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준경의 퍼스펙티브] 외환 등 대외안전망 갖추고 생산적 부문에서 내수 늘려야
트럼프 쇼크 넘어 한국 경제가 미국과 윈-윈하려면

한국은 미국에 상품 수출 대가로
달러 등 글로벌 공공재 얻는 관계
내수 부진·일자리 부족 초래하는
최근의 대미 투자는 지속 불가능
환란 이후 심해진 글로벌 불균형
상호신뢰와 협조로 함께 극복을
달러 등 글로벌 공공재 얻는 관계
내수 부진·일자리 부족 초래하는
최근의 대미 투자는 지속 불가능
환란 이후 심해진 글로벌 불균형
상호신뢰와 협조로 함께 극복을

미국, 무역적자로 세계에 달러 공급
지난 4월 2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상호관세 정책 발표 이후 전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는 현상도 예사롭지 않다. 현재 세계 경제를 뒷받침하는 글로벌 유동성은 금이 아니라 미국의 무역적자를 통해 공급된다. 기축통화국인 미국이 다른 나라 물건을 사들이면서 달러를 전 세계에 공급해야 세계 경제가 굴러간다. 그리고 다른 나라들은 벌어들인 달러로 미국 국채를 사들임으로써 준비자산, 즉 외환보유액을 쌓고, 또 미국은 이렇게 국채를 팔아 조달한 돈으로 재정적자를 메우고 군사비 지출을 충당해 세계의 경찰 역할을 하는 시스템이다.
이 체제와 관련해 스티븐 미란 미국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은 7일 허드슨연구소 연설에서 미국이 달러와 미국 국채라는 준비자산, 그리고 안보 우산이라는 글로벌 공공재를 제공하고 있으니 다른 나라들이 여기에 무임승차하지 말고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지금 외환시장과 금융시장이 요동치는 것은, 이 비용에 대한 요구가 국가 간 신뢰라는 ‘글로벌 공공재’와 기존의 경제 질서를 깰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여유 있게 골프를 쳤는데, 이는 글로벌 공공재의 부재는 미국엔 큰 문제가 아니지만 그래도 협상을 원하면 연락하라는 메시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국은 무임승차가 아닌 이유

