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의 샛강 동천강 / 늙지 않는 시인을 만나 / 그 삶을 닮아가고 싶어 나를 진정 사랑해야겠습니다 / 좋아하는 것을 마음 깊이 좋아하고 / 하고 싶은 말들을 모아 그림을 그리고 / 그림 같은 글을 담은 / 강물이 되겠습니다
바다와 땅 만나는 / 순천 와온 포구 / 걸어서 만난 막다른 곳에서 떠나가는 배 바라다 보겠습니다 / 절망은 입밖에 내지 않고 / 낯선이란 생각 버리려 / 푸른별 가까이 만나는 / 돌아오는 배가 되겠습니다
일생 만나는 사람과, / 매일 바라보는 풍경과, / 주변에 펼쳐진 사물 / 그들 주인은 가장 많이 사랑한 사람 것이라는 / 서로의 기억으로 / 인생 끝자락 꽃 피우는 / 천개의 보라 / 가슴 떨리는 와온 포구 / 노을이 되겠습니다
[신호철]
한참 전화통화를 하던 정시인이 전화기를 건네주며 통화를 해보라고 한다. “곽재구 입니다.“ 전화 너머 들려오는 잔잔한 첫마디에 난 섬찟 놀랐다. 그 곽재구 시인? 긴가 민가 전화를 하던 중에 나의 시화집 ‘물소리 같았던 하루’를 보고 순천에 있는 시화랑 ‘은하수’에서 나를 초대하고 싶다고 한다. 시화집에 있는 그림들과 시들을 엮어 전시회를 갖고 싶다고 하였다.
초대의 조건으로 왕복 비행기표와 한국에서의 체류비 일체를 제공한다고 하신다. 물론 그림과 자필시 원본만 가지고 나오면 순천에서 액자 만드는 일도 지자체를 통해 제공하겠다고 한다. 사실 같지 않았다. 꿈을 꾸고 있는 듯… 오늘 만나보고 싶다는 말에 선뜻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먼 길을 드라이브 해서 이곳 저곳을 들렸는데 피곤한 몸으로 다시 운전해 달라고 부탁하기가 미안하기도 했다.
낯선 도시 화순을 떠나 1시간 넘어 드라이브를 해 낮선 도시 순천시에 위치한 ‘시화랑 은하수’에 도착했다. 단정한 머리에 체크 셔츠를 걸쳐 입은 노신사가 길앞까지 나와 일행을 반겨주었다. 파킹랏 장소를 친절히 알려주어서 어설피 파킹한 차를 편안한 곳으로 옮겨놓을 수 있었다.
‘사평역에서’의 시인으로만 알고 있던 곽재구 시인을 만나고 있다. 소박하고 나이를 비껴갈 것만 같은 소년의 느낌이랄까, 옆집 아저씨같이 평범해 보이기도 하고, 언젠가 길거리에서 마주친 적 있는 지나가는 행인 같기도 한 친숙한 느낌이었다. 시인의 손에 이끌려 건물의 일층 시화랑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다지 크지 않은 화랑에는 자필로 쓴듯한 시와 그림들로 전시되어 있었다. 섬진강 시인으로 알려진 김용택 시인의 싯귀절을 따와 “나 찿다가 텃밭에 흙 묻은 호미만 있거든”이란 타이틀로 수묵화 이태호 화백의 그림과 원로시인 한승원, 김용택, ‘수선화’의 시인 정호승, 그리고 곽재구 시인의 자필 시가 전시되어 있었다.
거친 수묵의 터치로 순천 옥천서원 오백살을 훌쩍 넘긴 느티나무, 처진 가지에 매화꽃 몇 송이 벙글어지고, 봄소식 일찍 전하는 홍매 피어나는, 동천 언덕에서 남산으로 넘는 하현달의 그림들. 잊고 살았던 유년의 기억들을 소환해 내고 있었다.
이 긴 세월 난 어디로 흐르다 다시 그림 앞에 섰는가? 눈을 비벼도 뺨을 꼬집어도 나인데, 셀 수도 없는 긴 세월의 말미에 어쩌다 이곳에 흘러와 그림 앞에, 시 앞에 서 있단 말인가? 그리고 또 이 기막힌 떨림과 감흥이란 대체 무어란 말인가? (시인,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