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모범적인 헌정체제와 민주국가를 향해

그 장구한 지속력과 복원력은 무엇으로 가능했는가? 대륙과 해양, 제국과 제국, 문명과 문명의 경계국가로서 양쪽 모두와 대면하고 충돌하는 동시에, 양쪽 모두를 연결하고 흡수해온, 그리하여 끝내는 양쪽 모두를 종합하고 통합해온 한국 특유의 융합·융섭의 사유 및 행동방식 때문이었다. 문명과 제국의 최첨단 전방인 이곳에서는 정반대의 것들마저 초기의 일방적 침투와 강요의 시기를 지나면 크게 섞이고 융합돼 공존했다.
내란의 평화적·절차적 극복 경험
위기 맞은 세계 민주주의의 모범
통합과 융합이 한국 문명의 본질
타협·공존의 미래 헌정체제 절실
위기 맞은 세계 민주주의의 모범
통합과 융합이 한국 문명의 본질
타협·공존의 미래 헌정체제 절실
한국에서 융합과 융섭은 자기와 세계의 대면 방식에도 동일하게 작용했다. 즉 한국인들의 가장 큰 특징의 하나는 보편과 세계를 날카롭게 의식하고 추구한다는 점이다. 그들의 눈은 늘 세계와 보편을 향해 열려있다. 또 보편을 겨누고 배우며, 보편과 겨루고 견주는 데 익숙하다. 때로는 일시 모방을 포함하더라도 보편(적 기준)으로부터 눈을 떼지 않는다.
그리하여 한국은 문명과 제도, 종교와 이념, 기술과 상품의 수입과 종합, 창조와 공존에서 두드러지게 탁월하다. 이를테면 불교·유교·기독교가 도래할 경우 초기의 저항과 조정 국면을 거쳐, 누구보다도 적극 수용하여 특유의 한국적 불교와 유교와 기독교를 창출해냈다. 그러고는 민족종교·불교·유교·기독교 사이에 긴 종교 평화와 문명 공존을 누려왔다. 종교전쟁이 없는 한국의 종교 간 초장기 공존과 평화는 세계 주요 관찰자들과 종교학자들의 공통 지적이다.
한국은 3·1운동 당시 직전 세대 동안 국가로부터 크게 탄압받던 동시에 서로 충돌했던 동학(東學)과 서학(西學·기독교)이 함께 공존하고 연대하여 보편과 근대의 기치를 들어 올린 바 있다. 이때 동학과 서학은 전통과 근대의 만남을 넘어 주체와 세계의 내부에서의 독특한 공존과 연대를 말한다. 근대 이후 한국에서 3·1운동과 같은 영역과 사례는 여럿이다. 한국전쟁과 세계평화는 물론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문제 역시 그러하다.

그러나 한국은 의회의 민주적 절차,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시위, 군인들의 소극적 저항과 비폭력,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헌법적 판결이라는 일련의 평화적 질서와 제도적 절차를 통해 헌정질서와 민주주의를 회복시켰다는 점에서 크게 달랐다. 최근까지 한국이 민주주의에 있어 아시아 최선두 및 세계 선진국가로 분류돼왔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단기적으로 볼 때 한국은 민주주의 실천에서도 세계의 한 준거로 부상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밖의 종교와 문명마저 통합해내는 우리가 안을 통합해내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다. 언제나 내부가 먼저다. 세계 질서 재편기를 맞아 최고 수준의 내부 갈등을 완화할 제도와 리더십의 안출이 절실하다. 대외 공존과 평화의 전제 조건은 단연 대내 공존과 평화다. 즉 내부 통합이 단연코 먼저다. 내란 극복 이후에는 ‘척결’과 ‘청산’, ‘헌정파괴’와 ‘헌정수호’ 사이의 대결을 넘어 ‘헌정개혁’을 통해 내부 공존과 평화를 향한 최선의 방법과 경로, 그리고 최고의 헌정 체제와 제도를 찾을 때다.
그리하여 우리의 민주공화국을 더욱 튼튼히 하고, 나아가 위기에 빠진 세계 민주주의의 현실에도 돌파구를 제시할 때다. 경계국가이자 선진민주국가 한국의 세계 역할이 아닐 수 없다. 오랫동안 문명과 종교의 공존과 통합과 전파, 나아가 독자 언어와 문화의 창제와 창출, 그리고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과 상품을 개발하고 수출해온 우리가, 헌법과 제도라고 하여 뒤처져 있을 이유가 없다. 가장 모범적인 헌정체제와 민주주의를 향한 꿈을 말한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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