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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빈의 수장고 안팎 훑기] 고정된 시점 벗어난 사진들로 재현한 그랜드캐니언

88개 사진 이어 붙인 호크니의 콜라주
이사빈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
“봄은 취소될 수 없다.”

5년 전 4월, 팬데믹으로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 자가격리의 통제 하에 있던 시기였다. 매일 쏟아지는 우울한 뉴스 사이로 화사한 그림 10점이 영국 공영방송을 통해 독점 공개되었다. 불안의 시대에 희망의 메시지를 담아 신작을 공개한 화가는 데이비드 호크니. 자신도 조수 두 명, 반려견 한 마리와 함께 프랑스 노르망디의 시골집에 격리된 상태였다. 당시 83세의 화가가 아이패드로 그린 그림들은 따뜻하고 화사한 봄날의 풍경을 담고 있었다. 제목은 ‘봄은 취소될 수 없음을 기억하라’. 사상 초유의 전염병 때문에 개인적 약속에서 공식 행사까지 모든 것이 취소되던 때였다. 노화가의 위트 있는 메시지는 사람들을 잠시나마 미소 짓게 해주었다.

시점 고정된 원근법에 의문
10시간 운전 사진 찍은 후 흥분

‘어떻게 볼 것인가’ 평생의 화두
회화로 전환 현장의 느낌 중시

가장 큰 풍경화 ‘와터 근처의…’
풍경 안에 초대된 느낌 자아내

2018년 1019억원 경매가
‘레일이 있는 그랜드캐니언 남쪽 끝’, 1982,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 BBC, 데이비드호크니재단]
데이비드 호크니는 생존하는 영국 화가 중 가장 사랑받는 인물이다. 평단의 지지, 상업적 성공을 모두 거머쥔 데다 연예인급의 대중적 인기까지 누리는 독보적 캐릭터이기도 하다. 삶을 찬미하는 듯한 밝고 다채로운 회화가 특히 인기 있다. 2018년에는 작품이 약 1019억원에 낙찰, 생존작가 중 두 번째로 높은 경매가를 기록했다.

호크니는 1937년에 영국 요크셔 지방에서 태어났다. 그는 고향에서 미술학교를 졸업한 후 스물두 살에 런던 왕립예술대학에 입학했다. 입학 당시의 호크니는 요크셔 사투리를 심하게 쓰는 내성적이고 소심한 청년이었다. 작품은 다소 어둡고 우울했다. 그런데 졸업 무렵의 호크니는 학교의 유명인사이자 미술계의 떠오르는 스타였다. 졸업 논문이 불합격 점수를 받았는데도 학장이 재평가해 통과시켜주었다. 호크니는 이미 졸업장이 필요 없을 정도로 유명했고 그의 이름이 아쉬운 것은 오히려 학교 측이었다. 화풍은 대담하고 독특했다. 작가는 재치 있고 사교적인 성격으로 어디서나 인기가 있었다. 학교를 다닌 4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019억원에 낙찰된 1972년작 ‘예술가의 초상’. 수영장 밖 오른쪽 인물은 이별한 연인이 모델이다. [사진 BBC, 데이비드호크니재단]
무엇보다 그에게는 좋은 동료들이 있었다. 호크니의 동기들은 60년대 영국 화단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세대로 평가된다. 이들은 새로운 예술에 대한 탐색을 하며 지적인 자극을 주고받았다. 호크니도 구상과 추상 사이에서 고민하며 이런저런 화법을 시도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그린 해골 드로잉을 보고 누군가가 다가왔다. 나이가 다섯 살이나 많아 선배 대우를 받던 입학 동기였다. 그가 “내가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아름답고 흥미로운 드로잉”이라며 호크니의 드로잉을 5파운드에 구입했다. 후에 평생의 친구가 된 화가 R B 키타이였다. 그는 무엇을 그릴지 고심하던 호크니에게 “너 자신에 대해 그려보라”고 조언했다.

호크니는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일찍부터 의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영국에서 동성애는 불법이었다. 앨런 튜링이 화학적 거세를 당하고 자살한 지 10년도 안 된 시점이었다. 의도치 않게 자신을 숨기게 되는 상황은 호크니의 솔직하고 대담한 본성을 억눌렀던 것 같다. 그는 예술을 통해 커밍아웃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작품의 주제와 메시지를 통해 자신의 성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독창적 스타일 일찌감치 완판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 2007.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 설치 장면이다. [사진 BBC, 데이비드호크니재단]
자신에게 가장 절실하게 다가오는 현실의 문제를 다루면서 작품은 강한 활기를 띠었다. 주제는 노골적이었지만 표현은 은유적이었다. 호크니는 기본적으로 드로잉 실력이 뛰어났고 지적인 데다 대담했다. 전에 없던 독창적인 스타일로 그는 빠르게 유명해지고 성격도 달라졌다. 작품과 함께 작가도 새로 태어났다.

호크니는 2학년 때부터 돈을 벌기 시작했다. 상도 받고 작품도 팔았다. 졸업 전에 이미 전속 화랑이 있었고 첫 개인전에서 작품이 완판되었다. 그는 곧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세계적으로 성공한 작가가 되었다.

