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만 30명, 과학자도 뭉쳤다…소아암 찾아낸 집단지성의 힘

그래서 전국 전문가가 뭉쳐 집단 지성 카드를 꺼내 들었다. 바로 '소아 고형암 정밀의료 프로그램'이다. 중심에는 서울대병원 소아신경외과 피지훈 교수가 있다. 2021년 5월 이건희 전 삼성 회장 유족의 기부금 3000억원으로 출범한 '소아암·희귀질환지원사업단'의 고형암 세부사업 책임자다. 고형암은 뇌종양·간암 등 신체 장기의 암을 말한다. 피 교수에게 성과와 전망을 물었다.
Q : -사업단을 소개해 달라.
A : "서울대·서울아산·삼성서울·세브란스 등의'빅4 병원'과 인하대·분당서울대·전남대병원 의사 30여명, 바이오 정보 과학자, 데이터 과학자, 유전체 분석 전문기업 등이 참여한다. 가동한 지 2년 됐다."
Q : -어떤 일을 하는가.
A : "환자의 사례(익명화)를 두고 진단과 치료법을 찾는다. 프로그램에 430명의 환자가 등록했다. 사업이 활성화하면서 최근 1년 새 250명이 들어왔다. 국내 소아암 환자의 50~60%로 볼 수 있다."
Q : -어떻게 사례를 분석하나.
A : "암 조직의 현미경 분석 결과를 두고 병리 전문가 5~6명이 토론한다. 요새는 유전자 분석이 중요해졌다. 12~20명이 온라인으로 참석해 치열하게 논의한다(분자종양보드)."
Q : -주치의 첫 진단이 달라지기도 하나.
A : "분자종양보드에서 병리·유전체 분석 결과와 주치의 의견을 종합해 진단한다. 뭔가 의심스러우면 자료를 처음부터 다시 검토한다. 다른 의사의 의견에 자연스럽게 의문을 제기한다. 첫 진단이 달라지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Q : -예를 들자면.
A : "뇌종양만 해도 대분류 20개, 소분류(아형) 100여개로 갈라진다. 아형이 바뀌는 경우가 많고, 드물게 대분류가 바뀌기도 한다. 그러면 치료법이 달라진다."
Q : -어떤 환자에게 특히 유익하나.
A : "뇌종양·뼈종양이 재발하면 사실 손쓸 게 거의 없었다. 이제는 달라졌다. 수술하고, 조직을 떼서 유전자를 검사한다(전장유전체분석). 그러면 재발 전보다 유전자 변이가 크게 증가한 걸 확인한다. 한 두 개 변이에 적합한 표적항암제가 있을 때가 많다. 치료의 새로운 선택지가 생긴다."
Q : -효과를 본 환자가 있나.
A : "생후 15개월 영아의 골반에서 종양이 발견됐다. 병리 분석에서 진단 불가였다. 진단명은 '정체 모를 원시 악성 고형암'. 유전체 분석에서 백혈병으로 진단이 달라졌다. 국내에서 처음 발견된, 세계에서 몇 명 안 되는 백혈병 아형이었다. 치료법이 완전히 달라졌고, 치료가 잘 진행되고 있다."
더 중요한 발견도 있다. TP53이라는 유전자 변이를 가지고 태어나면 '리 프라우메니 증후군'이 생긴다. 교과서에만 본, 국내에 거의 없는 병인 줄 알았는데, 이번 프로그램 덕분에 숨어있던 많은 환자를 찾아냈다. 이 변이가 모든 세포에 있기 때문에 어디서 암이 생길지 모른다. 10대 소년이 고환에 종양이 생겨 수술로 제거했다. 그걸로 끝일 줄 알았는데, 혈액 유전체 분석에서 TP53 변이가 나왔다. 고환 종양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매년 전신 검사해서 암을 찾고 예방해야 한다. 430명 등록환자의 10%가 선천적 유전자 변이를 가지고 있다.
Q : -이건희 전 회장의 기부금이 어떤 역할을 하나.
A : "소아암 정밀의료 프로그램에 연 30억원 지원 받는다. 기부금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환자 보호자에게 '이 전 회장의 기부금으로 검사하고 치료한다'고 먼저 설명한다. 보호자들이 그 뜻에 공감하고 고마워한다. 이 프로그램이 10년 진행되면 3000명의 희귀한 소아암 환자의 데이터가 쌓여 엄청난 힘을 발휘할 것이다. 전국 어딜 가더라도 표준적 진단과 치료를 받게 되는 게 목표이다."
신성식([email protected])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