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나는 식물의 온화함…매 순간 나를 안아줬다”
![22일 문학과지성사가 언론에 선공개한 한강 신작 빛과 실은 미발표 산문 세 편을 포함한 총 열 두편의 시와 산문으로 이뤄져 있다. 미발표 원고는 대부분 저자가 마당에서 식물을 키우며 느낀 생명의 경이로움에 관한 글이다. [AFP=연합뉴스]](https://www.koreadaily.com/data/photo/2025/04/23/e6452259-6c49-4ef0-bc81-077b4c4c2f74.jpg)

미발표작 분량의 99%는 ‘식물 관찰기’다. 북향의 정원에서도 기어이 싹을 틔우는 식물과 그것들을 바라보는 ‘식집사’(식물 집사) 한강의 섬세한 시선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음지에 뿌리내린 식물을 키우기 위해 여덟 개의 탁상용 거울을 마당에 설치한 뒤 반사광을 쬐어주는 저자의 일상이 담겼다. 한강은 15분에 한 번 씩 거울의 각도를, 사흘에 한 번 씩 거울의 위치를 바꾸며 생명을 키워나갔다. 나무들에게 빛을 골고루 나눠주기 위해 거쳐야 하는 다소 수고스러운 이 과정을 그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이 일이 나의 형질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는 것을 지난 삼 년 동안 서서히 감각해왔다. 이 작은 장소의 온화함이 침묵하며 나를 안아주는 동안. 매일, 매 순간, 매 계절 변화하는 빛의 리듬으로.”
산문 중간 중간엔 작가가 직접 휴대폰으로 찍은 식물 사진이 실렸다.
세 편의 미발표작 중 유일한 시, ‘더 살아낸 뒤’에는 어느덧 지천명을 넘긴 저자의 소명 의식이 담겼다. 그에게 글쓰기란 “인생을 꽉 껴안아보는” 일이며, “충분히 살아내는” 일이다.
“더 살아낸 뒤/죽기 전의 순간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나는 인생을 꽉 껴안아보았어./(글쓰기로.)//사람들을 만났어./아주 깊게. 진하게./(글쓰기로.)//충분히 살아냈어.(글쓰기로.)//햇빛./햇빛을 오래 바라봤어.”
![1979년 한강이 쓴 시. 45년 후 노벨문학상 강연문의 일부가 된다. [사진 문학과지성사]](https://www.koreadaily.com/data/photo/2025/04/23/d03c96af-51c3-4483-b158-2125b56f386f.jpg)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하는 것은 여덟 살의 저자가 쓴 사랑 시. 정확히는 그 육필 원고를 찍은 사진이다. 45년 후 노벨문학상 강연문의 일부가 돼 전세계에 울려 퍼진, 바로 그 시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사랑이란 무얼까?//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아름다운 금실이지.”
한편, 세계 책의 날(23일)을 맞아 22일 온라인서점 예스24가 발표한 ‘지난 10년간 가장 많이 팔린 책’에서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가 1위에 올랐다. 한강의 또 다른 소설 『채식주의자』는 6위, 『작별하지 않는다』는 7위를 차지했다.
홍지유([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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