야 했는데 이를 어기면 바로 사회에서 제거됨을 의미했다. 그런데도 아직도 남한의 많은 종북 지식인들은 이런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김일성-김정일 체제를 감싸기에 여념이 없다.


정유석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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