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렬의 공간과 공감] 극락을 보고 싶은가? 우지의 뵤도인

헤이안(平安)시대 후기인 11세기 일본은 귀족문화가 절정에 달한 동시에 향락과 혼란으로 말법시대 도래의 사회적 불안이 증폭했다. 이를 극복하려 극락왕생 신앙이 유행하고 극락정토를 형상화한 정토종 사원들이 다수 건립됐다. 1053년 세운 교토 인근 우지시의 뵤도인(平等院)은 대표적인 헤이안시대의 정토 사찰이며, 10엔 동전에 새겨진 국보 중의 국보다.

봉황당은 중앙부에 아미타불을 봉안하고 좌우로 ‘ㄷ’자 모양의 행랑을 달았다. 뒤쪽 꼬리에 해당하는 또 하나의 행랑 다리로 육지와 연결했다. 전체적으로 봉황이 날개를 펴고 서방정토에서 날아오는 모습이다. 실내에 헤이안 조각의 정수인 아미타불 좌상을 모시고 좌우 벽에 52구의 생생한 비천상을 조각했다. 대형 닫집과 천장에 66개의 청동 거울을 달아 반사광으로 실내를 비추니 영락없이 극락이다.
역대 황후들을 배출한 후지와라 가문은 천황가를 압도했고, 이 가문 최고 권력자 요리미치는 내세에도 호사를 누리려 이 사원을 창건했다. 환상적인 본당과 우아한 정원은 ‘극락이 보고 싶은가? 우지의 뵤도인에 가라’는 격언을 유행시켰다. 그러나 선불교는 극락이란 건축물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에 있다고 가르친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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