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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나발니 1주기' 눈발 속에도 추모열기…50분 줄서 헌화

영하 날씨 불구 이어진 행렬…"나발니는 '희망'…감시 무섭지 않아"

[르포] '나발니 1주기' 눈발 속에도 추모열기…50분 줄서 헌화
영하 날씨 불구 이어진 행렬…"나발니는 '희망'…감시 무섭지 않아"

(모스크바=연합뉴스) 최인영 특파원 = 16일(현지시간) 오후 러시아 모스크바 남동부 외곽에 있는 보리솝스코예 묘지 앞.
눈발이 날리는 영하 8도의 날씨에도 빨간 카네이션을 든 사람들이 긴 줄을 이뤘다. 두 차례나 코너를 돌아야 할 정도로 긴 줄이었다. 언뜻 봐도 1천 명 이상은 온 듯했다.
1년 전인 지난해 2월 16일 러시아 최북단 시베리아의 교도소에서 47세의 나이에 의문사한 야권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를 추모하려는 사람들이다.
나발니는 반부패재단 등 단체를 설립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비롯한 러시아 고위 인사들의 부패를 폭로하고 반정부 운동을 주도해 푸틴 대통령의 최대 정적으로 꼽혔다.
나발니는 극단주의 혐의, 사기 등으로 총 30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2021년 1월부터 복역했다. 그가 세운 반부패재단도 극단주의 단체로 지정됐다.
나발니와 그의 활동에 지지를 표하는 건 경우에 따라 체포 가능성까지도 배제하지 못할 일이다.
친크렘린궁 텔레그램 채널에선 이날 나발니 사망 1주기를 앞두고 추모 활동에 나선 이들이 감시를 받을 수 있다는 경고성 메시지를 내보내기도 했다고 AFP 통신은 전했다.
반면 나발니 사망 이후 푸틴 대통령이 5선에 성공하면서 러시아 야권 운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시들해졌다는 분석도 있다.

묘지 주변에는 경찰들이 총을 들고 순찰을 다녀 긴장감을 조성했다. 인근 지하철역 플랫폼에도 경찰들은 서 있었다. 하지만 추모 행렬 자체를 저지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묘지 앞에는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거나 쌍둥이 자녀들의 손을 잡고 온 가족들, 지긋한 나이의 노인들, 요란한 화장과 패션으로 눈길을 끈 젊은이들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특별한 시위나 소란은 벌어지지 않았다.
긴장감과 숙연함이 감도는 상황에서도 한 할아버지는 줄을 선 사람들과 '하이 파이브'를 주고받았다. 대형 러시아 국기를 흔드는 사람, 사탕과 과자를 나눠주는 사람 등 제각각의 모습으로 시민들은 헌화를 기다렸다.
추모 행렬 옆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운전자들은 경적을 울리며 연대를 표했다. 사람들은 경적을 울리는 자동차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추모객들은 추위 속에서 약 50분을 기다리고 나서야 묘지 입구를 통과할 수 있었다. 나발니의 묘는 카메라 모양의 그림과 함께 '이 시설은 감시받는다'는 문구가 써진 입구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나발니 묘 주변은 철제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었다. 묘에는 이미 꽃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고인을 기릴 때는 짝수의 꽃을 준다는 러시아 전통에 따라 사람들은 카네이션 두 송이 또는 짝수 송이 한 다발을 나발니 묘에 뒀다.
나발니를 추모하는 편지와 성경 구절, "나는 두렵지 않다" 등 나발니가 생전 한 말들을 담은 액자 등도 놓여 있었다. 나발니가 주도한 반부패 시위의 상징이었던 오리 인형들도 눈에 띄었다.
오후 4시 30분께 묘지 관리자로 보이는 한 남성은 "오후 5시에 문을 닫습니다. 빨리 움직이세요!"라고 외쳤다. 그 바람에 50분 동안 줄을 서며 기다렸던 사람들은 1초 동안 꽃을 두고 묵념만 한 뒤 자리를 비켜서기도 했다.

자신을 배우라고 소개한 40세 여성은 나발니 묘 참배 후 "작년 나발니의 장례식장에 갔을 때는 경찰의 감시가 무서웠다. 하지만 이곳에 오는 것은 나의 의견을 밝힐 유일한 기회이기 때문에 오늘은 무섭지 않았다"고 말했다.
직업을 변호사라고 소개한 20대 후반 남성은 "나발니는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며 "오늘 모인 많은 사람은 나발니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이었는지, 그가 얼마나 큰 희망을 전했는지를 증명한다"고 말했다. 인터뷰에 응한 추모객들은 익명을 요청했다.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한 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종전을 위한 협상을 시작하기로 해 이날 러시아를 비롯한 세계 언론은 나발니 사망 1주기보다는 이 협상에 대한 기사를 더 많이 쏟아냈다.
20대 여성 다샤는 "나발니는 부패와 독재에 맞서 싸우는 상징이었고 그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결집했다"며 "하지만 나발니가 사망한 이후 야당 지도자들은 서로 논쟁하느라 분열돼 있다"며 '포스트 나발니'의 부재를 지적했다.

[email protected]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최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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