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결 따라 그리움 실었소…간송미술관 채운 55개 귀한 부채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이 부채그림만 한데 모은 ‘선우풍월(扇友風月): 부채, 바람과 달을 함께 나누는 벗’ 전시를 오는 9일부터 5월25일까지 연다. 선면서화만 따로 모은 전시는 1977년 5월 미술관 개관 6주년 기념전 이후 48년 만이다. 전시작품 54건55점 가운데 23건23점은 처음 공개된다. 7일 언론공개회에서 전인건 관장은 “(전시공간인) 보화각 수리·복원을 위해 수장품을 이동·정리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조명된 작품들이 많은데, 이 중에 부채그림이라는 형식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가령 청나라 학자 섭지선(1779~1863)의 ‘청죽’은 절제된 붓질로 바람에 한들거리는 푸른 댓잎을 그려 문인화가 홍현주(1793~1865)에게 선물한 작품이다. 조선 22대 임금 정조의 부마(공주의 남편)로서 홍현주는 추사를 비롯해 연행(燕行, 중국 연경에 사신이나 수행원으로 다녀옴)했던 이들과 교류가 깊었는데 이 경로로 섭지선과 돈독한 친교를 맺었다. 한여름 더위를 식히라고 이국에서 그려 보낸 대나무 그림에 국경을 뛰어넘는 우정이 배어난다.
조선 말기 여항문인으로 이름난 조희룡(1789~1866)의 사뭇 다른 두 작품 ‘난생유분’과 ‘분분청란’도 눈길을 끈다. 전자는 추사의 영향을 받아 단정하게 난잎을 표현했지만 후자는 사방으로 흩날리는 난꽃까지 더해져 마치 들풀처럼 생명력이 느껴진다. 김영욱 전시교육팀장은 “조희룡은 추사가 예송논쟁으로 유배당할 때 함께 휘말리는데, 이 유배 시점 전후로 자신만의 화풍이 뚜렷해진다”고 설명했다.


산수를 담은 선면화 중엔 중국의 명승이나 관념 속 이상향을 담은 그림이 두드러진다. 진재 한용간(1783~1829)이 중국 항주의 서호 풍경을 그린 ‘서호육교’와 혜천 윤정(1809~?)이 중국 강남 지방의 절경을 그린 ‘삼오팔경’은 이번에 처음 공개됐다.
1층은 안중식·조석진·이상범·변관식·이도영 등 20세기 초 근대 서화가들의 부채그림 25건25점이 모였다. 이들 다수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미술교육기관인 서화미술회 혹은 최초의 미술인 단체인 서화협회에서 활동했다. 조선 선면화의 전통을 이으면서도 개성 있는 구도와 소재가 눈길을 끈다. 김영욱 팀장은 “지난해 발견된 간송의 구입일지 『일기대장』 등을 통해 간송이 서화협회 전시를 매년 후원하고 회원들 작품을 꾸준히 구입했음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강혜란([email protected])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