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렬의 시시각각] 무엇이 진짜 보수인가

보수층은 진보 진영의 집요한 탄핵 시도를 지적한다. 근거가 없지 않다. 그러나 남 탓만 할 게 아니다. 상당 부분은 보수 정권 스스로 자초한 거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도화선이 된 국정농단 사태도 정권 내부에서 자라났다. 윤 대통령의 탄핵 위기도 12·3 비상계엄에서 비롯됐다. 윤 대통령 측은 거대 야당의 ‘줄탄핵’과 입법 폭주를 문제 삼는다. 설령 그렇다 해도 비상계엄은 국민 다수가 용납하지 않는 극한의 수단이다. 근 석 달째 약 60%를 유지하는 탄핵 찬성 여론이 그걸 말해준다(한국갤럽).
반복되는 보수 대통령 탄핵심판
민주주의·주권재민 체화 부족
책임져야 할 때 책임져야 보수
민주주의·주권재민 체화 부족
책임져야 할 때 책임져야 보수
보수 진영의 진짜 위기는 어쩌면 아직 오지 않았다. 여론조사에서 정권 교체 여론이 정권 유지보다 20%포인트 정도 높기도 하지만(3월 넷째 주, 53% 대 34%), 선거의 승패를 가를 중도층에선 2.6배나 된다(62% 대 24%).
뼛속까지 ‘자유 우파’를 자처하는 퇴직 관료 한 분을 최근 만났다. 광화문과 여의도 집회에 청년들이 늘고 있는 것에 잔뜩 고무돼 있었다. 그는 2030세대에서도 정권 교체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은 조사(20대 47% 대 28%, 30대 55% 대 23%)는 믿을 수 없어 했다.
중도와 젊은 층이 떠난 보수 진영의 미래가 어떨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보수 진영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무엇보다 박 전 대통령 탄핵을 겪고도 민주주의와 주권재민(主權在民)에 대한 이해와 체화(體化)가 부족했다. 윤 대통령은 자신의 반대 세력과 대화와 타협의 노력을 가장 기울이지 않은 대통령으로 꼽힐 것이다. 정치적 교착 상태를 ‘한 방’에 해결하려는 게 계엄이다. ‘경고성 계엄’이라는 주장은 민주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궤변이다.
보수에 중요한 덕목이 ‘책임감’이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책임져야 할 때 책임지는 것, 자기희생을 마다치 않는 것, 비겁하지 않은 것 그게 보수의 미학이다.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싫어하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추구하는 것이 보수다.
하지만 윤 정권은 책임지는 것에 인색했다. 159명 젊은이의 목숨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에 정부 고위직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젊은 해병의 안타까운 죽음도 진상을 가리기에 급급했다. 이태원 참사 일주일여 뒤 윤 대통령은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있는 사람한테 딱딱 물어야 되는 것이지, 그냥 막연하게 다 책임지라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등 자신의 측근과 부하들을 감쌌다. 느닷없는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강행 이후 의료체계가 붕괴 위기로 치달았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환자들만 애꿎은 고통을 겪었다.
그러니 윤 정권 중간평가 성격을 띤 4·10 총선에서 여당의 참패는 당연했다. 그럼에도 대통령실 핵심 참모 대부분은 자리를 지켰다. 국무총리도, 장관들도 그대로였다. 지난해 연말엔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179명이 목숨을 잃었다. 국토교통부 장관이 사의를 표명했지만 실제로 물러나진 않았다.
윤 정권에서 고위직은 과오가 있어도 문책당하지 않았다. 대통령의 심기만 거스르지 않으면 잘리지 않는다는 냉소가 파다했다. 국민에게 봉사하고 책임지는 공직의 신성함과 명예는 추락했다. 지금 공직사회의 사기가 바닥인 것은 이것과 무관치 않다. 역시 압권은 12·3 계엄이다. 지난 넉 달간 온 나라가 극심한 혼란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계엄 버튼을 누른 대통령도, 그것을 막지 못한 여당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윤 정권은 자칭 보수 정권인데, 정작 ‘보수다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결과가 민심의 이반이다. 역사는 지금 보수 진영에 묻고 있다. 무엇이 진짜 보수냐고.
이상렬([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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