국립현대미술관에도 호크니의 작품이 한 점 있다. 제목은 ‘레일이 있는 그랜드 캐니언 남쪽 끝’. 88개의 사진을 이어 붙인 콜라주이다.

‘봄은 취소될 수 없음을 기억하라’, 2020. 격리의 우울을 달래는 제목의 아이패드로 그린 작품. [사진 BBC, 데이비드호크니재단]
호크니는 새로운 기술에 관심이 많아 복사기·팩스기·아이폰 등 온갖 매체로 작품을 만들었다. 이는 그가 평생 몰두한 하나의 질문, 즉 ‘어떻게 볼 것인가’를 탐구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는 특히 공간과 시점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스스로도 ‘공간 집착증’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 계기 중 하나는 중증의 청력 장애였다. 마흔 무렵의 어느 날, 그는 갑자기 소리가 어느 방향에서 오는지 파악할 수 없는 혼돈 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급격한 청력 손실을 겪은 후 줄곧 보청기를 사용해 왔다. 신기하게도 공간에 대한 감각은 더 예민해졌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귀가 어두워질수록 공간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레일이 있는 그랜드 캐니언 남쪽 끝’은 공간과 시점에 대한 실험의 정점에 있는 작품이다. 호크니는 서양 풍경화의 투시 원근법에 대해 근원적인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어떤 풍경을 볼 때 몸과 시선을 움직이며 그 공간을 서서히 받아들인다. 그리고 여기에는 시간과 움직임, 기억 등 다양한 요소가 개입된다. 그런데 투시원근법은 보는 주체를 움직이지 않는 한 지점, 그리고 한순간에 고정시킨다. 우리의 실제 시각 경험은 이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 호크니의 생각이었다.

‘함께 매달려 있는 우리 두 소년’, 1961. 호크니는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일찍부터 의식했다. [사진 BBC, 데이비드호크니재단]
문득 카메라로 여러 시점을 담아 보자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곧바로 10시간을 운전하여 그랜드 캐니언으로 달려갔다. 그랜드 캐니언을 택한 것은 세계에서 가장 큰 구멍이기 때문이었다. 이 광활하고 압도적인 공간 앞에서 원근법 따위는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호크니는 카메라를 손에 들고 각도를 달리하며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다시점으로 촬영한 여러 개의 사진들을 하나의 이미지로 조합했다. 그는 우리의 시각 경험에 좀 더 가까운 표현법을 찾아냈다며 흥분했다.

물론 이 방법은 정답도, 결론도 아니었다. 몇 년 뒤 호크니는 사진이라는 매체에 한계를 느껴 다시 회화로 돌아갔다.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계속되었다. 옛 화가들의 그림 속 시점을 연구하여 이론서를 출판하기도 했다. 동양의 두루마리 그림에서도 영감을 받았다. 하나의 고정된 지점에서 경치를 조망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풍경 속을 거닐듯 눈을 움직이며 감상한다는 점이 그를 매혹시켰다.

본다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
그는 결국 무언가를 본다는 행위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경험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점차 야외에서 직접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자연 속에서 받은 생생한 느낌을 온전히 담기 위해서였다.

이 무렵 그는 30여년간의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인 영국으로 돌아왔다. 젊은 시절의 호크니는 자유로운 분위기와 끝없이 쏟아지는 햇살에 이끌려 캘리포니아에 정착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자 계절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고향의 친숙한 자연이 더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자연의 속도에 모든 것을 맞춰야 하는 야외에서의 작업은 쉽지 않았다. 그런데 호크니는 여기에 하나의 도전을 더했다. 그림의 크기를 점차 키운 것이다. 그는 관람객이 그림을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풍경 안으로 초대되기를 바랬다. 이런 마음을 담아 그린 대표작이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이다. 전적으로 야외에서 그린, 역사상 가장 큰 풍경화로도 평가된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50개의 작은 캔버스들을 합쳐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 콜라주의 실험이 녹아 있는 셈이다.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관객은 자연스럽게 커다란 그림 앞을 이리저리 걷게 된다. 멀리서 볼 때와 가까이 다가갈 때 보는 방법이 달라진다. 각각의 캔버스가 동일한 밀도로 선명하게 그려져 있어 하나하나를 찬찬히 뜯어보는 재미도 있다.

호크니는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을 테이트 미술관에 기증했다. 국내에서도 이 작품을 대여하여 전시한 적이 있다. 10여 년 전의 일이지만 그림 앞에서 따뜻함과 경외감을 동시에 느낀 기억이 남아 있다. 그런 면에서 실제 자연을 바라보는 것에 견줄 만한 감상 경험이었다. 그런데 사실 지금은 자연이 그림보다 아름다운 계절이 아닌가?

언제 왔는지도 모르게 봄이 왔다. 그리고 올해 봄도 왠지 금방 지나갈 것 같다. 너무 많은 일들이 빠르게 벌어지는 시대에 살고 있어서인지, 불과 5년 전의 코로나 팬데믹은 전생의 일처럼 멀게 느껴진다.

호크니는 유난히 봄을 좋아했고 재치 있는 입담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말을 인용하자면, “꽃은 오래가지 않는다. 자연을 상대하는 일에는 항상 마감이 있다.” 짧은 봄, 최대한 즐기자는 얘기다.

이사빈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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