미란 의장은 7일 연설에서 미국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방법도 알려준다. 어차피 수출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는 무역 상대국들은 미국 시장 외에 다른 옵션이 별로 없으니 관세를 더 맞든, 미국 물건을 더 사든, 군비지출을 늘려서 미국의 부담을 덜어주든, 미국에 더 투자하든, 아니면 미국의 부채를 사실상 탕감해 주든지 해서 미국이 제공하는 글로벌 공공재에 대해 더 많은 대가를 지불하면 된다고 한다.
그러면 이 옵션들 중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우리도 그냥 보복관세를 매기겠다는 식의 선택을 고려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실효성이 약해 보인다. 그보다는 한국과 미국이 서로 윈-윈하면서 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미국이 기존 체제에서 부채가 늘고 제조업이 약해져 지속가능성에 문제가 생겼다고 한다면, 우리도 기존 체제가 좋아서 즐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가피하게 많은 희생을 감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허리띠 졸라맨 무역흑자국 한국
사실 한국은 원래 무역 흑자국이 아니었다. 1997년 외환위기 이전까지 한국은 1980년대의 몇 년을 빼고는 거의 적자국이었다. 수출주도형 성장전략이 반드시 흑자주도형 성장전략과 같은 것은 아니다. 수출로 벌어들인 외화에다가 외국에서 빌린 돈까지 더해서 기계장비와 원자재 등을 수입하면서 장기간 적자를 겪었던 것이 실상이다. 1990년대 초중반의 투자 붐과 호황은 많은 부분 외국자본을 싸게 빌려올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기업들이 석달짜리 싼 달러를 빌려서 장기로 투자를 하다가 외국자본이 일거에 빠져나가면서 외환위기를 맞이했지만 말이다.
한국은 생각지도 못했던 외환위기를 맞아 경제가 붕괴하자 그 트라우마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흑자국이 된 것이다. 달러가 부족해 생존 위기를 맞았던 나라가 달러와 미국 국채를 원하는 것을 탓할 수 있나. 미국의 적자도 아시아 국가들이 달러화와 안전자산에 집착하기 시작한 1998년 이후에 본격적으로 심화하였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실 거시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무역적자를 본다는 것은 생산에 비해 소비를 많이 한다는 이야기와 같다. 국내 생산으로 민간소비와 투자, 정부지출을 충당하지 못하니 외국에서 생산된 것을 들여오는 것이다. 거꾸로 무역흑자를 본다는 것은 생산은 많이 하면서도 소비를 못 하고 저축에 몰두하는 것과 같다. 미국은 국내총생산에서 민간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68%에 이른다. 하지만 한국은 이 비율이 49%에 불과하다.
소비 많은 무역적자국이 더 행복?
경제학 교과서를 보면 국민의 효용 또는 행복감을 결정하는 것은 소비다. 따라서 무역 적자국의 국민이 무역 흑자국의 국민보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더 행복할 수 있다. 한국은 내수와 국민 행복을 일정 정도 포기하면서 미국 국채라는 안전자산을 쌓았고, 그 돈이 미국 국민의 활발한 소비와 국방비 지출에 일조했던 것이다. 최근에는 국내에 투자될 수 있었던 거액의 돈이 미국에 투자돼 미국 일자리를 만드는 데 쓰이고 있다. 한국 입장에서도 이 시스템은 만성적 내수 부진, 내수 일자리의 질적 저하, 청년 일자리의 부족과 저출산의 심화로까지 연결되는 것이어서 지속 가능하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우리 입장에서도 미국이 정말 원하는 것이 글로벌 불균형을 완화하는 시스템이라면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면이 있다. 단, 외환위기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외환 안전망이 적절히 존재한다는 것이 윈-윈의 필요조건이다. 외환시장의 안전망을 구축하는 데 미국이 관심을 갖는다면 한국도 무역 불균형을 줄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외환 안전망이 없다면 한국은 관세전쟁을 회피하기 위해 환율을 절하하는 환율전쟁 모드로 가야 할 수도 있다. 이는 미국에 파는 상품의 가격 인상 요인을 원화가치 하락을 통해 한국 국민이 실질소득 하락을 감수하며 흡수하는 격이 된다. 한국의 내수가 위축되면 미국 입장에서도 한국에 물건을 많이 팔 수 없으니 윈-윈이라고 할 수 없다.
상호관세율이 대미 무역흑자 비율을 근거로 계산되었으므로 앞으로 흑자 추이에 따라 상호관세율이 업데이트된다는 점이 확실하다면, 대미 무역흑자를 줄이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대미 수출을 줄이는 것보다는 대미 수입을 늘리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윈-윈에 더 부합할 것인데, 그것은 한국의 내수가 충분히 뒷받침돼야 가능하다. 한국의 내수가 늘어나려면 외환 안전망 때문에 허리띠를 졸라맬 필요성이 줄어들어야 한다.
100년물 미 국채가 안전자산 될까
미란 의장이 썼던 보고서에는 100년 만기 미국 국채를 발행해 다른 나라들이 보유한 기존 미국 국채를 이것으로 차환해주는 식의 방안을 도입하면 미국 국채라는 안전자산을 계속 보유하게 할 수 있다는 해결책이 나온다. 미국이 당근과 채찍으로 무역 흑자국들로 하여금 100년 만기 미국 국채를 보유하게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시장이 그것을 진정한 안전자산이라고 믿게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1997년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과 다른 나라들 사이의 불균형은 지금처럼 심하지는 않았다. 글로벌 불균형은 아시아 외환위기로 ‘글로벌 공공재’가 크게 훼손된 후 확대됐다. 이 상황은 상호 신뢰와 협조 속에서 지속가능한 글로벌 공공재를 함께 모색함으로써 극복해야 한다. 만약 현재의 불확실성이 이런 노력의 계기가 된다면, 조정 과정에서의 부작용은 극소화해야 한다. 1985년에 글로벌 불균형을 완화하기 위해 미국 주도로 플라자 합의가 이루어졌지만, 이후 일본은 부동산·금융 중심의 내수 부양과 거품 때문에 잃어버린 30년을 맞게 됐다. 한국도 불균형을 완화하려면 내수 확충이 필요한 상황이다. 대외 안전망을 갖추면서 내수 확충은 생산적 부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게 해야 한다. 그래야 윈-윈도 가능하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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