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영정사진만 들고 나왔다"…집 타버린 소방관의 탄식

경북 영주소방서 가흥119안전센터에서 근무하는 조영환(31) 소방교는 지난 25일 오후 산불이 안동시 일직면 국곡리 쪽으로 향하자 고향 집을 찾았다. 혼자사는 85세 할머니가 걱정됐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2층짜리 목조주택엔 오후 5시30분쯤 산에서 날아든 불씨가 옮겨붙었다. 조 소방교와 현직 소방관인 작은아버지 조상호 안동소방서 소방위가 가정용 소화기로 불길을 잡았지만, 이미 현관과 처마·화장실·실내 곳곳이 숯처럼 검게 변한 뒤였다.
조 소방교는 “소방관이 되기 1년 전인 2021년 2월에도 산불이 번져 할머니 댁 근처까지 왔다”며 “불이 붙었다 꺼졌다 반복하다 삽시간에 활활 타 할머니를 먼저 안전한 곳으로 모신 뒤 중학교 시절 돌아가신 할아버지 영정 사진을 들고 나왔다”고 말했다. 할머니 집에서 100여m 떨어진 조 소방교 부모의 황소 축사에도 불씨가 날아들어 일부를 태운 뒤 이튿날인 26일 오전 6시쯤 꺼졌다. 조 소방교 할머니가 거주하는 주택 말고도 국곡리 민가가 산불에 탔다.


조 소방교는 “산불이 급속도로 번진 경북 의성과 안동 지역에서 충청·강원·전라·경기 등 전국 각지에서 온 소방관과 함께 불을 끄고 있다”고 했다. 산불 진화에 동원된 소방관은 보통 2~3인 1조로 펌프차에 탑승하는데, 1만L를 펌프차에 실어 이동한 뒤 5분이면 모두 방수해 수원을 확보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조 소방교와 함께 산불 진화 현장을 누빈 안득현(42) 소방위는 “산간 지역이다 보니 가까운 곳에 저수지가 없으면 물을 확보하느라 수㎞를 이동해야 한다”며 “산불이 심한 곳을 오가면서 화재 피해를 본 소방관들이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고 내 집에 불이 나도 다른 이를 돕는 일이 ‘소방관의 사명이구나’ 싶다”고 말했다.

손성배([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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