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미국의 원조 축소, 한국 역할 확대 기회

그러나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직후 미국국제개발처(USAID)의 원조 계약 중 83%를 취소하고 대규모 감원을 단행했다. 이는 미국 우선주의 정책과 정부 재정 지출 축소 기조에 따른 것인데, 미국의 글로벌 관여 축소를 넘어 국제 원조 체제의 위기를 예고하는 큰 방향 전환이다. 이런 변화는 한국에도 역사적·전략적 의미를 가진다. 한국은 미국의 원조를 효과적으로 활용해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성장한 대표적 성공 사례다. 한국전쟁 이후 미국의 경제·군사 원조는 식량·인프라·교육·과학기술의 빠른 발전을 뒷받침해줬다. PL-480 프로그램의 식량 원조, 경부고속도로 건설 지원,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설립, 교육·인적자원 개발 지원 등은 한국의 고속 성장에 중요한 촉매제 역할을 했다.
트럼프 2기, USAID 대규모 감원
글로벌 관여 줄고, 중국 영향 커져
한국은 개발 협력 전략 다듬어야
글로벌 관여 줄고, 중국 영향 커져
한국은 개발 협력 전략 다듬어야

미국의 원조 삭감은 다른 주요 공여국들의 원조 정책에도 연쇄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영국은 해외 원조 예산을 국민총소득(GNI)의 0.5%에서 0.3%로 줄이며 약 60억 파운드를 삭감했고, 독일도 방위비 증액을 위해 2025년 ODA 예산 삭감을 결정했다. 이런 ‘도미노 효과’로 인해 글로벌 원조 규모가 감소할 뿐 아니라 국제개발협력의 지속 가능성도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미국의 원조 축소는 지정학적 파장도 일으키고 있다.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등의 재원을 활용해 미국이 남긴 원조 공백을 메우며 영향력을 확대하려 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월 중국은 캄보디아의 지뢰 제거 프로그램에 미국이 중단한 440만 달러를 대신 제공하기로 했다. 원조 중단은 분쟁 지역과 취약 국가에서 불안정을 키우고, 극단주의와 권위주의 세력 확산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
한국도 201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가입 이후 원조 효과성, 수원국 오너십을 강조하는 국제개발 규범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는 이런 글로벌 규범을 흔들며,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미국 의존도를 재평가하도록 만들고 있다. 이에 따라 전통적 동맹국들도 새로운 파트너십과 자립적 발전 전략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한국은 지난 10여년간 OECD DAC 국가 중 가장 빠르게 ODA 예산을 확대해왔고, 특히 윤석열 정부는 2022년 출범 이래 ODA 예산을 약 120% 증액했다. 이는 미국 원조 축소와 주요 공여국의 도미노 효과로 인해 아시아·아프리카 지역에서 한국의 지원에 대한 기대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그만큼 한국이 부담해야 할 원조 공백이 커질 수 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부응해 추진하던 한·미 공동 협력 프로그램에 대한 미국 정부의 정책적 관심도 약화할 전망이다.
이처럼 급변하는 글로벌 개발 협력 환경 변화 속에서 한국은 중견국으로서 리더십을 확장할 기회를 동시에 맞이하고 있다.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외교 전략 우선순위를 반영한 선택적이고 전략적인 원조 프로그램을 기획·추진해야 한다.
올해는 ‘제4차 국제개발협력 기본계획(2026~31년)’ 수립과 중점 협력국 재선정을 앞두고 있어서 대응 전략 마련을 위한 정책적 기회 공간도 주어진다. 이제 한국은 인도주의적 가치에 기반을 둔 보편적 국익을 추구하는 ‘책임 있는 매력국가’로 자리매김해 가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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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혁상 경희대 공공대학원 교수·전 KOICA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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