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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론]박정희와 변증법

현재의 역사에는 지금의 상황을 깨뜨려 미래를 도래케 하는 파괴의 생명력이 자라고 있다. 철학자 헤겔의 변증법적 역사 철학이다. 예를 들어보자.

인간은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파악했다. 험산준령(險山峻嶺)과 심해(深海), 대하(大河)를 정복하기 위해 파괴의 도구도 개발하고, 교통·통신 수단도 발명했다. 덕분에 자연세계의 거리와 깊이는 인간에게 정복당했다.

다른 한편에선 대지의 생산성 한계를 정복하기 위해 화학약품을 뿌렸다. 작물은 커지고 많아졌다. 자연 정복사의 관점에서 지난 2세기는 인류의 성공시대였다. 나는 이 상황을 'Pax Modernitas'라 부르고 싶다. 끊임 없는 새로운 것들이 가져다 준 만족의 시대. 인간의 역사적 사명은 완성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니다. 인간 공동체의 자연정복 패러다임 속에 그것을 깨뜨릴 파괴의 에너지가 축적되고 있었다. 존재의 기본이 되는 물·공기·빛이 생명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너무 많이 먹고,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을 먹어 존재가 병약해지는 시대가 왔다.

만족의 시대가 불만족의 요소를 잉태했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했다. 친환경과 힐링. 인간의 놀라운 자연 정복이 만들어낸 패러독스다.

헤겔의 철학은 식민지 역사를 이해하는데도 유용하다. 식민통치자들은 식민지를 더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원주민 엘리트를 육성한다. 교육기관을 세워 자신들의 언어·문화·역사를 교육한다. 지배자를 닮은 식민지 특수층은 통치자의 뜻을 받들어 어련히 나서서 식민지 대중을 관리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현재를 파괴할 에너지가 생성된다. 지배자의 가르침으로 무장한 식민 엘리트들이 반식민지 투쟁을 전개한다. 제국주의 패러독스다.

세 인물을 예로 들 수 있다. 먼저 조지 워싱턴. 그보다 더 영국적인 미국인은 없었을 것이다. 버지니아주 민병대 장교로서 영국을 위해 싸웠다. 영국식 지주·신사로 살았다. 영국 귀족들처럼 여우사냥도 즐겼다. 옷도 디자인을 보내 런던에서 맞추어 입었다. 독립선언 10년 전까지도 영국과의 결별을 반대했던 그가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인도 독립투쟁의 상징 마하트마 간디. 그는 영국의 법치 전통에 푹 빠진 변호사였다. 남아프리카에서 활동했던 시절 영국의 인종차별적 정책을 성토하는 집회 마지막에 "하느님 자애로운 우리 폐하를 지켜주소서"로 시작하는 영국 국가를 제창한 그다. 보어 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 때는 앰뷸런스 부대를 조직해 영국을 도왔다. 그런 간디가 비폭력 무저항 투쟁으로 영국을 무릎 꿇게 했다.

호치민은 20대 초 고향을 떠나 프랑스로 건너간다.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마르세유에 도착해 식민지 관리를 육성하는 학교에 지원한다. 호는 프랑스 혁명을 흠모했다. '자유·평등·박애'를 식민지 문제의 해결책으로 확신했다. 하지만 그는 좌절한다. 좌·우파를 막론하고 프랑스 사회는 식민지를 포기할 수 없는 자산으로 간주했다. 이 자각은 호를 민족해방전선으로 이끈다.

식민지 엘리트가 반식민지 투쟁의 화신으로 변한 역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이들은 식민통치자들의 이상과 가치를 누구보다 잘 이해했다. 영국의 민주주의 전통을, 프랑스의 똘레랑스에 매료되었다. 이런 가치들이 식민지에는 적용되지 않는 위선에 분노한 이들은 궐기했다. 법을 알면 죄가 더욱 확실히 보인다.

한국도 식민지 역사를 경험했다. 일제도 식민 엘리트를 키웠다. 대표적 인물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창씨개명, 침략의 상징이며 도구인 만주국 군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혈서로 써 내려간 천황에 대한 충성맹세, 일본사관학교에서의 특출한 성적. 그는 일본의 가치를 받아들인 경우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일제가 배양한 식민지 엘리트로서의 능력으로 제국주의와 싸우겠다는 의식은 없었다. 워싱턴, 간디, 호치민과 달리 그에게서 변증법의 역사는 전개되지 않았다. 그랬더라면 박정희 시대는 정리가 쉬웠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기에 박정희 시대는 지금 '구국'과 '귀태(鬼胎)' 사이의 역사적 구천을 떠돌아다닌다.

한국사회는 박 전 대통령의 역사적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이 한계 속에서 자신과 나라의 존재감을 높이기 위해 그가 쳤던 몸부림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성숙한 역사관이다.

이 길 주
버겐커뮤니티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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