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회, 승자독식 폐해 막을 ‘분권형 개헌’ 논의 즉각 나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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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적 소임 끝난 헌법이 국가 발전 질곡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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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론 차기 대통령도 비극 반복할 수밖에
대통령 5년 단임제의 현행 헌법은 1980년대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산물이다. 당시로선 가장 절실했던 ‘대통령 직선제’란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현행 헌법은 이 땅에 절차적 민주주의를 확립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하지만 그 이후 한국은 모든 분야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뤘다. 사회는 엄청나게 복잡해졌고 국민 의식도 크게 달라졌다. 과거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새로운 시대적 과제가 속속 등장했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38년 전에 만든 틀에 갇혀 있다. 시대적 소임이 끝난 헌법이 국가 발전의 질곡이 되고 만 형국이다.
현행 헌법에서 가장 큰 문제는 승자독식의 권력 구조다. 지난 대선 때 윤석열 후보는 48.6%의 득표율로 당선됐지만, 정부 권력은 100% 그의 몫이었다. 이재명 후보에게 투표한 47.8%의 민심은 국정에서 철저히 배제됐다. 이처럼 유권자의 절반을 구조적으로 소외시키는 시스템에선 정치·사회적 갈등이 험악해지고 대화와 타협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
대통령은 늘 집권 초엔 절대권력을 움켜쥐고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지지율은 떨어지고 반대자들이 늘면서 대통령은 고립되기 시작한다. 종내에는 여당조차 반기를 들면서 대통령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레임덕 신세가 된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패턴이다.
여소야대가 되면 해결책이 없는 것도 헌법의 중대 결함이다. 38년 전엔 당시로선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여소야대 상황을 예상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국회를 장악한 야당은 수시로 공직자를 탄핵하고, 대통령은 야당이 통과시킨 법안들을 거부권으로 봉쇄하면서 국정이 마비된 게 윤석열 정권의 현실이었다.
87년 개헌 이후 8명의 대통령이 나왔는데 이 중 4명이 구속당했고, 1명은 수사를 받다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국회에서 탄핵당한 사람도 3명이나 된다. 성공한 대통령이란 평가를 받은 이는 한 명도 없다. 이대로면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되든 전임자들의 비극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정치권이 개헌의 필요성은 공감해도 실행에 옮기지 못한 건 개헌을 둘러싼 현직 대통령과 차기 주자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이야말로 두 번 다시 오기 힘든 개헌 추진의 적기다. 헌재에서 윤 대통령 탄핵이 인용되는 경우는 물론이고, 기각·각하되더라도 윤 대통령이 대통령직 복귀 시 임기 단축 개헌을 추진할 뜻을 밝혔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중앙일보 헌정개혁포럼은 새 헌법에 담을 시대정신으로 ‘권력 분산’을 제시했다. ▶국민이 직접 뽑는 대통령은 4년 중임제 ▶행정을 총괄할 총리는 국회에서 선출 ▶중대선거구제 도입 등이 포럼이 마련한 개헌안의 골자다. 과도기적으로 분권형 대통령제를 도입한 뒤 장기적으로 선진국형 내각제로 이행하는 시나리오다. 아무쪼록 여야가 나라의 새 틀을 짜는 데 포럼의 제안이 많은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만약 조기 대선이 치러질 경우 차기 대통령 임기를 단축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임기 5년을 보장하고 2030년부터 새 헌법을 적용하는 방법도 가능하다.
한국 민주주의를 무너뜨릴 뻔한 비상계엄이었지만 이게 개헌의 씨앗이 된다면 역사적인 전화위복이다. 헌재 탄핵 판결 이후에 여야는 즉각 국회 개헌특위를 구성해 개헌 논의에 착수하길 바란다. 특히 주요 정치인 가운데 유일하게 개헌에 미온적인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대승적 결단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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