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승욱의 시시각각] 국민의힘의 '김덕수, 홍덕수' 도박

당일 공개된 기명 칼럼이 문제였다. 당시는 검찰총장에서 퇴임한 윤석열 전 대통령이 '정치 참여 선언'을 한 직후였다. 그가 국민의힘에 입당하기 전인데도 무려 24명의 소속 의원이 행사장에 몰려갔다. 과거 '친이명박(MB)계' 출신들이 상당수였다. 앞서 문재인 전 대통령에 의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발탁된 윤 전 대통령은 MB 관련 ‘적폐 수사’를 지휘했다. 결국 MB는 구속됐고, 윤 전 대통령의 정치 참여 선언 당시에도 여전히 수감 중이었다. "대장은 윤석열 때문에 구속됐는데, 부하들은 다 윤석열에게 몰려갔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뒤 반기문 총장 영입 때와 똑같다"는 불편한 진실을 칼럼에서 전했더니 '윤석열 옹립파' 의원들의 심사가 뒤틀렸다.
반기문·윤석열 영입 때와 데자뷔
내부 인재 외면, 남의 떡에만 기웃
당 경선은 "월드컵 지역 예선" 냉소
내부 인재 외면, 남의 떡에만 기웃
당 경선은 "월드컵 지역 예선" 냉소
새벽잠을 깨운 의원과 격론을 벌였다. 상대는 "누군 윤석열이가 좋아서 이러냐. 다 죽어가는 보수 한번 살려보겠다고 죽을 둥, 살 둥 하는 거 모르느냐"는 취지였다. 이에 필자는 "사실과 다른 것을 쓴 게 있느냐. 어떤 사람인지 검증은 해봤느냐. 묻지 마 영입 아니냐"고 맞섰다(※참고로 해당 의원은 다혈질이지만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다. 훗날 깊은 대화로 앙금을 풀었다). 다른 의원들도 비슷한 항의를 해 왔다. '민주당 천하, 이재명 천하'를 막기 위한 구국의 결단이란 주장들이었다. 그 구국의 결단이 당장은 통하는 듯했다. '사람에게 충성 않는 자유주의자'로 포장된 윤 전 대통령이 0.73%포인트 차 승리를 보수 진영에 안겼다. 그러나 인성이나 인격, 리더십, 주변 인물에 대한 최소한의 검증도 없었던 '구국의 결단'이 어떤 결말이었는지는 여러분 모두가 관전하신 그대로다. '백마 탄 왕자'나 '광야의 초인'처럼 모셔왔던 윤 전 대통령의 1060일은 참담 그 자체였다. '나에게만 충성'을 외치다 이해하기 어려운 자해극으로 정치 생명을 끊었다. "다 이기고 돌아온 거니까 걱정 마세요. 뭐 어차피 5년 하나, 3년 하나~"라는 '아크로비스타 금의환향' 대사에 국민은 할 말을 잃었다.

마치 4년 전의 데자뷔인 듯 국민의힘이 또 다른 영입 프로젝트에 푹 빠져 있다. 이번에도 '이재명 천하'를 막기 위해서가 명분이다. 총리로서 윤석열 시대를 풍미했던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을 새 구세주로 모시려는 움직임이 있다. 그를 무소속으로 출마시킨 뒤 국민의힘 후보와 단일화하고, 자신들이 당에서 쫓아낸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까지 아우르는 '반이재명 빅텐트'를 완성한다는 희망회로를 돌리고 있다. '홍덕수(홍준표+한덕수), 김덕수(김문수+한덕수)'란 말도 그래서 떠돈다.
그러나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국민들의 반응이 아직 시원치 않다. 희박한 도박의 성공 확률에다 "이기는 X이 우리 편"이란 국민의힘식 생존 방식을 국민들이 꿰뚫고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도박의 성공 여부는 하늘만이 알 테지만 국민의힘은 이미 너무 많은 걸 잃고 있다. 내부 홀대 풍토는 그나마 몇 명 안 되는 인재들의 기를 죽이고 있다. 이준석이 떠났고, 오세훈이란 쓸 만한 장수 한 명도 스스로 대선 트랙에서 내려왔다. 링에 남아 있는 후보들은 '못난이 8남매' 같은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다. 잔치가 돼야 할 대통령 후보 경선엔 '월드컵 본선이 아닌 지역 예선전'이란 냉소가 흐른다. 길고 기묘한 한 대행의 침묵에도 당은 동요한다. 모두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자칫 본선에 자당 후보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 있음에도 끝없이 당 밖을 기웃거리고 팔랑댄다. 4년마다, 5년마다 내 떡보다 커 보이는 남의 떡에 침을 흘리는 불치병, 한국 '보수정당'의 최대 위기다.
서승욱([email protected])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