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우의 시선] 주식회사 중국과 기업가 트럼프가 만났을 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9일(현지시간) 공개된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무역분쟁에 따른 단기적인 침체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트럼프의 ‘미치광이 관세 전략’에 대한 우려로 전세계 증권·외환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트럼프 관세의 명분은 마약류 진통제인 펜타닐이다. 중국에서 생산한 원료로 멕시코 마약 카르텔이 만들고, 캐나다를 거쳐 미국에 풀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펜타닐이 관세 전쟁의 최종 목표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중국이 완전히 손을 들기까지 분쟁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미치광이 관세전쟁’ 시작 속내는
도광양회 버린 중국에 실력 행사
당장 힘들지만 우리 기회 될 수도
도광양회 버린 중국에 실력 행사
당장 힘들지만 우리 기회 될 수도
미·중 무역갈등이 가시화된 것은 2018년이다. 첫 임기 중이던 트럼프는 34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했다. 추가로 2000억 달러 제품에도 10% 관세를 매겼고, 이듬해에는 20%로 올렸다. 조 바이든 대통령도 2024년 중국산 반도체에 50%, 전기자동차에 100% 관세를 매겼다. 중국 정부가 불공정 거래를 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1990년대 이후 중국은 외국 기업을 적극 유치하고 거기서 배운 기술과 노하우로 자국 기업을 육성했다. 막대한 보조금에 저렴한 임금을 활용한 낮은 가격으로 일단 시장에 진입하고, 14억명의 내수를 배경 삼아 덩치를 키웠다. 중국 시장을 잃는 것이 두려운 글로벌 기업들은 이런 상황을 감내했다. 조선·철강에서 시작해 디스플레이·컴퓨터가 중국으로 주도권이 넘어갔다. 바야흐로 도광양회, 칼날을 숨기고 어두운 곳에서 힘을 기르던 시절이었다. 주식회사 중국의 공장에서 나오는 값싼 물건에 혹한 전 세계 소비자도, 이들의 표가 필요한 정치인도 만족했다.
반도체와 자동차가 다음 목표가 됐다. 미국 국제전략연구소(CSIS)는 2009년부터 2023년까지 중국 정부가 구매자 보조금, 판매세 면제 등을 통해 전기차 산업에 2300억 달러(290조원)를 지원한 것으로 추정했다. 그 결과 지난해 BYD 413만대(23.5% 1위), 지리 138만대(7.9% 3위), 상하이자동차 100만대(5.8% 4위) 등 중국업체가 세계 시장의 절반을 차지했다(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 전체 1700만대 가운데 3분의 2인 1100만대가 중국에서 팔렸다. 내수를 평정하고 세계로 나서는 전형적인 중국식 성장 전략이다.
사실 선진국의 기술과 자본으로 산업을 키우는 것은 개발도상국이 늘 하던 일이다. 우리도 일본의 철강·자동차·반도체 기술을 배워 선진국 문턱을 넘었다. 하지만 일단 선진국 클럽에 가입하면 ‘글로벌 스탠더드’(사실상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에 따르라는 ‘정중한 권유’를 받는다. 우리는 1997년 외환위기와 2011년부터 7년간 이어진 애플-삼성 특허소송이라는 비싼 수업료를 내면서 권유가 권유가 아니라는 사실을 배웠다. 누구도 중국에는 이런 권유를 하지 않았다. 트럼프가 칼을 빼 들기 까지는.
트럼프 1기 정부에서 징벌적 관세를 도입한 로버트 라이트하이저는 2001년 중국의 WTO 가입 허용이 가장 큰 실책이라고 비판한다. 미국 기업의 공장이 중국으로 넘어가면서 미국의 부를 빨아들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2001년부터 20년간 미국의 대중국 무역 적자는 5조3900억 달러(7800조원)에 달한다. 트럼프는 생각한다. 중국이 우리에게서 훔친 기술로 자국 기업만 차별해 지원해가며 불공정 교역을 이어가는데 관세로 응징하지 않을 이유가 있나, 같이 죽기 싫으면 시장을 열고 정당하게 겨뤄보자. 이런 미치광이 전략은 정치인에게는 최악이지만 기업인에게는 나쁘지 않은 카드다.
1999년 상하이를 방문한 적이 있다. 푸둥에는 동방명주 타워와 100층짜리 세계금융센터가 올라가고, 100㎞ 정도 떨어진 쑤저우에는 서울 면적 절반 규모인 공업원구 조성이 한창이었다. 깔끔한 신시가지와 마천루에 감탄한 것도 잠시,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불법 좌회전한 차들이 내 무릎 30㎝ 앞을 스쳐 지나가는 게 아닌가. 깜짝 놀란 내게 한국 기업 현지 주재원은 “중국 사람들이 질서를 지키기 시작하면 정말 우리는 뭘 먹고 살지 고민해야 할 것”이라 위로를 건넸다.
25년이 지난 지금, 중국은 아직도 법과 질서보다 힘과 권위에 익숙한 것 같다. 두 고래의 싸움에 죽을 지경이지만, 덕분에 우리 아이들도 당분간은 먹고살 수 있겠다는 안도감이 설풋 드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얼굴 붉히며 목소리를 키우는 중국보다 웃는 낯으로 내실을 키우는 중국이 훨씬 두렵다.
김창우([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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