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뜨고 美 질 것"…'성장' 앞세워 반격 자신감 드러내는 中
시진핑, 민영기업에 유화 제스처…딥시크 성공 속 '동풍' '동승서강' 부각 AI·로봇·양자컴 등 美에 앞서…해외 인재는 귀국길 '세계 흥행 1위' 애니도 배출…"화해의 제스처는 사탕발림" 지적도
시진핑, 민영기업에 유화 제스처…딥시크 성공 속 '동풍' '동승서강' 부각
AI·로봇·양자컴 등 美에 앞서…해외 인재는 귀국길
'세계 흥행 1위' 애니도 배출…"화해의 제스처는 사탕발림" 지적도
(서울=연합뉴스) 권숙희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강력한 미 우선주의 정책을 내세우는 가운데 중국 또한 '성장 우선'을 앞세워 자신감을 드러내는 등 정책 기조에서 변화 분위기가 감지된다.
올해 1월 저비용·고효율 인공지능(AI) 모델인 딥시크가 일으킨 돌풍과 함께 첨단 과학기술 분야에서 미국에 본격적으로 도전장을 낸 중국은 '트럼프 관세 폭탄' 등 외부 여러 악재에도 불구하고 지난 5일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를 작년, 재작년과 동일한 '5% 안팎'으로 뚝심 있게 설정했다.
이와 함께 미국에 대응해 '기술 자립'을 공고히 하기 위해 이제까지와는 달리 민간 기업들에 강하게 힘을 실어주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태도도 이목을 끌고 있다.
◇ 테크 거물들에 '먼저 부유해지자' 독려…"시진핑 태도 달라졌다"
우선 시 주석이 최근 중국 내 유수의 테크(기술 중심 기업) 수장들을 불러 모아 놓고 한 발언이 화제다.
시 주석은 지난달 17일 민영기업좌담회에서 "먼저 부유해진 뒤 공동의 부유를 촉진하자"(先富促共富)면서 알리바바·화웨이·BYD·웨이얼반도체·딥시크·유니트리 등 민간 부문의 거물과 스타들을 독려했다.
급속한 경제성장의 부작용으로 중국 내 빈부 격차가 커지는 가운데 시 주석의 '사전'에서 사라졌던 덩샤오핑의 '선부'(先富, 먼저 부유해지자)라는 단어가 시 주석의 입에서 다시 나오자 중국 안팎에서는 놀랍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그간 시 주석은 나빠진 민심을 잠재우기 위해 선부론 대신 공동부유(共同富裕)를 설파했고, 이는 시 주석의 장기 집권 체제에서 누구도 반박하지 못하는 지향점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공동부유라는 기조 아래 추진되던 강경한 정책과 규제 또한 부작용을 낳기는 마찬가지였다.
인터넷 산업의 성장세를 타고 급팽창한 알리바바 같은 기업조차 공산당의 눈치를 보고 정부 정책에 대해 말 한마디 하기 어려운 환경이 된 것이다.
실제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은 2020년 10월 중국 정부의 금융 시스템에 대한 규제를 비판했다가 4년간이나 은둔 생활을 했다. 기업 상장도 물거품 됐다.
그랬던 마윈이 이번 좌담회에 등장해 그 누구보다도 주목받았는데, 드디어 그가 중국 정부로부터 복권됐다는 신호로 해석됐다.
외신들도 시 주석의 유화 제스처에 주목했다.
르몽드 영문판은 "딥시크의 부상과 좌담회에서 보여준 시 주석의 달라진 태도는 (중국의) 매우 중요한 순간에 찾아왔다"고 해석했으며,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번 좌담회는 중국에서 정치적 바람이 얼마나 빠르게 변화하는지를 보여줬다"고 짚었다.
◇ 첨단과학 연구분야서 美 제쳤다는 평가도…中인재들 美서 '유턴'
시 주석의 '달라진 태도'는 최근 몇 년간 중국이 첨단과학 분야에서 보여준 급속한 발전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가 차원에서 전기차·AI·로봇·양자컴퓨터 등 다양한 첨단 분야를 전폭적으로 지원해온 중국이 마침내 미국을 앞지르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저비용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딥시크는 말할 것도 없고, 세계 최대 전기차 업체라는 왕좌를 테슬라에게서 빼앗은 BYD, 화려한 군무로 중국 14억 인구를 놀라게 한 휴머노이드 로봇 군단을 만든 유니트리 등은 당장 눈에 띄는 민간 분야 성과다.
연구 분야에서도 중국의 성과가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가장 최근에는 반도체 연구 분야에서 중국이 미국을 월등히 앞서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미국 조지타운대 '신흥 기술 관찰 프로젝트(ETO)'가 지난 3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8∼2023년 전 세계적으로 약 47만5천 편의 반도체 설계·제조 관련 논문이 발표됐는데, 이 중 34%에 중국 기관 소속 저자가 참여했다고 신화통신은 보도했다.
