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글와플 브뤼셀] 중대기로서 '갈 곳 잃은' 나토 수장
'트럼프 달래기' 치중…미·유럽 파열음 고조 속 역할 한계 노출
'트럼프 달래기' 치중…미·유럽 파열음 고조 속 역할 한계 노출
(브뤼셀=연합뉴스) 정빛나 특파원 = "당신이 도널드 트럼프, 그리고 미국 정부와 관계를 회복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백악관 충돌' 직후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건넸다는 조언이다.
그는 미국-우크라이나 정상회담 다음 날인 1일(현지시간) 영국 BBC 방송과 인터뷰에서 젤렌스키 대통령과 통화를 하고 "이것(관계회복)은 미래를 위해 중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고 직접 소개했다.
외교사에 전례를 찾기 힘든 당시 공개 충돌을 수습할 책임이 전적으로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있다는 듯한 뉘앙스로 읽힌다.
트럼프 대통령, J.D. 밴스 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 간 설전 직후 약 30개국 지도자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우크라이나와 연대를 표명했던 것과는 결이 다른 반응이다.
뤼터 사무총장은 BBC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의 항구적 평화를 위해선 미국, 우크라이나, 유럽이 "함께 뭉쳐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트럼프 대통령과 밴스 부통령의 발언과 행동이 적절했는지 묻는 취지의 질문에는 "오벌오피스(백악관 집무실)에서 나온 모든 발언에 대해 코멘트하진 않겠다"고 답을 피했다.
이런 반응은 그가 연일 치중하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 '달래기 전략'의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뤼터 사무총장은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고 종전 협상 개시에 합의했다고 기습 발표한 직후부터 비슷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당시 전화통화를 두고 유럽 각국이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은 것과 달리 그는 "성공적 통화"였다고 치켜세웠다.
협상에서 유럽이 '패싱'될 것이란 우려에 대해서는 불평만 하지 말고 구체적 계획부터 마련하라며 "(계획을 통해) 효과를 창출하면 (종전 협상) 대화의 일부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종전 협상 시작부터 참여해야 한다던 EU 및 개별 국가 정부의 주장과는 거리가 있는 발언이었다.
미국이 협상 시작 전부터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선을 긋는 등 러시아에만 유리한 조건을 내세운다는 비판이 나오는 상황에서도 그는 오히려 "나토 가입이 협상 결과에 포함될 것이라고 약속된 적은 결코 없다"고 미국을 두둔했다.
뤼터 사무총장은 나토 안보우산이 와해할 수 있다는 유럽의 불안감도 사실상 외면하고 있다.
2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비공식 정상회의에서는 기자들의 관련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나토 집단방위조약인) 5조와 나토에 전적으로 전념하고 있다"며 "그러니 제발 쓸데없는 얘기 좀 멈춰라(stop gossiping)"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장담과 달리 트럼프 행정부는 유럽에 안보의 일차적 책임을 지라고 요구하는가 하면 장기적으로는 유럽 내 미군 감축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뤼터 사무총장 입장에서는 나토 주축인 미국의 '이탈'을 막기 위한 나름의 전략일 수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은 물론 대서양 동맹이 중대한 갈림길에 놓였다는 평가가 지배적인 상황에서 그의 이런 전략이 위기를 헤쳐 나가는 데 얼마나 효과적일 진 미지수다.
사무총장직 자체가 미국에 의해 좌우된다는 점에서 태생적인 역할의 한계라는 지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나토 회원국 정부 관계자는 "런던 정상회의장 사진을 보면 뤼터 사무총장은 가장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어쩌면 그것이 나토의 현실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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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빛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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