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에세이] 창조경제의 거인 '엘론 머스크'
오명호/HSC 대표
이 회사 최고경영자 엘론 머스크는 1971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백인 아버지와 캐나다 출신 백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18세 때 캐나다로 이주해 퀸즈대학에 입학했다가 2년을 마치고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경영학과 물리학을 복수전공했다. 그후 스탠포드대학으로 옮겨 응용물리학과 재료공학 박사과정을 밟던 중 인터넷 업체를 창업했다.
그가 처음 창업한 인터넷 기업이 페이팔(Paypal)이다. 이 회사를 매각한 돈으로 테슬라 자동차회사와 민간인으로는 처음으로 우주항공기 발사와 우주화물 나르기를 주업으로 하는 '스페이스 X(Space X)'사를 창업했다. 또한 태양열 발전 시스템을 만드는 솔라시티(Solar City)도 창업했다.
머스크는 세 가지 분야가 인류의 미래를 바꾼다고 믿었다. 첫번째가 인터넷, 두번째가 청정 에너지, 세번째가 우주항공 영역이다. 현재 그의 사업도 바로 이 세 영역에 속한다.
그는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 그리고 AC모터를 발명한 니콜라 테슬라,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월트 디즈니 등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의 자동차 회사 이름도 니콜라 테슬라라는 발명가의 이름을 따 만들었다. 1882년 테슬라가 만든 초기의 AC모터 디자인을 계승 발전시켜 테슬라 로드스터(Tesla Roadster)라는 전기 스포츠카를 만들어 전 세계 31개국에 팔았다. 이 차는 한 번 충전으로 200마일을 갈 수 있고, 출발해 60마일까지 올리는데 3.6초 밖에 걸리지 않아 개솔린차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또 이 회사는 완성차만 파는 것이 아니라 모든 자동차 회사들이 대량으로 전기차를 생산할 수 있도록 '일렉트릭 파워트레인 컴포넌트'를 판매한다.
머스크는 경영철학에는 돈도 벌고 환경오염도 막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그렇다면 미래를 볼 줄 알았던 이 창조적인 기업가가 자신의 조국인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왜 이러한 기업을 창출하지 못했을까. 어머니의 나라인 캐나다에서는 왜 불가능했을까. 그리고 중국과 일본에서는 가능했을까.
아마도 미국외에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들 국가는 이 젊은 친구가 혁신적인 사업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줄 수 있는 사회·정치·경제 구조를 갖고 있지 않다.
지금 한국은 창조과학부를 만들고 머스크 같은 젊은 기업가를 키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초기에 이 프로젝트가 안정적으로 정착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그러나 한국이 실리콘밸리처럼 산학이 연계된 연구와 벤처창업이 가능한 생태계를 만들어 주고, 실패 후에도 재기할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하고 기업인들의 모럴 해저드에 엄격한 제도를 도입한다면 못할 것도 없다.
세계최고의 경제 강대국은 바로 제조업에서 나온다. 미국은 월가라는 금융산업이 발달한 나라로 알고 있지만 새로운 제조업이 고부가 가치를 창출해 한 명이 100만 명을 먹여 살리는 나라다.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