미국 저자가 포함된 논문은 15%, 유럽 연구자가 포함된 논문은 18%로 집계됐다.
양자 컴퓨터 분야에서도 중국은 성과를 자랑했다.
중국 과학기술대 연구팀은 기존의 가장 강력한 슈퍼컴퓨터보다 1천조 배 빠른 105 큐비트(Qubit) 초전도 양자컴퓨터 프로토타입(시제품)인 '쭈충즈(祖沖之) 3호'를 최근 공개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중국 토종 인재들이 두각을 나타내기도 하고, 해외로 나갔던 인재들이 귀국해 자리를 잡는 경우도 늘고 있다.
딥시크 개발 주역들은 아예 유학생이 아닌 본토 출신들이란 점에서 주목받았다.
특히 창업자 량원펑은 유학파도 아니고, 베이징·칭화대 등 일류대 출신도 아님에도 만 40세의 나이에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성공 신화'를 써 많은 중국인이 고무됐다.
취업하기 위해 귀국한 중국인 유학생 수가 늘어났으며, 특히 졸업하자마자 귀국을 택한 경우가 급증했다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
중국의 구인·구직 플랫폼 즈롄자오핀에서 발표한 '2024 중국 귀국 유학생 취업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과 비교하면 지난해 귀국 유학생은 1.44배로 늘었다.
◇ '마가'에 맞서는 中의 '동쪽 바람'
양회 중 전국인민대표대회(국회 격)가 개막한 지난 5일 트럼프 대통령은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미국을 다시 부유하게(마가,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구호를 또 언급했다.
이는 시 주석이 선택한 마오쩌둥의 '동풍'과 대비된다.
시 주석은 민영기업좌담회에서 '동풍이 서풍을 압도한다'는 마오쩌둥 발언을 통해 중국의 과학기술 역량이 서구를 능가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시 주석은 동풍의 의미에 대해 부연하지는 않았으나, 창업자들에게 자신감을 강조하면서 "장기적으로 동풍이 서풍에 우세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오쩌둥은 1957년 소련 시절 모스크바에서 열린 세계공산당 대회에서 이 발언을 했다.
이후 중국에서 동풍은 중국식 사회주의, 서풍은 서구의 자본주의를 가리키는 말로 자주 쓰인다.
중국 지도부가 '동풍'을 언급한 자체가 이례적인 것은 아니지만, 미중 패권 경쟁 구도가 심화하는 상황인 만큼 시 주석은 이러한 발언을 통해 자신감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시 주석은 과거부터 미국이 쇠퇴하고 있다며 '동쪽은 뜨고 서쪽은 쇠퇴하고 있다'(동승서강·東升西降)고 말해왔다.
최근 일각에서는 '동승서강'의 의미를 좁혀 '중국이 뜨고 미국이 질 것'이라는 의미의 '중승미강'(中昇美降)으로 바꿔 부르기도 한다.
◇ 애니·게임 등 소프트파워도 성장…검열 등 우려도 여전
최근 중국은 애니메이션과 게임 분야에서도 잇단 대히트를 통해 애국주의적 자긍심에 고취된 분위기다.
올해 중국의 춘제(음력설) 기간에 개봉한 중국 토종 애니메이션 '너자(哪吒·Nezha)2'는 역대 세계 애니메이션 가운데 박스오피스 수익 1위를 달성하는 쾌거를 이뤘다.
중국 고전소설 '봉신연의'(封神演義)로 널리 알려진 고대 신화 속 영웅신 '너자'(나타)의 이야기를 각색한 판타지 애니메이션 '너자'의 후속편인 '너자2'는 전 세계 영화 박스오피스 역대 6위에도 올랐다.
글로벌타임스는 영화 전문가인 장펑 난징사범대 부교수를 인용해 "너자2는 전 세계에 중국 영화산업의 부상과 문화적 소프트파워 성장을 보여주는 창을 제공했다"고 추켜세웠다.
또 지난해 선풍적 인기를 끈 액션 역할수행게임(RPG) '검은 신화:오공'(黑神話:悟空)은 고전 '서유기'를 모티브로 했다.
이런 가운데 반간첩법과 강력한 검열 정책을 여전히 유지하는 중국 정부가 취하는 유화 제스처는 진정한 변화가 아닐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최근 중국공산당 이론지 추스(求是)가 시 주석이 항상 민간기업을 지원해왔다고 강조하는 내용의 기사를 내보냈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해외에 망명 중인 중국의 민영 기업가들로 구성된 연맹은 "여전히 감옥에 갇혀 있는 민간 기업가들이 존재하는 한, 중국 정부의 말을 믿어서는 곤란하다"면서 "실질적인 변화 없는 이런 화해의 제스처는 사탕발림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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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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