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성인의 읽는 클래식 듣는 문학] 마음에 솟는 빈 달무리

박목월 시인의 ‘달무리’는 별 특별할 것도 없는 정경이다. 한 사내가 달무리 뜨는 밤을 홀로 거닌다. 그는 옛날에도 이런 밤에 거닐었다고 한다. 밤에 취한 넋두리. 그런데 그의 마음속에도 둥둥 달무리가 뜬다. 여전히 홀로 거닐지만 마음속 달은 그를 울게 한다. 옛날에도 이런 밤에 울며 걸었다 한다. 아, 그의 걸음에는 어떤 사연이 담겼을까. 어떤 달빛이 그의 마음을 여태까지 비추는 것일까.

시가 감추어 놓은 것을 음악이라고 캐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음악은 시 속에서 걷는 사내의 마음속 걸음걸이를, 따라 걸어볼 수 있게 한다. 마법적인 신비감의 피아노도 그 마음속의 달을 은은하게 옮겨준다. 비밀은 여전히 비밀인데 듣는 이는 왠지 알 것만 같다.
시를 노래하는 일이 드물어지는 것은 왜일까. 자꾸 자신을 드러내야 살아남는 시대여서일까. 시가 말을 아껴두는 것은 그만큼 소중해서다. 그런 소중함을 아는 이만이 밤도, 달도, 울음도 모두 품을 수 있는 게 아닐까.
나성인 음악평론가·풍월당 이사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