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신의 행복 칼럼] 중독이란 무엇인가.

오랜만에 ‘텍사스 홀덤’이라는 포커 게임을 했다. 휴가로 한국을 다녀 오면서 베이징을 들렸는데 게임을 배운지 얼마 안 된 친구가 게임장에 같이 가자고 했다. 한동안 이 게임에 빠졌던 나의 부끄러운 과거를 끄집어 내며 ‘프로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다며 꼬시는 것이었다. 친구의 간청을 무시할 수 없었던 나는 아내에게 ‘본토 중국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닐까’하고 눈치를 보았더니 휴가 기간이라고 허락을 해 주었다.

홀덤이라는 게임은 상대방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를 잘 파악 해야 이길 수 있다고들 생각 하지만 나는 다르다. 이 게임의 제일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감정 다룸과 인내심이다. 문제는 이 게임은 중독성이 심하다는 데 있다. 중독은 인간의 모든 감정 조절을 망가뜨리며 삶을 서서히 망치게 하는 아주 위험한 것이다.

홀덤을 같이 했던 중국사람들은 참 착하고 순했다. 그러나 안타까웠던 것은 순박한 내 친구가 이 게임에 빠져 든다는 것이다. 그게 내 눈에 다 보였다. 그날은 다행히도 내가 좋은 실적을 올려 딴 돈을 친구에게 다 내어 주어 그의 잃은 돈을 조금 만회했지만 걱정이 됐다.

호텔로 돌아 가면서 앞뒤를 잘 분간 못하며 홀덤에 빠졌던 나의 과거를 반추 하면서 멀쩡한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바보같은 일로 인생을 망치게 되는지 생각을 하게 됐다.

포커나 도박의 문제는 참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배운지 몇 달 안된 내 친구도 너무 재미있어 한다. 그에게 ‘이 게임은 도박이야. 잘못 빠지면 인생 망쳐!’라는 말을 해 준다고 도움이 안 된다. 하지 말라면 더 하게 되고 안 해야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하게 되는 것이 문제다.

두뇌 신경 전달 물질 중 제일 포괄적이고 강력한 물질이 ‘도파민’이다. 이것이 나오면 정신이 번쩍나고 집중이 되면서 신바람이 난다. 재미도 느끼게 한다. 그리고 목적이 뚜렷해지며 에너지가 생긴다. 그런데 도파민은 보상 시스템이 아니다. 보상을 얻고 목적을 달성했을 때 나오는 물질이 아니라 뭔가를 찾으려들고 노력할 때 나오는 물질이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얻었을 때 보다 얻으려고 노력하고 찾는 과정에 더 설레임과 기대감을 느낀다.

셰익스피어는 ‘얻은 것은 이미 끝난 것이다. 기쁨의 본질은 그 과정에 있으므로’라는 명언을 했다. 이 말에 나오는 과정의 기쁨이 바로 도파민의 역활이다.
겜블링이 재미있는 이유도 이 도파민 때문이다. ‘리자(Reza)’라는 학자는 중독성을 가진 두뇌들을 MRI로 찍어본 결과 슬랏 머신이나 겜블링 게임을 많이 하는 두뇌는 구조가 달라진 것을 발견했다. 이들의 두뇌는 니어미스(near miss, 슬랏 머신의 그림이 거의 맞추어 준 상태이나 보상이 없음)를 분간 못하고 얻는 것이 없는 데도 도파민이 나와 재미를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돈을 계속 잃는데도 중독된 두뇌는 재미를 느끼고 게임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모든 중독성은 도파민 시스템이 잘못되면서 일어나는 두뇌 현상이다.

‘나캔(Nakken)’이라는 저자는 중독성의 가장 결정적인 특성은 사람이 사람과 맺어야 하는 관계를 물질(약, 술, 담배)이나 이벤트(겜블링, 성, 지나친 연속극 관람 등)로 서서히 대신하게 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도파민에 사로잡힌 두뇌는 자제력이나 억제력으로 조절이 안 된다. 이성도 안 통한다. 그래서 중독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타이르거나 훈계로 잘못된 것을 지적하는 것이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역시 도파민의 문제는 도파민으로 싸워야 하는데 물질이나 이벤트에 중독된 두뇌를 사람 사귐과 어울림에 관심을 갖게 하고 인간 관계를 통해 재미를 느끼게 하면서 도파민 시스템을 바꾸어 주어야 중독성을 고칠 수 있다.

거의 칠년만에 접했던 홀덤 게임이었는데도 나에겐 위험했다. 그동한 없어진줄 알았던 홀덤의 도파민 시스템에 자극이 오며 그때의 짜릿한 재미를 다시 가져본 것이었다. ‘나는 역시 노름꾼 기질이 있는 놈인가’라는 생각 때문에 잠시 섬찟했다.



신현걸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